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스로에게 묻는 가장 깊은 질문이다.
"어느 책 읽는 사람의 이력서"(마르틴 발저 저/안인길 역/미래의창)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책이 우리의 내면에서 활동할 때 우리는 조금도 수동적이지 않다.
책 읽기는 무미건조한 일인가? 우리는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까맣고 하얀 차원이 없는 철자가 줄 서 있는 데서 우린 색깔을 만든다.
냄새와 동작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책에서 아픔과 불안이 나타날 경우 그것이 우리가 경험했던 아픔과 경험과 더불어
인생에 자극을 주지 못하면 책은 단지 종이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17쪽)
독일 소설가 마르틴 발저(1927~2023)의 한 책에 나오는 글을 접하며
"독자"의 역할, 독자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때때로 질문을 하는 것 중에,
"당신은 책을 쓰는 작가가 될 것입니까?"
"당신은 책을 읽는 독자가 될 것입니까?"
"당신은 멋있어 보이지만 바늘구멍인 작가가 될 것입니까?"
"당신은 평범해 보이지만 숭고한 역할의 독자가 될 것입니까?"
"당신은 책을 내지만 거의가 쓰레기통에 박힐 작가가 될 것입니까?"
"당신은 책을 읽지만 읽는자의 가치가 영원한 독자가 될 것입니까?"
계속적으로 내면의 크루(인도자)가 묻는다.
작가가 될 것인지, 독자가 될 것인지를........
아마 나는 독자로 계속 남아있을 것 같고,
"작가"라면 서평집을 쓸 수는 있겠다.
무엇을 창작하거나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데는 약하지만,
무엇을 읽고 그 느낌과 상념, 더해서 분석, 소개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수백여 권의 서평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예정이다. 본인의 브런치를 살펴보길 추천한다)
책을 쓰겠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그렇게 나온 책을 읽는 사람(독자)은 씨가 말라가는 현실,
(거리에서, 대중교통<특히 지하철>이용 중 책 읽는 이가 거의 없는게 그냥 보이는 현실 아닌가)
계속적으로 몆 권의 책을 완독하고, 다시 다른 책을 읽는 가운데
특히 "독자"로서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 본다.
(음악-미술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가-미술가만이 아니라 청중,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니)
또 다시 구입하고 집에 도착할 책들을 기다리며,
다시금 "독자"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