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20대 아니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12월 24일에 도대체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엄청 심각하게 했던 것 같다. 마땅한 계획이 없어 이도 저도 안될 바엔 차라리 23일 밤에 잔뜩 과음을 해서 24일은 하루 종일 숙취로 시달리며 자다 깨다 하다 보면 어느새 25일이 되어 있을 거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던 것도 같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도대체 왜 크리스마스만 유독 당일인 25일 보다 전날인 24일을 '이브'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대우해주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부처님 오신 날 전날부터 막 설레고 들뜨고 그러지는 않으니까. 어쩐지 ‘이브’라는 이름이 붙으니 괜히 더 기다려지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25일 아침이 되면 분위기가 탁 깨지면서 그해 크리스마스는 이미 끝난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눈이 내려서 그런가? 연말이라 괜히 뒤숭숭해서 그런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면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이 있겠지만 위와 같은 쓸데없는 고민들이 싹 사라지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크리스마스에 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뭘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니까. 하기야 원래 크리스마스라는 게 원래 밖에서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하는 날이 아닌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보내는 날인 게 맞기도 하고.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풍경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 시즌 풍경을 살펴보면 우선 한 달 전쯤부터 조그마한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가 시작된다. 고백건대 총각 시절에는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트리는 미국 아니면 유럽 사람들이나 만드는 건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자연스럽게 매년 거실에 트리를 놓게 되고 아이와 함께 트리를 꾸미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능하면 트리에 장식을 달 때는 잔소리를 안 보태려고 한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삐딱하고 이상하게 보여도 아이 손으로 오롯이 만든 트리가 더욱 뜻깊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트리는 왜 만드는 건 즐거운데 치우는 건 그리도 귀찮은지 모르겠다. 우리도 꼭 다음 해 설쯤은 되어야 어쩔 수 없이 트리를 치웠던 것 같다.
아이가 갓난아기 때를 지나고 서너 살쯤 되면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고 갖고 싶은 장난감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이슈가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를 기쁘게 해 줄 것인가’였다. 또한 ‘어떻게 몰래 들키지 않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것처럼 꾸밀까’도 중요했다. 한 달 전쯤부터 자연스럽게 뭐가 갖고 싶은지 물어봤다가 며칠 전 미리 사놓은 다음 이브날 밤에 아이가 잠들면 거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선물을 놓아두는 거다.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살 때면 아이가 물건을 사는 걸 눈치 못 채게 괜히 아빠가 다른 데로 데리고 가서 시선을 돌린 다음 엄마가 몰래 결제하는, 마치 첩보작전의 한 장면처럼 사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면 혹여나 배달되어온 택배 상자를 아이가 볼까 싶어 못 보게 노력했으며 작년 선물 포장지와 올해 선물 포장지가 혹시나 같아서 아이가 알아챌까 매년 포장지를 새로 사서 포장해주기도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과 함께 카드도 주시는데 글씨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내는 매년 카드를 왼손으로 평소 글씨체와 다르게 적어서 주기도 한다. 이런 하찮은 수고들은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아이가 잠에서 깨 거실에 있는 트리 밑에 놓인 선물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싹 잊혔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인지 우리 딸아이는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다. 당연히 1년 내내 엄마 아빠의 말을 잘 듣는지 산타할아버지가 지켜보신다고 알고 있고.
산타할아버지에 관한 추억 한 가지. 대학생 때 아르바이틀 했는데 어떤 인연이나 계기로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산타할아버지 대역 알바를 했었다. 말 그대로 산타 복장을 하고 산타 역할을 하는 일인데, 몸매야 따로 꾸밀 필요가 없이 산타할아버지 느낌이 이미 충분했고 거기에 흰 수염과 빨간 의상을 갖추어 입으면 준비 끝.
백화점에서 아이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기도 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돌아다니면서 학부모들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기도 했다. 이럴 경우 선물에 아이가 1년 동안 평소에 잘한 것과 못한 것이 부모가 적은 메모로 붙어 있었는데 그 메모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목소리 흉내를 내며 한 마디씩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우리 OO 이는 엄마 심부름을 아주 잘한다면서? 아주 기특해요. 근데 장난감을 잘 안 치운다지? 내년에도 그러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줄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애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도대체 이 할아버지가 그런 디테일한 사실들은 어떻게 알았지 하는 경외심 가득한 눈빛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이내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요즘에도 아마 그런 패턴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었던 건 5~6살까지는 산타의 존재를 믿기에 안아주려고만 해도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하거나 왕~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7살 아이들 만해도 머리가 커져서 산타의 존재를 믿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아이가 나에게 "산타할아버지! 바지 밑에 청바지 보여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껏 해본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로 기억되고 있다.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어쩌다가 이제까지 철썩 같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게 되었을까? 물론 부모가 거짓말과 사기에 능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산타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은 것 같은 효과를 내는 사진 합성 어플이 있길래 장난 삼아서 내가 산타와 함께 찍은 것처럼 사진을 찍고 합성을 해서 크리스마스 아침에 딸아이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다. 어젯밤에 찍은 거라며. 그랬더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우와!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녀가셨어!!” 이러는 게 아닌가. 어쩐지 괜히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하고 넘어갔었다.
근데 문제는 그 나중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거다. 앞서도 말했지만 초등학교 3학년 현재 우리 딸아이는 아직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 둘째, 셋째들은 첫째들의 영향을 받아 일찍 그 비밀을 알아버린다고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딸아이에겐 천기를 누설해줄 언니나 오빠가 없다.
아이에게 언제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아내와 상의를 해보기도 했다. 혹시나 10년 가까이 거짓말을 해온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나 않을까, 이런 불신으로 해서 상처가 남고 부모 자식 간에 신뢰가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덜컥 든 거다. 그랬더니 아내의 깔끔한 정리.
"어렸을 때 산타 없다는 걸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기억나?"
"아니"
"그렇게 충격적이었으면 지금도 기억날 거야. 근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나중에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어도 크게 상처가 되지 않는 거 아닐까?"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주변을 봐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산타할아버지에 대해서 자기에게 거짓말을 해서 그때부터 의절하고 지금도 부모님을 불신하고 있다는 막장 스토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부모가 나쁜 의도를 갖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 입장에서 봐도 자기를 위한 부모들의 깜짝 이벤트로 느끼겠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아이가 말을 잘 듣게 할 수단이 있는데 그걸 일부러 미리 없애버릴 필요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말을 안들을 때마다 "너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주시지 말라고 얘기할 거야!" 란 협박이 여전히 꽤나 잘 먹히고 있으니까.
아마도 올 크리스마스 시즌쯤에는 학원을 같이 다니는 언니들을 통해 산타의 존재 유무를 알게 되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아빠에게 와서 어떻게 10년 동안 자기를 속일 수 있냐고 억울해하면 어떤 리액션을 해줘야 할까?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좀 더 기분 좋게 주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깜짝 이벤트 삼아 착한 거짓말을 한 거야. 그동안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같아서 너도 좋았잖아. 그러니까 너도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거 동생들한테 먼저 얘기해주면 안 돼. 알았지? 그럼 동생들이 선물을 받는 재미가 없어지잖아.”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미지수다. 그냥 한번 부딪쳐 보는 거지 뭐. 어차피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순간이 처음이라 막막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살아보니 꼭 그렇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아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우리 아빠들도 한 해 동안 착하게 살아보자. 올 크리스마스엔 산타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선물을 주실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