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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30. 2021

홀로 몰두하는 사람들



결혼을 하고 좋은 점은 한 공간을 홀로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과 거실 그리고 화장실로 이어진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어디에서든 혼자 있을 수 있고 이 점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는 전혀 몰랐던 고독의 평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거나 제사 때문에 할머니 댁에 하룻밤을 보내셔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실의 밤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그런 시간은 1년에 한 번 될까 말까였기 때문에 전날부터 설레는 시간을 보내는데 가령 혼자 먹을 저녁을 고심하고 음악 선정부터 잠자리 배정까지의 섬세한 플랜을 짜두면 고요한 먹색의 밤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아버지가 담석증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게 된 며칠은 그 집에서 혼자 4일이나 보게 된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무 때나 들리던 엄마의 설거지 소리와 생활소음이 없어졌고 아침마다 다투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뮤즈 된 공간은(어쩔 수 없이) 참으로 좋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집이라니. 나는 그날 새벽 2시까지 가로등 불빛에 흔들리는 거실에 누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자는 기분을 만끽했다. 지금 보면 별 일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내 방에서 조용히 있고 싶어도 삼시세끼 불쑥 문을 열어 ‘밥 먹어라’는 엄마의 소리를 들었고 책을 읽고 싶어도 거실 TV 소리에 전국 노래자랑이 들리던 함께 사는 집 수준이 너무 지겨웠다. 그래서 조용히 차분한 공간과 배고플 때 밥 먹는 자유로움을 그토록 갈망했던 것 같다.



둘이 함께 산다고 해도 일하는 성인이 같이 머무르는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주말을 제외하면 평일의 밤은 서로의 얼굴에 묻어있는 피로를 씻고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단 몇 시간이 최고의 순간이다. 물론 나는 야근이 잦은 남편을 만나 철저히 혼자인 시간을 자주 만나는 셈인데 이때만큼은 나의 무드를 격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특별한 취미도 재밌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고요한 시간에 혼자 사부작사부작거릴 수 있다는 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견뎌내어 무중력이 지배하는 우주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일이다. 마치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일처럼 낮의 시간이 아득한 느낌이랄까.


가끔은 음악소리도 방해가 되는 날이 있어 그때는 철저히 무음의 세계를 보낸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위층의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 또한 홀로 몰두하는 공간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 곳에도 발행하지 못할 허접한 글을 쓸 때면 이 쓸모없는 시간이 더없이 중요하다.



더 늦기 전에, 정말 식구들에게 발목이 잡혀 땅에 묻히기 전에, 나는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숨어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식구들과 거리감을 둘 공간이 필요했다.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므로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시집을 읽거나, 몽상을 하거나, 끊임없이 단어를 열거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것마저 마저도 최선을 다했다.
(책,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시인을 꿈꾸는 주인공은 조카들을 키우면서 한 공간에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지낸다. 이혼한 동생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본인은 가정을 돌보면서 자신의 쓸모없는 존재를 매일 이어지는 필사의 밤으로 붙잡는다. 써지지 않는 시를 그토록 동경하면서 그 공간에 제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집을 나오는 주인공은 최선을 다해 홀로 몰두하는 방법을 찾는다.


한동안 나의 처지를 이입하며 저 책을 읽었다. 써지지 않는 글을 계속 붙들고 있는 내가 보였고 갖은 핑계를 대며 어쭙잖은 단어만 나열하고 있는 나를 찾았다. 늘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적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욕심도 부렸다. 그런 나는 글을 잘 쓰는 재주는 없으면서 글 멋만 흉내 내는 못난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이 가득 차면 나는 늘 한 사람을 생각하며 애써 글을 쓴다. 새벽 2시, 작은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나의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쓸쓸한 뒷모습을 생각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낮은 무섭고 밤은 아늑해서 고요한 나의 세계가 허락한 글들을 밤새 읽어 치운 날들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받은 위로는 그 어떤 말보다 가깝게 느껴졌고 건조하고 담담한 글들이 내 곁에 맴돌았다. 나도 그런 말들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이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내 욕심에 불과하니 그저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우주 안의 작은 지구와 그 안에 담긴 더 작은 자신, 사람들과 더불어 생의 궤도를 공전하고 자전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지금 여기의 일이나 오늘 하루의 상황에서 시선을 옮겨야 구직 활동을 계속할 힘과 마음이 생겼다. 하루를 산다는 건 지구의 한 귀퉁이, 작은 카페에 앉아 있는 자신에게 허락된 찰나의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야 거절이나 외면, 모두 견딜 만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카페는 언제나 중요한 공간이었다. 시험공부도 취업 준비도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했고 일할 때도 중요한 아이디어는 사무실이 아니라 카페에서 얻었다. 카페는 시간을 보내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책, 우리가 잃어버린 것)


