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유해성에 관하여

도둑맞은 집중력과 불안 세대를 읽고

by muzi
쓰기(writing)는 ... 비인간적이다.
실제로 마음 안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을 마음 바깥에 놓겠다고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물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
쓰기는 기억을 파괴한다.
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내부의 부족한 자원을 외부 자원에 의지하게 됨으로써, 태만해질 것이다.
쓰기는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며 플라톤이 남긴 글, Ong(1982, p. 79)에서 인용


지난해 출판된 <도둑맞은 집중력>은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작년부터 집중력, 몰입 관련 도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집중력을 걱정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에 위로가 된다. 똑똑해지다 못해 음흉해지고 있는 미디어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계산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데 쓰고 있다. 그 능력은 사실 우리가 애써서 길러주었다. 사람들은 문자와 그림과 영상이라는 장작을 수십 년 동안 제공해 주었다. 이것들을 모아 때우는 계산 기법도 알려주었다. 나아가 어마어마한 양의 장작을 한꺼번에 때울 화력도 제공해 주었다. 그러자 마법 같은 결과물이 탄생했다. 그 결과물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마력이 생겼다. 이 마력에 저항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기란 무척 어렵기에,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아예 인터넷이 안 되는 구식 전화기와 노트북만으로 몇 달을 보내기로 한다(물론, 유명 작가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독자 입장에서 궁금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흥미진진하게 경험을 풀어낸다.


Multitasking? No! Switching? Yes!

미디어 멀티태스킹 관련 고전 연구가 된 클리포드 나스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이용하는 정도가 심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고 인지적 과제 전환하기(switching) 능력과 거르기(filtering) 능력을 측정했다[1]. 미디어 다중이용자들은 과제 전환에 능숙하지 않을까? 답은 정반대였다. 인지적 전환하기 과제는 일련의 과제 수행 중에 과제의 종류가 달라지는 순간 처리(반응) 속도가 얼마나 지연되는지 측정하고, 인지적 걸러내기 과제는 주목해야 하는 목표 자극에 정확하게 주목하는 능력을 측정한다. 실험 결과, 미디어 다중이용자들은 전환하기나 거르기 과제 모두에서 열등한 수행을 보였다. 이들은 언어 과제에서 수리 과제로 넘어갈 때(또는 그 반대), 대조군과 비교해 반응 시간이 더 느려졌다. 또한 이들은 환경에 방해 자극이 많아질수록 목표 자극을 정확히 인식하는 정도가 대조군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고, 작업 기억(working memory)에 등록된 정보 중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도 부족했다. 즉, 무시해도 되는 자극을 무시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미디어 다중이용자들의 전환 비용이 큰 이유가 거르기 능력 부족 때문이라 해석한다. 이들이 전환하기 과제 수행 시 반응 속도가 느린 것은 방해되는 주변 자극 또는 기억에 남아있는 관련 없는 자극들을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 이 실험 결과를 재해석해 보면, 멀티태스커는 스위칭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스위칭을 잘 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환상일 뿐이고 사실은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란 점에서[2], 미디어를 이용할 때 우리는 눈앞에 주어진 자극 그리고 예기되는 새로운 자극을 무시하지 못하고 그것에 끊임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출판된 나스 팀의 연구는 당시 시점에서는 새로운 미디어 이용 행태인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이용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하나의 미디어 기기에서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에 관한 연구가 등장한다[3]. 열두 명의 대학생들이 하루 동안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한 기록과 손목에 찬 피부 전도도 측정 장치의 기록을 모은 결과, 컴퓨터가 이용된 시간은 총 28시간이었고 이 시간 동안 1,584번의 작업 전환이 있었다. 각각의 작업, 즉 콘텐트 하나가 유지되는 시간의 평균은 65초였지만, 75%의 작업은 1분 이하였고, 50%가 19초(중앙값) 이하, 20%는 5초(최빈값) 이하였다. 그리고 각성 수준 평균의 변화 그래프를 보면, 작업이 전환되기 12초 전부터 상승세가 시작되고, 전환하는 순간 최고점을 찍고, 전환 후에는 다시 내려간다. 이 패턴은 특히 일하는 작업(문서 작성)에서 노는 작업(페이스북, 게임)으로 전환할 때 두드러졌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자극을 기대할 때 흥분하고 익숙해지고, 다시 기대하고 흥분하며 익숙해진다. 이 실험에서 이용자는 이메일에서 유튜브로, 유튜브에서 파워포인트로 스스로 선택하여 전환하였다. 이제 우리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아는 미디어는 선택하고 전환하는 우리의 수고를 상당히 아껴준다. 1분 이상은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도 물론 안다. 스마트폰에는 손쉽게 초 단위로 바꿔가며 자극받을 수 있는 앱이 수북하고, 소셜미디어엔 무한 스크롤되는 피드가 항시 대기 중이다. 물론 틱톡, 릴스, 숏츠도 있다.


