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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Jul 03. 2024

살다보니 인생은 대항해시대

선택한 캐릭터로 살아가는 플레이어 빨이 중요한 건에 대하여

<대항해시대2> 오프닝 화면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한 게임을 접했다.

바로 일본 KOEI 사에서 발매한 <대항해시대 2>라는 게임이다.

아마 게임 잡지를 샀었는데, 그 부록으로 받았던 것 같다.

(옛날에는 게임 잡지가 있었고, 부록으로 게임 CD를 주었다. -옛날사람-)


<대항해시대>는 15세기~17세기의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게임을 시작하면, 5~6명의 캐릭터들 중 맘에 드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그를 통해 전 세계 대륙을 섭렵하는, 말 그대로 본인만의 ‘대항해시대’를 이룩하면 되는 것이다.

캐릭터가 지닌 환경이나, 또는 역량, 기술들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거나, 아니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캐릭터를 선택해서 항해를 나가면 된다.




<대항해시대 2>는 지금도 완성도와 고증 면에서 인정받는 명작 게임이지만,

나에게는 대항해시대가 무척 어려운 게임이었다.

캐릭터를 선택하면 부여받는 배부터 종류와 크기가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선원 동료를 얻어야 하는 건 물론, 금화와 식량들, 때론 무역품들까지도 싣고 바다로 나가고,

다음 항구에 정박해 거기서 또 정보를 듣고 그다음 플랜을 세워야 하는 과정이 나한테는 쉽지 않았다.

거기다 오랫동안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갑작스레 태풍을 맞이해서 배가 뒤집혀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또는 해적을 만나 배가 털린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오랜 항해에 식량이 떨어져서 선원들이 굶어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게임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뭐 어쩌란 거지.‘ 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쉬운 난이도의 부유층 캐릭터를 선택하곤 했다.

물자도 빵빵하고, 자원도 많이 들고 가고, 돈도 많은, 그런 캐릭터였다.

그 캐릭터와 함께라면 바다도 멀리 나갈 수 있고, 자원 교류도 누구보다 쉽게 할 수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 역량이 딸려서 그런지 그 캐릭터를 가지고도 늘 허덕이곤 했다.


가장 최강의 난이도는 빨간 머리 여자 해적 캐릭터였다.

생활력과 정보력, 무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기본적인 자원이나 물자가 없어서 맨땅에 헤딩이 기본이었다.

다음 항구로 가서 재빠르게 보완하지 않으면 금방 식량이나 자원이 떨어지고 만다.

다만 어디에 내어놓아도 살아남는 강한 생존력 덕분에 그녀는 어찌어찌 헤쳐나간다.

나는 이 캐릭터를 한번 정도하고 거의 손대지 않았는데, 이유는… 너무 어려워서였다.

간혹 주변에선 이 빨간 머리 여자 해적 캐릭터로 <대항해시대 2>를 공략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 보면,

게임은 물자나 자원빨이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빨이 맞는구나 싶었다.


<대항해시대2> 캐릭터 선택 화면. / 여기서부터 난이도가 갈린다.



그런데 요새 인생은 이런 <대항해시대 2>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환경을 만나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없고, 주어진 자원과 역량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처음 주어진 캐릭터의 난이도는 누구는 쉬운 편이고, 누구는 극악의 난이도를 갖고 시작하지만,

망망대해를 건너면서 동료를 만나고 돈을 벌어나가는 그 과정 속에서

결국 <대항해시대>를 이룩하는 건 플레이어 빨이 무척 중요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


빌 게이츠가 말했지, “인생은 불공평하니, 불공평함에 익숙해지라.”라고

세상에는 쉬운 난이도의 캐릭터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악의 난이도의 캐릭터로 꾸역꾸역 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좀 힘들다면,

'아, 내 인생의 캐릭터는 이런 면에서 난이도가 높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만의 ‘대항해시대’를 이룩하기 위해 향해 가고 있을 뿐이고,

캐릭터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빨 (역량과 마인드)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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