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공주, 병원에 간 사연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스물세 번째 이야기

by 박뚠뚠

아이가 세 살 정도 됐을 때 주말을 맞아 서울 외곽에 있는 대형 아울렛을 찾았다. 요즘 아울렛들은 워낙 잘 만들어놓아서 먹거리도 많고 놀거리도 많아 주말에 가족끼리 시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그래서 그날도 쇼핑도 할 겸 나들이도 할 겸 오랜만에 아울렛을 찾아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옷가게를 들어갔는데 종업원이 우리 딸을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아유 윙크공주가 왔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해서 아이를 봤더니 정말 윙크하는 것처럼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맘때쯤이야 뭐든 신기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나이니 그저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리 딸 윙크 잘하네" 하며 칭찬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한쪽 눈을 윙크하는 것처럼 찡긋 감는 횟수가 더욱 빈번해졌다. 특히 햇빛이 눈부시게 밝은 곳에 나가면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어 가까운 안과를 찾았다. 별일 아니겠지 했는데 의사분의 말은 별일 아닌 게 아니었다. 아이가 간헐성 외사시인 것 같다고 했다. 단어가 어렵고 복잡한 느낌이지만 결국은 '사시'라는 거였다. 사시라니. 내 딸이 사시라니. 딸과 아내의 눈치가 보여 별거 아니라며 괜찮은 척 안심시켰지만 내심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침만 몇 번 콜록거려도, 코파다가 코에서 피가 조금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한데.. 걱정이 덜컥 됐다. 혹시 평생 못 고치는 건 아닌 건지.


의외로 아이들에게 흔한 간헐성 외사시

병원에서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간헐성 외사시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해보았다. 간헐성 외사시. 말 그대로 가끔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증상을 뜻했다. 우리 아이의 경우엔 오른쪽 눈이 그랬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는데 꽤 많은 아이들이 간헐성 외사시 진단을 받는다고 했다. 100명 중에 3~4명 꼴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한 빛이 있는 상황이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외에는 딱히 치료법이 없어 보였다. 종합해보니 다행히 수술을 하면 괜찮아지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의 눈을 수술한다는데 어찌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모든 부모의 마음이 똑같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실력 있는 의사분을 만나고 싶었다. 역시나 인터넷 정보를 뒤져 어린이 사시 분야에서 저명한 선생님들을 찾아보았다. 세 분 정도로 압축이 되었는데 고민 끝에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렵게 예약 날을 받아 병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엘 갔는데... 이럴 수가!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눈이 아파 이 시간부터 병원엘 와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간단한 검사를 받고 나서 드디어 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시간. 확실히 전문가 선생님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가 무척이나 능숙해 보였다. 아이의 눈 상태를 살펴본 후 선생님의 말씀. 간헐성 외사시인 것 맞고 증상이 더 심해지지 않는지 당분간 경과를 지켜봐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어리니 좀 더 큰 다음에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씀이셨다. 특별히 부모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없냐고 여쭈었더니 특별한 방법은 없고 부모가 아이의 눈 증상이 언제 얼마나 어떻게 심해지는지를 잘 체크하고 있다가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고 한편으로는 긴장도 되었다.


그 후 약 5년 가까이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을 다니며 검진을 하였다. 다행히 아이의 눈 상태는 크게 악화되지 않았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난 후 여름방학을 맞아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내 수준에서 이해한 수술의 원리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눈동자를 당기는 근육의 힘이 느슨해져서 눈이 자꾸 밖으로 빠지는 것인데 그 근육을 잘라 이어 붙여서 당기는 힘을 복원시킨다는 것이었다.

2박 3일 입원을 하였는데 입원 둘째 날 수술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수술 당일.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섞어가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수술을 앞둔 수십 명의 환자들 무리에 섞여 아침 8시부터 휠체어를 타고 대기하고 있다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자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착잡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난 후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감사하게도 무사히 끝난 수술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 다음 날 퇴원했고 눈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어서 며칠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안약을 넣어주기만 하면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 시간이 더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아 수술도 잘 되었고 경과도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 나중에 몇 년 지나서 재발할 수도 있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말씀도 들었다. 모든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모든 게 참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병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언젠가 병원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가 3장이 있었다. 그런데 접수다 검사다 정신없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주머니에 있던 만 원짜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옆에 있던 아내가 짜증이 잔뜩 섞인 내 얼굴을 보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냥 여기 눈 아픈 아이들한테 치료비 보태줬다고 생각하자!"


그 말을 들으니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화가 가라앉았다. 그래... 관점을 달리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수많은 아이들을 보며 눈이 아픈 아이들을 위해서 언젠가 꼭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아이가 완쾌하고 나면 꼭 실행에 옮겨야지... 그때의 간사한 다짐은 부끄럽게도 아직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그 다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 딸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고 금방 낫는
세상이 얼른 오게 해 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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