인간의 습성

미디어는 그 기술적인 기교만이 문제가 아니다. 다음은 2018년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의 내용 중 일부이다[4].

우리 소셜 네트워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제지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콘텐츠에 불균형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 케이블 뉴스에 널리 퍼져있고, 한 세기 넘도록 타블로이드 신문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
우리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허용선을 어디에 긋든지 간에 그 선에 가까운 콘텐츠일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더 많이 이용한다. 심지어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말이다.
관여도그림.png 일반적인 관여도 패턴 from Facebook

이 글에는 위 그림과 같은 그래프도 제공됐는데, 가로축은 콘텐츠(종류 또는 수위), 세로축은 그에 따른 관여도로, 관여도 수준은 평평히 유지되다가 금지선에 가까워지면 급격히 상승하는 지수 함수 같은 모양이다. 콘텐츠를 어떤 기준에 따라 나열해 놓고 특정 지점에서 허용과 금지가 구분될 때, 금지되기 직전에 해당하는 수준의 콘텐츠 이용량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콘텐츠를 즐기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면서도 클릭하고, 좋아요나 싫어요를 누르고, 공유한다.

습관화(habituation)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본 기제로, 갓난아기도 같은 장난감을 오래 갖고 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르고 새로운 것, 조금이라도 더 강한 것을 원한다. 이렇게 점점 더 센 자극을 원하는 청중과 더 많은 청중의 반응을 원하는 인플루언서의 극단적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국내 뉴스에서도 몇 차례 다뤄진 바 있는 니코카도 아보카도라는 유튜버는 바이올린 전공자에 날씬한 채식주의자였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유명해지고 싶었던 그는 바이올린 영상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채식주의를 중단하고 채널의 성격을 “먹방”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에서 무엇이든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먹는다. 시청자들은 평범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꿈꾸던 대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대신 300파운드가 넘는 거구가 되었다. 초기 유튜버 시절 모습과 과체중에 따른 건강 문제로 산소호흡기까지 차고 먹방을 하는 모습을 대조해 놓은 이미지를 보면 정말 충격적이다[5]. 우리는 직접 만나서는 누군가에게 내가 구경해 줄 테니 아니 돈을 줄 테니 식당의 모든 메뉴를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인플루언서들처럼 예쁘거나 멋있지도 않고, 날씬하거나 근육질도 아니며, 그렇게 비싼 옷이나 가방을 그렇게 많이 가질 수도 없고,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여행지를 그만큼 자주 갈 수 없다. 한 실험 연구에서, 마른 몸매의 여성 사진을 본 여성들은 평범한 여성의 사진을 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증가했다. 그런데 사진 자극이 제시된 시간은 단지 20밀리 초였고, 참가자들은 사진을 보았다고 인식하지 못했다[6].

미디어에는 이제 어떤 기준에서건 정상분포 곡선에서 양극단에 위치할 만한 내용물들이 흔하다. 점잖아 보이는 콘텐츠라도 한 구석에는 새롭거나 신기하거나 이상하거나 충격적이란 조각 하나씩은 갖고 있다. 이런 조각들이 많은 콘텐츠를 나쁘다고 의식하더라도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외모, 생활 방식, 가치관, 정치 지향, 종교적 신념, 도덕적 판단 등 그 영향의 종류와 범위는 광대하다. 필터 버블에 갇혀 자신이 속한 온라인 세상에서의 상호작용에만 몰두하게 된 어떤 사람들은 그곳의 세계관과 현실의 세계관을 혼동할 것이다.


