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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l 01. 2021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INTO  THE  MYTH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 피카소 탄생 140년 특별전 -INTO THE MYTH > 이 열리고 있다.

오전 10시 관람 시작인데, 이미 10시 전부터 매표소를 비롯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계단 아래까지 늘어서 있다.

지금껏 가본 중 최고로 관람객이 밀집되어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도슨트 운영은 취소되었고, 오디오 기기를 대여하거나 스마트폰에 ' 가이드 온 '앱을 다운로드한 후 프로그램을 구입하면 설명을 들을 수 있다.(3000원)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모방론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모방으로 정의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까지, 그림은 한쪽 면만 보고 그 현상을 그려왔고, 화가는 대상의 보이는 현상만을 모방한다고 주장하며 그림만으로는 개념을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예술을 과소평가했다.

그. 러. 나.

앞, 뒤, 좌, 우 모든 면에서 바라본 대상을 그림에 등장시키며 플라톤의 주장을 깨버린 예술가가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 피카소이다!


그는 여러 방면의 그림을 보여주는 입체주의 (큐비즘)의 창시자이다.

피카소는 구체적인 한 장면이나 어떤 대상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필요 없는 부분을 다 지운 후 추상만을 그렸다.

다양한 각도, 구체적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개념을 도출하고, 편협된 시각을 깨버렸다.



그는 예술을 모방의 영역에서 창조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으며,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간 화가이다.

피카소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부제는 "신화 속으로(INTO THE MYTH) "이다.


지금껏 보아왔던 피카소의 전시가 그림 위주의 평면적 구성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 전반에 걸친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일종의 회고전이다.


특히 프랑스 파리 국립 피카소 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이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피카소 예술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다.


유화, 판화, 조각, 도자기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대기적이고 7개의 테마별로 관람할 수 있다.




Ⅰ.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피카소의 고독을 그린 <청색시대 1901-1904>에서 <큐비즘 1907-1914>까지의 작품


 <파라렐로의 콘서트 카페> 1900-1901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으나 스페인 말라가 출신이다.


절친했던 친구가 죽은 후 암울한 <청색시대>를 살아가던 피카소는 20세를 전후한 1904년에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넘어왔다. 이때 '페르낭드 올리비에'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첫 번째 여인이 된다.


그녀와 함께 한 시기 동안 피카소의 캔버스에서 우울과 어두움이 걷어지고 화사한 봄이 왔다.


그의 '장미 시대' (1904-1906)가 시작된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 도 페르낭도 올리비에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인물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누드>1908


입체주의는 세잔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그림은 초기 세잔적 입체주의 특징대로 조금 투박하게 그려졌다.


입체주의는 피카소에게 엄청난 비난과 더불어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미 자리 잡았던 바르셀로나의 명성을 모두 버리고 파리로 넘어와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냄으로 피카소는 서양미술사 400년의 전통을 무너뜨리며 회화 역사에 대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 것이다.



Ⅱ.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 & 초현실주의


스페인 국적이라는 이유로 세계 1차 대전 징집을 면제받은 피카소는 이탈리아로 여행 갔다가 우크라이나 무용수 '올가 코크로 바'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그는 결혼까지 하게 된고, 그녀는 첫 번째 부인이 되어 '폴'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피에로 복장을 한 폴> 1925 - 올라와 피카소 사이의  첫 아들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유난히 따뜻하고 사랑이 느껴졌는데, 다름 아닌 그의 아들 '폴'이었다.


이 그림은 입체주의와 거리가 먼 평면을 중심으로 원근을 배제하고 대상과 배경의 명암이 명확히 구분되는 고전주의 특징을 살려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애정 어린 눈동자가 투영되는 듯하다.


<편지 읽기>1921.피카소


이 그림은 전체적인 색의 톤이 굉장히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편지의 내용이 슬픈 내용일 것 같은 표정이라는 평을 읽고 두 형제의 얼굴을 보니 어딘가 슬픔이 느껴지며 안정적으로 보였던 색감이 우울해 보이기도 하였다.



Ⅲ.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


볼라르는 피카소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었던 프랑스 파리의 화상이자 출판업자 이름이다. 볼라르는 피카소 외에도 세잔, 반 고흐 등을 후원했다고 한다.


1930년대에 볼라르의 주문에 의해 피카소가 제작한 에칭 판화 년 작물이다.


<볼라르의 초상화>피카소
<잠든 미노타우로스를 지켜보고 있는 여신 차림의 마리 테레즈>/ <포즈를 취한 마리테레즈를 모티브로 작업중인 작가>


<에우로페의 납치> / <미소년들의 싸움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섬에 살고 있는 괴물로, 몸은 인간인데 머리는 수컷소로 이루어졌다.

피카소는 미노타우로스를 통해 자신이 가진 여인에 대한 양가감정, 폭력성 등을 표현하여 작품에 많이 등장시킨다.


피카소는 45세에 28살 연하인 마리 테레즈라는 여인을 또 만난다. 이미 올가와 결혼하고 5살 아들이 있던 그는 집 근처에 그녀의 거처를 두고 8년간 밀회를 한다.

