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보러 다니기를 즐기는 지인이 있다.
연초는 물론이고 연중 아무 때라도 뭔가 기분이 찜찜하고 답답하면 '물어보러 간다'며 어딘가엘 다녀온다.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는 그녀는, 거기서 들은 이야기들을 나를 앉혀 놓고 한참 이야기하곤 한다.
본인이 심중에 새기려 되풀이해 말을 해 보는 것인지, 나도 한 번 가서 '물어보라' 권유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번 듣다 보니 확실히 처음보다 낯설음이 덜 한 것은 분명했다.
매년 구정이 다가오면 그녀는 시어머니 그리고 친정어머니를 동반하여 용한집을 바삐 들락거린다.
몇 년 전부터 점집엘 다녀와서는, 인적이 없는 새벽길에 나가 무언가를 '깨고' 왔다는 소릴 하기 시작했다.
깨질 때 시원하게 잘 깨지는 것을 가지고, 사람이 없는 넓은 대로로 나가 힘껏 '깨 부수고' 들어오라는 것이 용한 점쟁이가 그녀에게 준 미션이기 때문이었다.
지난해에 그녀는 차도 사람도 없는 새벽 세시쯤, 동네를 약간 벗어난 큰 사거리 중심에 서서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식구 수대로 밟아 '깨부수었다'더니,
올해는 계란 한 판을 작년과 같은 방법으로 내리꽂았다고 했다.
하필이면 왜 매번 '깨부수냐' 물으니, 그것들과 함께 나쁜 운도 같이 깨져 없어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액땜'이었다.
군대 전역한 아들이 프랑스로 가자마자 하필 코로나가 온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치 같은 비행기를 이용한 듯, 아들과 코로나는 함께 프랑스에 내린 셈이다.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악조건 속에서 아들은 혼자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모든 학원들이 '일단 멈춤'을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생활해야 하는 것이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했다.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는 아들을 지켜보며, 불어라곤 봉쥬르 메르씨 보끄밖에 모르는 내가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전혀 없음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입시 원서를 몇 군데 넣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먼 곳에서 혼자 애쓰고 있음을 안쓰러워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일 뿐이었다.
이상하게 망설여지더라니...
서울 도심 복잡한 곳을 가야 하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갈까 말까 한참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차를 가지고 나선 날이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삼거리에서, 항상 1차선을 이용하여 좌회전 신호를 대기하던 내가 그날따라 2차선에 서 있던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좌회전 신호를 받던 그 길에서, 눈감고 운전해도 익숙할 만한 그 길에서 이상하게 내가 사고를 냈다.
와장창!!
'찰나'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려니 싶었다.
좌회전을 하자마자 옆좌석에 있는 텀블러를 집으려 딱 1초 한눈을 판 것 같다. 길가에 아이를 내려주려 급정거하는 자동차를 뒤따라 가다 덩달아 급정거 한 택시를 발견한 내가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차 간 거리는 너무 좁혀져 있었나 보다.
택시 뒤 범퍼와 내 차 앞 범퍼가 부딪혀 깨지는 소리!!! 그런데 어쩜, 들이박는 그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건 그녀가 일부러 깨뜨린 바가지와 계란 한 판이었을까!
깨졌다... 와장창!
택시 아저씨도 나도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
부서진 소리에 비하면 서로의 범퍼만 교체하면 될 뿐 큰 사고는 아니었다.
황당하게 난 사고에 몹시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기분은ᆢ 괜찮았다.
아들을 위해, 내 온몸으로 '액땜'했다는 생각.
바가지처럼, 계란 한 판처럼, 와장창 깨지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던 내가 '액땜'이라도 해 준 것 같아서 차라리 괜찮았다.
엄마가 되면, 참 별게 다 괜찮아지나 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라도 모든 일들을 괜찮아지게 만들고 싶은가 보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액받이'를 자처할 만큼 '강하며',
나라는 사람이 가진 신앙관이나 가치관, 믿음이나 신념 등의 총체를 한낱 '액땜'따위와 한순간 바꿔버릴 수 있을 만큼 '약한' 존재.
그것이 '엄마'라는 존재의 실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