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스물네 번째 이야기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기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같은 최신 가요로부터 몸과 마음이 모두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의 경우엔 직업적 특성상 또래 아저씨 아줌마들 보다는 그나마 요즘 가요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접하고 또 알고 있다고는 자부하지만 쏜살같은 트렌드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헉헉대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룰라'니 '투투'니 하는 X세대 시절 인기 그룹들의 음악이 들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경험상 안 그래도 따라가기 힘든 대중음악 트렌드에 한번 더 확 뒤처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출산과 육아가 아닐까 싶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맨날 하는 얘기가 '요즘 나오는 노래는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어..' 일 정도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요와는 멀어지고 동요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나의 사례에 맞춰 단계별로 설명하면서 그때그때마다 아이와 듣기 좋은 추천곡도 소개해보겠다.
내 맘대로 정해본 연령별 추천곡
첫 번째 단계는 보통 임신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임신을 하고 나면 당연히 태교를 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것이 '동요 들려주기'이다. 아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태교를 한다는데 홀로 된 이별의 아픔이라느니 죽도록 사랑했다느니 같은 노래를 들려줄 순 없지 않은가? 쿵쾅거리는 비트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랩을 들려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보통 동요를 들려주게 되는데 임신한 아내와 침대에 누워 '아가야~ 동요 듣고 잘 커라~' 기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때쯤 많이 들은 노래로는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로 시작하는 <멋쟁이 토마토>나 아이들이 편식 못하게끔 세뇌를 시키는 것만 같은 <야채 삼총사> 등의 노래들이 있다. 그때가 아마 어른이 되고 나서 동요를 처음 접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은데 '와 요즘 동요 퀄리티 상당하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두 번째 단계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시작되게 된다. 시기상으로는 4~5세 정도까지라고 보면 되겠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당연히 자동차를 타고 다닐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지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가질 못한다. 카시트가 답답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재우려고 해도 잠을 자기 싫어하거나 잠깐 자다 깨기 일쑤이고. 여하튼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갈 때 특히 1시간 이상 장거리 이동을 할 때에는 이러한 짜증으로부터 아이의 관심을 분산시킬만한 요소가 필요한데 역시나 가장 손쉬운 방법이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다. 태블릿으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어쩐지 시력에도 안 좋을 거 같아 꺼림칙하고 결정적으로 우리 딸아이는 멀미가 심해 그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보통 이때는 부모들에게도 익숙한 <작은 별>이나 <곰 세 마리> 같은 클래시컬한 동요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런 동요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 CD를 사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멜론이나 벅스 같은 음악 어플들이 있어 그런 금전적 물리적 수고로움은 덜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름 이 정도면 한참을 듣겠지'하며 100곡을 넘게 준비해 봐도 한 두 달 듣다 보면 '또 그 노래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위 말해 들을 노래가 없어지게 된다는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른바 만화 주제곡, 애니메이션에 삽입되었던 노래들이다. 오프닝이나 엔딩곡뿐 아니라 <뽀롱뽀롱 뽀로로>나 <꼬마버스 타요>등의 경우 에피소드 전체가 마치 뮤지컬 넘버처럼 노래로 꾸며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이가 노래만 들어도 자연스레 예전에 봤던 만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되어서 더욱 흥미롭게 듣는 것 같았다. 여기서 추천곡은 전주만 시작되어도 아이가 온몸을 흔들 정도의 중독성 있게 신나는 멜로디가 강점인 '뽀로로'의 수록곡 <바라밤>과 어른도 듣다 보면 비 오는 날 당장이라도 장화 신고 뛰쳐나가 발로 물장난 치고 싶게 만드는 '타요' 수록곡 <주룩주룩 참방참방> 등이 있다. 이 맘때쯤에 자꾸 들으면 귀가 트인다길래 영어노래도 몇 번 들려줘봤지만 딸아이가 듣기 싫다고 해서 흐지부지 되었다. 뭐 이런 건 단순한 부모의 욕심일지도 모르고.
그다음 단계는 동요에서 가요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하겠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일듯 싶은데 말이 뭔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최신 동요'쯤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부모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노래들을 듣기 시작하는데 그 노래들이 마냥 동요 같지도 않고 약간 가요 느낌도 난다고 할까? '아빠 사랑해요'란 가사가 참 예쁘게 들리는 <행복의 날개>나 어느 대안학교의 교가라고 하는, 가사 만으로 감동적인 <꿈꾸지 않으면>이란 노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을 일일이 찾아 듣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뭔가 적당한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데 마땅히 노래가 생각나지 않을 때 도움이 될 TV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고, 약 5년 전쯤 음악채널 엠넷에서 방송되었던 <위키드>라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좋다.
부모 입장에서 참 잘 만든 프로그램 <위키드>
'전 국민 동심 저격 뮤직쇼'가 부제인 <위키드>는 'We Kid' 란 이름 그대로 아이들이 출연해 동요로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긴장감 넘치는 김성주 MC의 진행이 돋보이고 박보영, 유연석, 타이거 JK 등이 멘토로 나와 눈높이에 맞게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리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어찌나 그리 노래를 앙증맞게 잘하던지! 심지어 듣다 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지금은 훌쩍 커서 중학생이 되었겠지만 그때만 해도 어리기만 했던 제주소년 오연준 군의 노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주제곡 <바람의 빛깔> 은 미국 가수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가 부른 원곡 <Colors of the wind>를 뛰어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진짜 맑고 깨끗한 보이스라는 게 이런 거구나' 듣고 있으면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그 후로 딸아이와 함께 <위키드>를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른다. 총 8회밖에 안되기 때문에 다 보고 나도 아쉬움이 남았다. 워낙 재미있게 본 데다가 노래까지 익숙해지니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 하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요즘도 차를 타고 다닐 때면 <위키드>에 나왔던 노래들을 듣는다. <안녕>, <고향의 봄> 같은 기존곡들부터 <빛>, <내가 바라는 세상> 같은 창작곡들도 있어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위키드> 삽입곡들도 지겨울 때쯤 되면 자연스레 그 후 발표된 오연준 군의 노래들을 이어 듣게 된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아이와 함께 노래를 듣기도 하고 따라 부르기도 하다 보면 한번 칭얼거리지도 않고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오연준 군이 부른 <제주도 푸른 밤>, <쉼이 필요해> 같은 노래들은 어른인 내가 들어도 참 좋다. 특히 우리 딸과 같이 아기들 동요는 좀 유치하고 어른들 가요는 아직 이르다 싶은 시기에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딸아이가 보여줄 춤이 있다길래 뭔가 싶어서 봤더니.. 유튜브에서 보고 연습했다며 한동안 유행했던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춤을 춰보이는게 아닌가.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딸아이의 춤을 보며 어쩐지 이제 슬슬 다시 최신가요들과 친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친해져야 할 것만 같았다. 딸아이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면 그깟 아이돌 노래 못 따라 할게 뭐람! "아빠도 왕년에 <난 알아요>나 <잘못된 만남> 같이 숨 한번 제대로 쉴틈 없는 빠른 노래도 잘만 따라 불렀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