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본다. ‘나’인가? 거울 속의 나와 사진 속의 나는 다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쉽지는 않다. 내가 궁금해진다.
그림 그리다가 마주친 나
작년부터 '어반스케치(Urban sketch)'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반스케치는 말 그대로 '도시(Urban)'를' 스케치'한 그림을 일컫는다. 내겐 여행지 카페나 벤치에 앉아, 도시의 랜드마크를 '쓱' 하고 그려내고 싶은 로망이 있다. 막상 해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쇼츠 영상'들을 보면, 모두 너무나 쉽고 가볍게 그린다. 화면 뒤 그들이 들인 노력과 시간을 무시한 탓에, 별거 아닌 양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그 오만이 깨지기 시작하자 그림 그리기가 두려워졌다. 그동안 나는 손 기술이, 눈의 감각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그려보니 아니었다. 믿었던 내 눈썰미는 심하게 왜곡해서 보고 있었다. 관찰, 비례, 기울기의 각도, 구도 등 드로잉의 기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수십 번을 그리고 지워야, 선 하나가 완성되었다. 사물은 내가 무심코 바라보았던 것보다, 크거나 작았다. 사물도 이렇게 주관적으로 보는데,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렘브란트와 에곤 실레의 얼굴
화가들이 남긴 자화상들을 찾아보았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렘브란트는 75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노년에 그린 자화상속 <자화상>(1660) 속의 담담한 표정을 보며,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인생의 무상함은 물론 무언가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듯한 얼굴에서 그 고된 삶이 느껴져 눈물이 흐른 것인지 모르겠다. 궁핍하고 고독한 시절,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며, 묵묵히 자기를 그렸을 그에게 경외감이 일었다. 찰나의 표정이 인간의 내면을 드러 낸다고 생각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복해 그리면서 표정과 감정의 지층을 자세히 들여다봤겠지. '빛의 화가'라는 명성도 얼굴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하며 얻었다고 한다. 빛을 활용해 인간 내면을 얼굴에 드러나게 한 것이다. 얼굴은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다른 부분들은 얼굴만큼 묘사가 세밀하지 않다. 렘브란트보다 자화상을 더 많이 남긴 화가도 있다. 바로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에곤 실레이다. 28세로 요절한 실레는 깡마른 인체로 인간의 내면세계와 성적인 주제를 표현한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다. 그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은 생기 없는 눈동자, 앙상한 몸, 억눌린 듯한 표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뒷배경에 꽈리 나무를 그려 넣긴 했지만, 그림의 초점이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푸른 피가 흐를 것 같은 안색과 상처가 난 빨간 입술이 안쓰럽다.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턱선에서는 자신감이, 황소같이 큰 눈에서는 비겁함이 감돈다. 실레가 거울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자기애는 보이지 않는다. 앙다문 입술 속에서 썩어가는 치아가 느껴졌다. 입술에 난 상처에서 이내 피가 흐를 것 같다. 온갖 질병에 시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고작 스물둘이었다. 그들은 자화상에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그렸을까? 사진이 없던 시기여서 렘브란트의 실제 얼굴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자기 모습에 충실했을 것 같다. 그의 자화상들을 보면, 보정 없는 여권사진 같은 분위기가 난다. 반면에 외모가 꽤 수려했던, 실레는 자신을 왜곡해서 그렸다. 관람자의 시선이 중앙에 위치한 턱선과 목에 모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화가는 오로지 얼굴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까지 포착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싶은 이중 자화상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스스로 질문해 본다. 만약 내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보이고 싶은 모습과 숨기고 싶은 모습을 모두 담은 이중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실레의 자화상을 보며, 사진 속의 내 모습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번갈아가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