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주자는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에 정착한 제이콥(스티브 연)과 모니카(한예리). 캘리포니아에서 십 년 동안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가, 제이콥은 가족을 데리고 아칸소의 6000평 대지 위에 바퀴 달린 임시 거처 같은 집으로 이사를 온다. 제이콥에게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그 광활한 땅이 희망이었고, 아내 모니카에겐 암담함 그 자체일 뿐이었다.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 실력이 뛰어나다. 척 보면 척... 암컷과 수컷을 단박에 구분한다. 그에 비해 모니카는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집에서 감별 연습을 해야 할 만큼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겐 희망도 병아리 감별 같은 것이었을까. 제이콥은 희망인 것과 아닌 것을 병아리 감별 실력만큼 빠르게 감별해낸다. 그러나 모니카는 오래 들여다봐야 구별할 수 있는 자신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것이 과연 희망인지 아닌지, 병아리 똥구멍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는 모니카.
그들은 일하러 집을 비울 때 딸과 심장병이 있는 어린 아들 돌봄을 맡기기 위해, 한국에 있는 노모 순자(윤여정)를 불러 함께 살기로 한다.
데이비드가 여러 번 말한 '할머니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이콥 부부와 손주들까지, 그들이 기대한 것은 수단이요 도구적 의미의 할머니였을 것이다. 모니카를 대신해 요리와 살림을 도맡아 줄 할머니를 원했으나 순자는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손주들을 세심히 돌보는 '도구'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할머니이다.
어린 데이빗에게 화투패를 선물로 주고, 외출하기 위해 옷 입는 것을 도와달라는 데이빗을 혼자 서랍을 열게 두어 발등을 다치는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순자는 한국에서 고춧가루, 멸치 등을 챙겨 와서 이민생활에 지쳐가는 딸 모니카의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 주었고,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데이빗과 함께 뿌리기도 하며 그들의 일상 속에 잔잔히 스며든다. 미나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이빗에게 미나리를 알려주고, 심장병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이빗을 꼭 안아 다독이며 기운을 북돋아 준다. 딸 모니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건네 주어 한가닥 희망이 되어주고, 엄마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 준다.
순자는 도구적 역할은 부족했으나, 존재적 의미로서의 할머니 역할은 충분히 해 내었던 것이다. 모든 관계 속에는 기대와 원함이 들어있고 그것이 관계 지속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린 어떤 의미를 기대하는가 그리고 되어 줄 것인가. 도구인가, 존재인가...
할머니를 따라 간 미나리밭에서 뱀을 발견한 데이빗이 막대기로 뱀을 치우려 하자 할머니 순자가 말리며 한 말이다.
어느 날, 모니카는 삶의 성별을 감별해 낸다. 제이콥과 자신의 '희망'의 결이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별을 각오한다. 제이콥이 희망이라 생각했던, 재배한 한국 농작물의 판로가 처음으로 열린 그 날, 모니카는 이별을 선언한다.
아버지 제이콥의 감당하기 벅찰 만큼 무거운 책임감과 엄마 모니카의 좌절, 그 사이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불안, 숨어 있어서 더 위험하고 무서웠던 가족들의 갈등이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와 형체를 드러낸 날, 제이콥의 농작물 창고에 불이 난다. 희망이 재로 변한 그 밤에 네 식구는 비로소 거실 바닥에서 모두 모여 함께 잠을 잔다.
순자가 심어 놓은 미나리로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제이콥이 무성한 미나리를 보며 말한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둬도 잘 자라는 걸...
자신이 희망이라고 여겼던 단 하나의 것, 가족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희망이라 여겼던 것이, 병아리 감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단정해 버린 희망이라 여겼던 것이 그저 자신의 무모한 욕망이었음을 깨달아버린 제이콥이 중얼거리듯 뱉은 한마디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초연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가끔 우리는 너무 애를 써서 망쳐버리는 것이 있다. 물을 너무 자주 주어 죽게 한 화초라거나, 관심을 너무 쏟아 틀어진 관계라거나, 지나친 애정으로 병들게 만든 자식이라거나... 아무렇게나 둬야 더 잘 자랐을 것들을 말이다.
어릴 때는 그 향과 맛이 너무나 역해서 먹어야 할 이유를 몰랐던 식물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나리의 향과 식감은 미각을 돋운다. 생선 매운탕에 넣었을 때와 넣지 않았을 때가 확연히 다른 미나리가 가진 힘!
희망. 바랄 희, 바랄 망 우린 무얼 바라고 바라며 살아가는 것일까. 무엇을 바라기에 그토록 오래 그리고 많이 참고 미루고 포기하며 버티는 것일까.
희망은 미나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뽑아 먹을 수 있는 미나리처럼, 습기 많은 물가에만 뿌려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매운탕의 맛을 돋우는 미나리처럼 우리의 인생은 희망이 있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가 보다.
영화 미나리는 색채가 강렬하진 않다. 뚜렷한 스토리라거나 확실한 기승전결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끝까지 다 본 후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영화인지 잘 가늠이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는 잔향이 강하다. 입안을 뱅그르 돌아 코까지 느껴지는 미나리처럼, 가족을 위해 밥을 짓다가 문득,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온 가장을 바라보며 문득 모니카가 생각나고 제이콥이 떠오르는 그런 영화다.
모니카처럼 내 인생의 똥구멍을 오래도록 살펴본다. 어느 부분은 쓸모없는 수컷 같고 어느 부분은 살려 두어야 할 암컷 같은 다면체 같은 인생을 이리저리 들여다본다. 자주 헷갈리지만, 결국은 암컷인 내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