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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29. 2022

상황이 사람을 만들지

학습된 무력감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시련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이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1년 간 나는 평생 겪지 않아도 될 모욕과 고통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에 놓여진 나는, 삼십 대 초입 여성으로서의 나는, 홀로 선 3년이라는 시간이 어머니와 살았던 30년보다도 길게 느껴질 정도로 버거웠다. 결혼 적령기라는 사회의 시선 탓일까.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좋지 않은 초기 남성모델 때문에 쉽게 폭력적 신호를 감지하며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기도 했다. 청소년기 동성 친구들의 짓궂은 성적 농담에 받아칠 정도의 지식은 있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내게 폭력이었으며 그들에게 섞이는 건 힘겨웠던 것 같다-여학교 안에서의 간접적 경험일 뿐이었다. 자존심 상한 남성들의 방어기제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실제 겪어보아야 아는 것이고, 나는 남녀가 섞인 대학원 진학 후에 비로소 알았다.


처음 그들은 상냥하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동성 친구들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오기에, 나는 이성과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라고도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그게 모두 목적을 가진 접근이라는 것도 최근의 사건들로 알았다. 지난 1년을 거치며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될 정도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나의 경우 타인에 의해 불가항력으로-그것이 누군가의 공개적인 감정표현 탓이었고, 그게 몇 사람이나 되었고, 반복되어 나의 평판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면, 모두의 시선에서 나는 '그러한 사람'으로 굳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의 공개적 화살'을 받았던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평가 대상이 되어 섞일 수 없는 외지인이 되어버린다. 남성의 그러한 접근이 싫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내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다. 동시에 나의 결정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개중에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여성을 망가트리고자 한다. 가질 수 없다면 망가지길 바라는 폭력적 방어기제를 가진 이들이 아직도 이 사회에는 넘쳐난다.


구체적으로 나의 상황과 폭력 주체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역풍이 불어올 거란 걸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그저 숨죽인 채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구경꾼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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