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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an 24. 2022

우아하게 실패하고 싶습니다


2022 1월이다. 야심차고 멋있는 새해 다짐 같은  써보고 싶었지만 도대체  써야 할지 모르겠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달에 실패에 관해 써보려 하는 것은 절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깔난 글을 한편 써보고도 싶었고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운 소원을 적어보고도 싶었고     벽돌을 쌓듯 성실하게 글을 써내겠다고도 해볼까 했지만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일들이라서 내게 가깝고 가장    있는 , 실패에 관하여 써보려 한다.



나는 실패에 약하다. 뿐만 아니라 거절을 하고 받는 일에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내게 실패는 곧, 어떤 일을 했을 때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세상의 거절과 관련이 높고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가리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들이 줄줄이 안 되고 꽉 막힌 것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죄책감, 바보스러움, 후회가 동시에 밀려들면서 굉장히 시야가 좁아진다. 그리고는 세상 누구도 건들지 못할 비관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그때일 뿐, 실패의 그림자 앞에선 이성이 마비되어 속수무책이다.

내가 실패를 다루는 방식은 대개 다음과 같다.

(1) 합리화 (2) 회피 (3) 남 탓 (4) 운명론


(1) “어차피 열심히 안 해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2) “아 몰라, 그냥 난 안 되는 인간인가 보지”

(3) “타이밍 그지 같았네”

(4) “이게 내 팔자인가..”


하나같이 다 못나고 찌질한 변명들로 가득 찬 말이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하니까 실패에 대처하는 나의 방법들도 모두 후질 수밖에 없다. 모른척하거나 아예 없었던 일로 하는 것. 이런 경험들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생기는 문제는 몸은 어른이지만 모든 일에 어린애처럼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즉, 실로 굉장히 유치한 어른이 되어 버리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쭉 살고 싶다면 크게 상관없지만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바꿔야 한다.


우아하게 실패하고 싶다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에 우아할  - 허지원 심리학과 교수>


매번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콤플렉스가 되면 실패를 피하고 싶어 무리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세상에 실패하지 않는 삶은 없다. 그런 삶이 있다면 아마 그 자체로도 어떤 결함이 있을 게 분명할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 수근수근거리고 질투할게 뻔하니까. 세상은 모순덩어리의 결정체이고,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매번 벌어진다. A=B  공식은 수학의 정석에서나 풀리는 정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실패를 꽤 우아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절실하다.

이런 고민에 한창 빠져있을 때, 허지원 교수의 칼럼이 무척 도움이 됐다. 적힌 모든 글이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내용은 잦은 실패 경험으로 만성적인 무력감과 공허감을 겪는 시기에도 당신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 부분이었다.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보다 그런 습관적인 투정은 그만 부리고 툭 털고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말은 그 어느 조언보다 현실적이고 우아했다.(돌에 걸려 넘어졌을 때 훗 하고 한번씩 웃고 별 일 아닌 듯 무릎을 툭툭 털고 우아하게 일어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아이씨 쪽팔려”하며 우물쭈물 후다닥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타인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하다. 다들 자기만의 확대경을 갖고 있어서 본인의 작은 점은 우주보다 크게 보이고 거기에 매몰돼 주저앉기 참 쉽다. 남이 보면 그까짓 일로 뭘 그러냐고 할 사안들이 본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돼버리기 때문에 작은 실패도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이 커진다. 그리곤 자꾸만 과거의 경험이 발목을 잡고 실패의 늪으로 데려가니 손 놓고 무력하게 지내는 시간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확실히 잦은 실패는 주저앉게 만든다.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있는   했는데 어쩌라고하면서 기억과 사고를 다잡으세요. 기분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표류하게 두지 말아요. ‘뭐라도 하자라며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의 머리끄덩이라도 잡아서 일으키는데  우아합니다. ‘뭐라도 하자’, 꾸준한 습관만이 당신의 길을 냅니다.

<실패에 우아할  - 허지원 심리학과 교수>


그러니 습관을 바꿔야 한다. 실패를 만회해 보려 발버둥도 쳐보고, 과거에 안 됐던 경험을 곱씹는 대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일상을 환기시키는 습관을 몸에 들여야 한다.