취약한 아이들

내가 접속하는 온라인 세상을, 넘어서는 안 되는 금지선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그런 내용물로 그득하게 만들 수 있다. 정화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주 쉽게 그렇게 된다. 이런 경계선적 자극물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알고리즘에 생물학적이거나 심리사회적 이유로 더 많이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도 그런 사람들이다. 최근, 저명한 사회 심리학자 조너던 하이트는 <불안 세대>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고 이는 미디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원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취약성을 악용하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대공황도 내지 않았던 수준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 미디어 이용의 영향에 관한 몇몇 리뷰 연구들을 종합하면, 미디어 이용이 인지 및 생리, 정신건강, 사회적 기능에 보이는 관련성은 나쁘거나, 가끔 좋거나, 무관하거나이다. 유의미한 관련성을 찾지 못한 연구들도 많고, 특정한 연령대(노인, 아이)가 미디어의 특정한 기능(인지 게임)을 활용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관련성이 나타날 땐 뚜렷한 방향성을 갖는데, 주의력 약화, 수면의 양과 질 저하, 특히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와의 연관성이다[7-10]. 오랫동안 세대 연구에 매진해 온 진 트웽이는 Z세대를 불행하고 우울한 세대라고 규정한다[11]. 이들은 10대 초반부터 외로움, 자존감, 삶의 만족도, 우울, 불안, 자해, 그리고 자살에 이르기까지 정신건강의 각종 지표에서 윗세대가 같은 나이였을 때보다 심각하게 나쁜 수준임을 수많은 통계 자료로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경기 불황이나 실업률 같은 경제적 조건이 아닌 스마트폰 때문이다[12]. 또한 그의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전화 통화 및 대면 사교 활동 빈도와 시간 그리고 수면 시간도 2012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지 않으며, 잠도 덜 자는 것이다. 덧붙여 이들 세대에서는 음주, 약물, 싸움과 같은 비행을 저지르는 비율이 줄었고, 면허도 덜 따고, 데이트도 덜 하고, 섹스도 덜 한다. 그래서 좋아진 지표도 있긴 하다. 미성년의 음주나 약물로 인한 사고와 출산율이 줄었다.

요한 하리가 디지털 디톡스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의 문제의식에 더하여 자신의 대자(godson)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를 보고 밖으로 끌어내 주었지만, 아이는 무기력하게 다시 끌려 들어간다. 하이트는 스마트폰을 아이들이 아동기에 해야 할 일들을 못 하게 방해하는 “경험 차단제”라 책망한다[13]. 이 경험 차단제는 여자 청소년과 남자 청소년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악을 끼치는데, 여아들은 소셜미디어라는 덫에 빠지고, 남아들은 유혹적인 가상 세계(포르노, 게임, 커뮤니티 등)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현실의 공동체에 발 디디지 못한 채 사춘기를 보내게 되고, 그 결과 이들은, 하이트에 따르면, 아노미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노미에서는 도덕이 형성될 수 없고, 아노미는 절망과 자살을 부추긴다[13, 7장). 경계선적 콘텐츠와 경계선적 행동이 만연한, 게다가 제재가 허술한 틈을 노려 불법 행위 또한 항상 출몰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위 <그림>의 경계선의 위치가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거나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심받는 행동이 금전적, 심리적 보상을 받는 세상에 몰입한 사람들은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타당한 행동이라 여기기도 할 것이다. 금지되어야 마땅한 수준 코앞까지 간 내용물과 그런 행동이 범람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상식이라는 감각 또는 도덕적 민감성의 경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우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세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청중이자 방관자로서 즐겼고, 관여도 곡선을 벼랑 끝까지 올리는 데 기여했다. 여성 유튜버 협박 범죄, 딥페이크 성범죄 등은 우리가 열렬히 보내 준 관심을 연료로 쓰는 공장에서 터져 나온 폐수다. 불행히도, 하이트가 말한 아노미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하리는 몇 차례의 위기를 이겨내고 3개월 간의 “언플러그드”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그가 일상을 되찾자,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오고 만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그가 결국은 실패하고만 이유에 대한 탐구서다. 그는 개인의 결심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직접 깨달았다. 해결책으로, 미디어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도록 정부가 규제하거나, 미디어 기업을 공영화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14, 9장]. 하이트도 미디어 기업의 청소년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소셜미디어 가입을 법적으로 금지하자고 제안한다[13, 10장].


