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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Aug 16. 2020

나와 연결되는 유독 거슬리는 남의 단점은 무엇인가

리틀 포레스트: 가을과 겨울


키코의 할아버지 <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




예전에 나는  '네일 아트'를 받은 여자가 괜히 싫었었다.
길게 기른 손톱에 젤리 같은 색깔을 입히고, 보석도 콕콕 박은 여자를 보면 부정적 생각들로 그녀를 단정 짓곤 했다.
저런 손톱으로 밥이나 할 수 있겠어? 살림하는 여자가 저런 손톱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런 확신을 준 데 공헌을  한 여자가 하는 말이, 비싸게 돈들인 손톱이라 상할까 봐 설거지를 되도록이면 안 한다고 했다.(물론 그 여자만의 방식이었겠지만)
네일 아트를 받은 손이 예쁜 건 사실이었다. 가끔 화려한 그 손톱 앞에서 바짝 자른 내 맨 손톱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주먹을 쥐게 될 때도 있었으니까...

나는 왜 손톱 화려한 여자가 싫은 건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손톱 화려한 여자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바른 화려한 손톱이 싫은 거였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정말 많이 손톱을 칠해보고 싶구나! 그동안 그 마음을 전혀 못 알아차렸었네...

지인이 네일아트숍을 오픈해서 인사로라도 한번 손톱 바를 일이 생겼다.
권해주는 디자인에 보석도 몇 개 박았더니 십만 원이 청구되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머리도 십만 원짜리를 안 하는데, 오래 봐야 한 달이나 즐거울 손톱에 십만 원이라니!
그러나 손톱을 볼 때마다 흐뭇해지는 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꾸 바라보게 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평범한 옷을 입어도 액세서리를 한 것처럼 패션의 완성도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손톱이 예쁜 건 좋았으나 열 손가락이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꽉 낀 청바지를 입고 자는 기분이랄까, 자다가도 손이 막 답답해서 힘들 지경이었다.
돈 생각해서라도 한 달은 참고 즐겼다. 그러나 그 이후로 네일 아트를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나는 왜 손톱 바른 여자가 싫었을까, 아니 그 여자가 서슴없이 돈을 지불하고 바르는 그 손톱이 미웠을까.
내게 '화려한 손톱'은 '게으름', '나태함', ' 살림하는 여자답지 않음', '자기애'라는 단어들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단어들이 왜 싫은 걸까.
나는 살림하는 여자답고 싶지 않았던 거다. 손톱을 바짝 깎아 일하기 좋은 손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가족들을 위한답시고  종종거리는 내가 나는 싫었던 거다.
게으르고 싶었고, 나태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고 싶었던 거다.
그러지 못하는 나는, 내가 못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여자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그만 애꿎게 예쁜 손톱에 눈을 흘기고 만 거다.

이제는 손톱 바른 여자가 밉지 않다. 나도 해봤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바짝 자른 맨 손톱이다. 맨 손톱이 훨씬 편하니까.
 어떤 것을 해 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폄하 또는 부러워하는 것은 마음을 지치게 한다. 그러나 한 번 해보니 나와 맞지 않음을 알고 나면 내 마음도 내 시선도 편안해진다.
무언가 자꾸 거슬린다면, 거슬리는 마음을 꺼내어 가만히 들여다보자. 거기에 나의 '원함'이 비추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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