2주 전, 병원 블로그의 글이 누락되는 일이 생겼다. 열심히 쓴 글이 사이트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몇 초 동안 ‘어떡하지’를 100번은 되뇐 것 같았다. 온전히 나의 담당이라 누구에게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만 붙잡고 있었다. 그리곤 또다시 예전의 습관대로 핑곗거리를 찾았다. 일단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하니 포털사이트 측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변화 이유를 하나 만들고 다른 블로거들도 이것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변명거리를 찾아 초조하게 팀장님을 바라봤다. 어떤 해결 방안 하나 없는 나의 초라한 변명일 뿐이었다. 당장 노출이 안 되니 다른 글을 포스팅할 의욕도 없었다. 글은 대충 쓰게 되고 심지어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상한 망각에 기대기만 한 몇 시간.


아차차 또 아주 쉬운 나의 고질된 습관에 빠질 뻔했다. ‘뭐 어쩌라고’를 소심하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검색창에 ‘블로그 누락’을 치고 하루 종일 몇십 개의 포스팅을 전부 훑었다. 다들 비슷비슷한 말을 적으며 ‘카더라~’ 형식의 답을 내놓았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는 해결책이라 블로거들이 알아서 해봐야 할 뿐이었다. 속은 답답했지만 우선 이것들이라도 해야 했다. 내가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쭉 적어 놓고 되든 안 되든 뭐라도 해봐야 실패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터였다.

아직 이것의 실패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꾸준히 해보고 있는 중이고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으니 조급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다리는 달달 떨리고 초조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연습 중이다.

중요한 건 연습! 하고 있다는 노력이니깐!

실패에 대처하는 노력이 이왕 이렇게 시작됐으니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우아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올해 나는 몇 가지를 해보려 한다. 또 또 이룰 수 없는 거창한 계획과 다짐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지만 실패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일들이다.


 첫 번째는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다. 원래도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여행보다는 집, 클럽보다 서점이나 카페, 시끌시끌 보다 정적인 상황을 좋아하는데 올해는 조금씩 외부 활동을 넓히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늘 익숙한 루트와 루틴에서 살다 보니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공통된 주제로 공부도 하고 여러 의견을 나누다 보면 나의 편협한 생각의 광폭을 넓힐 수 있고 이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여러 감각을 예리하게 단련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책을 읽고 기록하는 걸 이 악물고 해 보는 일이다. 사실 작년에도 이 계획을 꾸준히 지키고 싶어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했었지만 타의적 마감이 없으면 금방 퍼져버리는 고질적인 습관 때문에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올해만큼은 글 쓰는 채널과 영역을 넓혀 나에 대해 치열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이 위에 그려진 나의 실패 기록을 읽다 보면 실패의 층위는 깊어질 것이고 이것은 곧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경계를 지울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은 작게 생각하기다. 성공은 작고 달콤하게 여기면서 실패는 거대한 파도처럼 몸을 감싸는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내 안의 확대경을 이런 곳에 쓰지 말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실패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실패는 내가 정의할뿐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듯(일희일비는 고사하고) 일비 일비  필요는 없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신념들에서 부드럽게 물러서고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0 혹은 1   가지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는   있는 만큼만 전력을 다하고  이후로는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실패에 우아할  - 허지원 심리학과 교수>


집착이 강한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큰 영향을 받지만 실패를 곱씹고 곱씹는 데에도 선수다. 이게 왜, 어떻게 안 된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건 나중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정말 상황적으로 안 될 운명이었음에도 그 어떤 이유라도 갖다 대려는 건 집착일 뿐이다. 이 집착도 딱풀처럼 딱 내 감정에 붙어 있기 때문에 너무 간절하면 간절함을 버려야 하고, 너무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성공의 집착을 버려야만 한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할 일엔 마음을 두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듯 이렇게 글로 쓰는 것과 마음을 다잡는 일엔  간극이 있다는  안다. 말하는  제일 쉽고 글로 쓰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실패하는  실천하는 . 그래도 괜찮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일에 실패하더라도 자꾸 해보면  것이다.

우아하게 실패하자고 마음만 먹어도 일단 반은 성공했음을…! 이게 어디냐고



<칼럼 읽기>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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