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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n 10. 2020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는 '힘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에는 나도 그 말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아서 어떤 때에 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보았다.


위로를 해야 할 상황인데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오래간만에 만나 주저리주저리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의 말을 이젠 그만 자르고 일어서고 싶을 때,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너한테는 일어나서 안됐다는 마음을 함축해서,
정말 이해해보고 싶지만 머리에서 멈춰 더 이상 가슴까지는 내려오지 않는 가짜 공감의 순간을 뭉뚱그려
나는 '힘내!'라는 한 마디를 내뱉었던 것 같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힘내라는 말이 참으로 잔인한 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상에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라는 말처럼, 힘이 들고 힘이 빠지는 일들은 나에게도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내가 힘이 들어보면 그제야 알게 된다.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무용지물의 언어인지를.......


어느 추운 겨울 늦은 밤, 날씨보다 더 추운 마음이 되어 내가 기르는 고양이만 데리고 무작정 엄마 집에 갔었다. 자동차를 처음 타 본 고양이는 시트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 떨고 있고, 나는 추슬러지지 않는 내 마음에 고양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얹어져 더 많이 떨었던 것 같다. 새벽시간에 잠든 엄마를 놀라게 하고 싶진 않아서 날이 밝으면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자동차 안에서 밤을 지새웠다.

조금만 더 있으면 엄마가 일어나실 시각인데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생각보다 조금 이르게 엄마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일어나던 참이었다며 문을 열어주시는 엄마는 고양이를 안고 들어서는 나를 보며 이 시간에 웬일이냐는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으셨다.

나를 본 엄마의 첫마디는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밥이나 먹자!"였다.......


엄마와 나는 아침밥을 지어 밥을 먹었다.

 밤새 차 안에서 혼자 쌓아 올린 만리장성이 밥 앞에 무색해지고, 어쩌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여겨질 만큼 내 마음은 따뜻한 국 안에서 녹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듦에 공감을 원한다. 누구나 내가 짊어진 보따리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여겨지고, 어차피 해결도 내 몫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힘듦의 한줄기를 같이 가지런히 쓸어내려줄 따뜻한 마음을 기대하게 되는 건 본능인 건지 어쩔 수가 없다.

오래전 사극 드라마 '다모(茶母)'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가 명대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이유가 같은 이유 아닐까?


우린 모두 힘들고 아프다. 그리고 힘듦과 아픔은 마치 오래전 학교 체육시간의 순환운동처럼, 돌고 돌아 어느 날 내 앞에 높은 뜀틀처럼 놓일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서로를 위해 "힘내!"보다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선택하기로 하자.


힘내란다고 내 질 힘이라면 애당초 힘이 들지도 않았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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