홀로 몰두하기 위한 물리적인 공간은 꼭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집은 혼자의 기분을 느끼기 어려운 공간이어서 함께 만들며 견고히 다지는 곳에서 홀로 있을 경계는 희미하다. 그럴 때면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 카페로, 호텔로, 영화관으로, 공원으로…

그곳이 어디든 각자의 ‘자기만의 방’ 혹은 ‘19호실’을 향해 떠난다. 나의 경우 도서관 > 스타벅스 > 런던의 작은 방으로 그 영역을 점차 넓히다 결혼으로 이르렀다. 물론 지금 이 집도 내가 엄마가 된다면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뀌겠지만. 아직까지는 홀로 유영이 가능한 광활한 우주의 공간이므로 최선을 다해 혼자서 몰두하는 시간을 보낸다.


몰두하고 일은 대단하지 않다. 갓 지은 밥을 겉절이와 먹는다거나 서평 활동을 통해 읽은 책을 갈무리하는 시간을 갖거나 고이 미뤄두었던 영화를 결제하는 일들. 너무도 사사롭고 티끌만 한 일이어서 어디에 말도 못 하고 내 다이어리에나 적어 둘 일이지만 나를 힘내게 하는 것들은 결국 이렇게나 작은 일뿐이다. 최근 기분 좋았던 일을 덧붙이자면 회사에서 쓸 다이어리를 고르기 위해 아트박스까지 가서 무려 천 원이나 주고 하얀색 심플한 수첩을 산 건데 그게 뭐라고 고심에 고심을 더하며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동안 회사에서 나눠준 빨간색 다이어리만 3년을 쓰다가 처음으로 내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기쁨을 허락한 일이다. 이렇듯 나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일도 해보고, 한계만 짓던 내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계기도 생긴다.(그동안 회사 다이어리에 단 10원도 쓰기 싫었다…) 조용하고 은밀한 자신감이 생긴달까? 남들 눈을 속이는 일 말고 내 자신에게 더 진실할 시간을 갖는 일이 바로 홀로 몰두하는 사람의 기쁨 일지 모르겠다.


자기 세계에 잘 몰두하면 남의 세계를 질투하는 일이 줄고 타인을 덜 괴롭힌다.(줄어들 뿐이지 전혀 하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하겠다) 짜증 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날엔 그 순간을 잘 넘기기도 한다. 결국 홀로 몰두하는 시간이 올 걸 알기 때문이며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엄마는 암수술 이후 집을 떠나 요양병원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전화통화 목소리가 더 밝아졌고 아빠는 집에 홀로 남아 도서관에 다니며 책 읽는 재미를 찾으셨다. 우리 가족은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늘 한 공간에서 복닥복닥 살았는데 이제야 각자의 공간을 떼어 서로의 시간에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지내며 서로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어봐야 주변이 더 애틋하고 소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을 통해 우리는 혼자일 때 주위를 차분히 관찰하고 눈앞에 닥친 고민과 걱정을 한 줌씩 꺼내 놓을 수 있게 된다.



어제는 남편과 싸워 집안 공기가 차가웠다. 어제야말로 나의 ‘19호실’이 절실했지만 함께인 공간에서 독립된 공간은 없었고 그토록 혼자일 오늘을 기다렸다. 남편은 야근으로 늦는다고 하니 2시간 남짓 홀로 몰두할 시간이 생겼다.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영화를 볼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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