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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Aug 18. 2020

내가 그리는 나선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은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중에서 이치코 엄마의 편지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를 빙글 도는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지만
나선은 조금씩 커지게 될 거야

이치코엄마의 편지<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내 등 뒤로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참 비슷한 매일을 오래도 살았구나 싶다.
내가 매일 똑같은 연자방아를 돌리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쌓아올려 어느 날 그 탑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도 참 열심히 살았는데, 나의 오늘은 어쩜 이리도 평평할 수 있을까...

어느 해, 나는 이치코처럼 '코모리'로 도망쳐 왔다.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그 평평한 삶이 지겨워서, 사람을 솎아 내고, 기억을 걸러 내고 처음 듣는 동네로 도망쳐 왔다.
도망을 왔던, 유람을 왔던 사람은 살아가야 하고, 산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나선'이 된다.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라는 말을 숙명처럼 믿으며 또 하나의 나선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본다.

나는 내 감정의 '돌부리'를 안다.
내가 번번이 어느 돌부리에 발끝이 채여 넘어지는지, 하도 넘어지다 보니 알게 되었다.
피해 가는 방법도 조금은 터득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까진 채 고개를 들어보면 여지없이 그 자리다.

넘어지며 터득한 것들도 많다.
조금 덜 아프게 넘어지는 법, 넘어질 뻔으로만 그치는 법 그리고 넘어져도 재빨리 털고 일어나는 법까지...
나는 여전히 패배감이 올라오고, 자괴감에 젖기도 하고, 이제 와서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싶은 마음의 속국이 되어 살지만, 넘어진 경험치만큼 나의 나선은 커졌을 것이다.
내가 비록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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