그동안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라는 마리 테레즈의 작품들을 많이 그린다.



Ⅳ.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1947년부터 본격적 도예 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 발로리스에서 1947-1995년까지 약 4,500점 제작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양이다.


<발로리스에서 도자기 작업할 당시의 피카소>




<염소>1950. 피카소 /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1961. 피카소


개인적으로 나는 피카소의 도자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흙을 두텁게 바른, 마치 질그릇 같은 투박한 형태에 진한 아우트라인이 인상적인 그림들과 중간 톤의 색감들이 바라보는 내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Ⅴ. 피카소와 여인


피카소에게 여인은 창작과 열정의 근원이었다. 여인들과의 사랑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피카소가 사랑했던 여인은 2명의 부인을 포함 총 7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마 그 외에도 많은 여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평생 나는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피카소



피카소의 여인들


페르낭드 올리비에 (1904-1912)

- 가난한 스페인 화가의 암울한 '청색시대'그림을 화사한 '장미 시대'로 바꾸어 준 여인


에바 구엘 (1912-1915)

- 다른 동료의 모델이자 연인인 그녀를 피카소가 가로챘다. 피카소와 만난 지 4년 만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올가 코크로바 (1917-1955)

- 유부녀이던 올가는 피카소의 유혹으로 남편과 이혼 후 재혼하게 된다. 10년을 함께 살다가 아들 폴을 낳고 별거한다. 평생 피카소의 법적 아내로 남는다.


마리 테레즈(1924-1936)

- 피카소가 '황금 같은 뮤즈'라 불렀던 최고의 모델인 그녀는 17세에 그를 만나 18세가 되자마자 동거에 들어간다. 22살에 딸을 낳고 5년 후 피카소와 헤어졌다. 그녀는 평생 피카소를 그리워하다가 피카소가 죽자 그를 보살펴야 한다면서 따라서 자살했다.


 도라 마르(1936-1944)

- 선구적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작업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1936-1944까지 함께 살았고, 피카소의 외도로 극도의 우울증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된다. 1997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프랑수아즈 질로 (1943-1953)

- 피카소가 63세 때 만난 여인이다. 1944년부터 9년간 동거하며 1남 1녀를 낳았다. 68세의 피카소가 또 바람이 나자, 피카소의 여인들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먼저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다.


 자클린 로크 (1953-1973)

- 발로리스의 마두라 도자기 공방의 매장 영업원이었던 그녀는 1953년 피카소가 72세에 만났다. 80세가 되던 1961년 생애 두 번째 정식 결혼을 한다. 피카소 사후 자클린은 권총 자살을 한다. 피카소가 없는 삶은 그녀에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① 페르낭드 올리비에 / ③올가 코크로바


④ 마리 테레즈 / 마리 테레즈와 딸 마야


<마리 테레즈의 초상> / <시계를 찬 여인>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1937. 피카소 /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 1937. 피카소


색감이 화려하고 곡선이 많아 매우 아름다운 마리 테레즈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그림 속 마리 테레즈는 점점 우울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이 그림들이 그려진 후 피카소는 그녀와 이별을 한다.


⑤ <도라 마르> / <파란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

마리와 결별 후 만난 '도라 마르'를 그린 그림이다.


⑥프랑수아즈 질로 와 피카소 / 프랑수아즈 질로 와 클로드와 파로마

피카소는 여인의 그림을 그릴 때 공통적으로 한 화면에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⑦ 재클린 로크 / 재클린 로크와 가족



Ⅵ. 전쟁과 평화, " 한국에서의 학살 "




<한국에서의 학살> 1651. 피카소


한국전쟁 발발 6개월 후인 1951년 1월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완성한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예술을 통해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1937)' 와 "시체안치소" (1944-1945) 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이다.


작품 발표 70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피카소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반전화의 최고 대표작이다.


<게르니카> 1937. 피카소


<The Chornel House-시체안치소>1945. 피카소



Ⅶ. 마지막 열정



피카소는 말년을 자클린 로크와 보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92세의 나이까지 작품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던 피카소!


<칸느 해안>1958. 피카소


전시되어 있는 이 그림은 벽 한 면을 차지할 정도로 크기가 크다.

이 그림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아!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노년의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던 피카소의 안정된 생활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주앙 레팽의 풍경> 1920. 피카소



데이비드 호크니, 르 코르뷔지에 같은 대가들이 사랑한 예술가의 예술가로 칭송되는 피카소.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작품들을 둘러보니 작품을 향한 그의 샘솟는 아이디어와 망설이지 않는 용기 그리고 식을 줄 모르던 열정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주변에 사랑하는 여인이 끊이지 않았으며, 예술가들이 그를 사랑했던 이유를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피카소의 말들 중 가슴에 큰 여운을 남긴 말다.

보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것을 그린 피카소.

평생 사랑하며 느끼며 떠오르던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혀 혼을 불어 넣었던 그의 '생각'속으로 깊이 빠져보는 소중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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