구세대의 현상 유지 편향이기를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한탄에도 문자는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플라톤은 글자가 문제라는 의견을 글자로 남겼다[15]. 유튜브가 문제라고 유튜브에서 떠드는 것과 비슷한 일이겠다. 문자라는 기술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어렵지만, 그들의 문자 비판은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문화 지체같다. 인쇄 기술이 탄생했을 때나 라디오와 TV가 보급됐을 때도, 지식의 품질이 저하되고 불경한 내용이 확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신기술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는 비관적 예언이 존재했다. 그러나 문자, 인쇄, 전자 매체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와 문화, 풍요로움을 주었다.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관리하고 개선해 왔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진통을 잠시 겪고 있을 뿐이라면 좋겠다. 하리와 하이트의 근심 가득한 저작, 이에 동조하여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세대 논쟁인 것일 뿐이라면 좋겠다.

그런데 역사상 그 어떤 세대도 자신을 더 많이 죽이는 세대는 없었다고 역설하는 하이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2024.9.


[1] Ophir, E., Nass, C., & Wagner, A. D. (2009). Cognitive control in media multitaskers. PNAS, 106(37), 15583-15587.

[2] Rubinstein, J. S., Meyer, D. E., & Evans, J. E. (2001). Executive control of cognitive processes in task switching.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27(4), 763-797.

[3] Yeykelis, L., Cummings, J. J., & Reeves, B. (2014). Multitasking on a single device: Arousal and the frequency, anticipation, and prediction of switching between media content on a computer. Journal of Communication, 64(1), 167-192.

[4] “A Blueprint for Content Governance and Enforcement”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었던 글로, 현재는 남아있지 않으나 검색하면 원문을 찾을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notes/751449002072082

[5] Gurwinder (2022, Jun 30). The perils of audience capture. The Prism. https://www.gurwinder.blog/p/the-perils-of-audience-capture

[6] Chatard, A., Bocage-Barthélémy, Y., Selimbegovic, L., & Guimond, S. (2017). The woman who wasn't there: Converging evidence that subliminal social comparison affects self-evalua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73, 1-13.

[7] Ahmed, O., Walsh, E., Dawel, A., Alateeq, K., Oyarce, D. A. E., & Cherbuin, N. (2024). Social media use, mental health and sleep: A systematic review with meta-analyses.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367, 701-712.

[8] Firth, J., Torous, J., Stubbs, B., Firth, J. A., Steiner, G. Z., Smith, L., ... & Sarris, J. (2019). The “online brain”: how the Internet may be changing our cognition. World Psychiatry, 18(2), 119-129.

[9] Sanders, T., Noetel, M., Parker, P., Del Pozo Cruz, B., Biddle, S., Ronto, R., ... & Lonsdale, C. (2024). An umbrella review of the benefits and risks associated with youths’ interactions with electronic screens. Nature Human Behaviour, 8(1), 82-99.

[10] Uncapher, M. R., & Wagner, A. D. (2018). Minds and brains of media multitaskers: Current findings and future directions. PNAS, 115(40), 9889-9896.

[11] Twenge, J. (2023). Generations: The real differences between Gen Z, Millennials, Gen X, Boomers, and silents and what they mean for America’s future. Atria Books.

[12] Twenge, J. M., Martin, G. N., & Campbell, W. K. (2018). Decreases in psychological well-being among American adolescents after 2012 and links to screen time during the rise of smartphone technology. Emotion, 18(6), 765-780.

[13] 조너선 하이트 (2024). 불안 세대. 웅진지식하우스.

[14] 요한 하리 (2023). 도둑맞은 집중력. 어크로스.

[15] Ong, W. J. (1982).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ld. Routledge.

커버 이미지: Photo by dole777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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