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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May 18. 2021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고통은  철저히 경험함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현대를 아가는  나는 현대사 속 사건들을 잘 모른다.
발생한 날짜가 이름이 된 사건들, 이를테면  10.26이니 12.12니 5.18 등을 어렴풋이는 들어 봤으나 훨씬 오래전에 일어난 6.25보다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서울과 서울 인접 경기도 지역만이 마치 대한민국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산 사람이다.
사돈의 팔촌을 다 따져 보아도 전라도 특히 광주와 연관된 사람은 없다.
게다가 정치에도 전혀 관심 없이 그저 내 배나 고프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국민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난달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을 깊이 만났다.
책을 읽고 몸살을 앓는 경험을 했을 만큼, 활자로 읽은 5.18은 분노와 무력감, 슬픔과 억울함, 먹먹함이 지나쳐 막막함까지, 여러 감정을 끌어올렸다.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총을 맞은 사람들의 고통은 당연하다. 그런데 총을 쏘았던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그들은 정말 고통스럽지 않은 걸까ᆢ? '

그러던 차에 영화 하나가 개봉을 했다.
'아들의 이름으로'
5.18과 관련된 영화라길래  반드시  보고 싶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약간 떨렸다.
참혹한 현장의 모습들로 5.18을 설명하는 그동안의 시점을 예상했던 나는, 혹시라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장면과 맞닥뜨리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책으로도 그토록 힘들었던 그 사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마주할 생각에 무서웠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오히려 나의 궁금증에 답이 되는 새로운 관점으로 5.18을 보여주었다!



한 남자(안성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애쓰다가 자기를 향해 지저귀는 새 한 마리를 발견하며 마음을 다잡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오채근.
1980년 광주의 5월을 가슴에 품은 채, 꼭 지켜야만 하는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죽음을 보류한 사람이다.

그가 밥을 먹으러 자주 가는 '한강식당'에는 세 여자와 한 남학생이 있다.
주인 할머니와 종업원 진희(윤유선), 광주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주방이모 그리고 할머니의 손자 민우(김희찬)다.

광주 출신인 진희는 어린 나이에 계엄군의 총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돌보느라 나이가 많음에도 아직 미혼이다.
주방이모는 계엄군에게 심하게 맞아 오랫동안 고생하던 남편이 자살을 한 이후로 말을 잃었다.
민우는 학교 친구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느라 고단한 학생이다.
이 사람들을 살피고 도우며 오채근은 묵묵히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낸다.


누가 시켜서 한 것뿐이라고 하면
다 용서되는 거야?
나도
내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해야겠다.



어느 날 민우를 폭행하는 친구들로부터  '자기들보다 더 높은 형이 시켜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듣고 오채근이 격분해서 한 말이다.
누가 시켜서 했을 뿐이라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자각시키는 오채근.

이 장면에서  아우슈비츠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악과 연관 지을 수 없이 평범한 생김새와 자기 책임이 강한 그는 오로지 상부의 지시를 정확하고 철저히 수행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도덕성이나 결과를 생각해보지 않고  최선을 다한 그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역사로 기록되었는지 그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은 위에서 시키는 그 일을 열심히 해야했던 사람이라고 반복해 말할 뿐 유태인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던 아이히만이 오버랩되었다.


고통은 철저히 경험함으로서만
극복할 수 있다
(미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채근은 사실,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있었던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현장에서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던 군인이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유학을 떠남으로 아버지와 심리적 거리를 둔다.
아버지의 속죄를 담보로 학업을 끝내고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던 아들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자신의 과거가 아들을 죽게 만든 것 극렬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또한 그의  죄책감은 자신의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처럼 순한'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겪어야만 했던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바라보며 더욱 깊어만 간다.

그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힘들어하던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복수를 결심하고, 대리기사로 일하며 5.18 당시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기준(박근형)'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늦었지만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하려 합니다.
(오채근의 다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박기준을 곁에서 지켜보며 오채근은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묻는다.  그 날의 기억으로 괴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는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그때 일은 다
역사가 평가해 줄 거야.

(박기준의 대답)

죄책감과 분노로 던진 질문에 박기준의  대답은 너무도 태연고 단순하다.

피해자들은 고통스럽다. 괴롭고 억울하고 슬프다.
몸뚱이가, 마음이, 정신이 아프다.
아프고 슬퍼서 잠이 안 온다. 억울하고 보고 싶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런데 왜! 가해자는 괴롭지 않은가!
어찌하여 고통과 불면의 밤은 그들에겐 찾아가지 않는 것인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오채근은 5.18 가해자들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한다.
그의 과거를 모른 채 그와 친분을 유지하던 사람들, 가해자인 그로 인해 피해자가 되어 버린 그들에게 진심으로 자신의 과오를 속죄한다.

를 지배하던 권력이 시켜서 할 수밖에 없던 악행을 선행으로 바꾸어 보기 위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양심의 '고백'을 한다.



오채근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의 방송을 보다가, 실어증에 걸렸던 광주 이모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 피해자들이 원했던 건 가해자들의 반성이고 사죄다.
잘못했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그 말이 역사의 평가가 내려질 때까지 미루어야 할 만큼 무겁고 먼 말인 걸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서울 사람이다.
사돈의 팔촌을 다 따져도 전라도 특히 광주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나는 갑자기 묻고 싶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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