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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05. 2021

죽었다 깨나도 아침 이불 개기는 힘들어요

나의 루틴에 대하여



누군가의 하루는 ‘새벽 4 30 시작된다고 했다. 미라클 모닝으로 인증했고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행위가 만들어낸 활력이 인생을 살아내는 묵직한 힘이 되었다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럴 수 있겠지 싶었다. 눈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통제의 작은 실천이라면 삶의 그 어떤 굴곡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 나도 빠질 수 없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하여 내게 맞는 다른 것들을 찾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 정리하기


어느 책이었던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 바로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정리 정돈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이 습관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증명되었는데 그 책에서는 작은 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탁월한 근거로 제시됐다. 그렇다면 바로 이거다. 나의 루틴, 나의 작은 습관, 나의 행동을 증명할 수 있는 일.


첫째 날, 뭐 가뿐했다. 이 정도야 뭐

(일요일)


둘째 날, 알람 끄고 일어나 바로 화장실로 갔다.

옷 다 입고 나갈 준비를 하려는 찰나, 어질러진 이불이 보였다. 망했네.

(월요일)


셋째 날, 전날 밤부터 벼르고 잤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이불을 개자고. 하지만 너무 귀찮았다. 실패.

(화요일)


넷째 날, 그냥 출근함

(수요일)


결국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바로 이불을 정리하는 일을 때려치웠다. 정말이지 정신도 비몽사몽 한 데다가 아침에 유독 아픈 허리를 굽히고 이불 네 귀퉁이를 펴고 정리하는데 단 1초도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밤새 자고 난 뒤 땀으로 젖은 이불 좀 말리면 어떠냐는 얄팍한 내 속마음에 못 이겨 이 루틴은 시작도 못해보고 실패했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 일일로.


며칠 동안은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이런 일도 못하면서 무슨 성공을 하겠다고 하는지? 넌 루저야. 뭘 해도 안 될 무능력자라고.’ 하며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점점 더 속이 상해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루틴, 습관, 리추얼의 주제를 다룬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 어떤 책이 나와 맞는지 두고 볼 일이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는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즉, 방을 깨끗이 정리하자는 목표를 달성한다 한들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방은 얼마든지 다시 더러워질 수 있으니 ‘진정한 행동 변화는 정체성의 변화’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목표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가 되는 것’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사람이 되는 것’ ‘악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이 어떤 유형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을 경우  믿음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결국 습관에서 정체성이 나오고, 꾸준한 습관을 통해 증거가 쌓이면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말이었다. 결국 차곡차곡 쌓인 습관이 나의 자존감과 연결된단 말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어떤 루틴을 다시 만들었냐면-

사실 딱히 루틴, 리추얼이라는 게 없는 게 함정이다.


그나마 3년 동안 꾸준히 해오는 것이(매일 아님) 출근을 해서 아침에 업무 리스트를 정리할 때 인스타그램에서 읽은 성경을 함께 적어 놓는 일이다. 처음에는 습관이랄 것도 없이 하루를 좋은 말로 시작하고 싶어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언어와 고요한 마음가짐을 정비할 수 있는 말을 적었을 뿐이었는데 하루, 이틀, 삼일이 어느새 보니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어떤 자각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이 일은 3년여 동안 퇴사하지 않고 잘 참으며 다니게 하는 부적이 되었고 나의 정서를 온화하게 이루는 언어들이 되었다.


러시아 대표 문학 작가 ‘차이콥스키’는 매일 2시간씩 산책을 했고 소설가 박경리는 텃밭 농사를 가꾸며 글을 썼다고 한다.
<월간 샘터 ‘명사들의 리추얼’ 편>


여러 책을 읽으며 내가 깨달은 ‘루틴 ‘리추얼 부유하는 삶을 정박해줄 단단한 닻 같은 것이어야 했다. 차이콥스키는 무조건 시간을 내어 병적으로 산책을 나섰고 그때 떠오른 영감을 작곡에 참고했을 정도로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열정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아침 이불 정리 루틴은 철저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나는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남들을 따라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명목 아래 흉내만 냈기 때문에  삶에 어떤 의미도 붙일  없었다.




루틴이라고 하면 ‘매일 해내는  주목할 필요가 있고, 하다 보면 힘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해내는 작은 성공이 뒤따르게 된다.  작지만 소중한 성공을 맛보면 크게 휘청이는 외부 일들에 덤덤해지고 불안할 때마다  자기가 해오던 일을 하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거기에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역사는 나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자기 계발보단 자기 관리 능력이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자기 관리라고 해서 대단한  아니고 매일을 특별하게 기대하기보단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각자의 루틴을 지키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나와 나의 특별한 약속을 수줍게 지키는 사람들 본인의 세계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루의 사과나무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글을 쓴다. 쓰고 보니 나의 리추얼은 결국 쓰는 이었나 싶기도 하다. 쓸쓸하고 불행할   펜을 굴려 들끓는 감정의 부유물을 국자로 뜨듯 건졌고, 이런 일을 반복하며 언젠간  책을 출판하겠단 목적으로 지난하고도 두려운 쓰기의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 어라, 이제 어쩌면  마음은 ‘책을 내야지에서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가까워졌을까. 물론 아무렇지 않게 즐기면서  습관을 이어가고 싶지만 이런 루틴을 가지기까지 숱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습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고유한 자신의 영역, 고유한 자신의 속성, 고유한 실체적 증량을 얻게 된다. 이는 습관이 있고서야 비로소 ‘나’라고 말하는 고유한 자기가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감정이나 자기의식은 습관의 선물이다.
<책, 예술과 삶에 대한 물음>


오늘 나는 서평 할 책 마감을 끝냈고, 브런치의 이 초고도 썼다. 소파에 한참 누워 유튜브를 볼 때도 이 글을 어떻게 더 잘 교정할 수 있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쓰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결국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머리와 손에 습관을 길들이는 나의 의식이다.

이런 행위가 고유한 나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문장을 채집하는 습관이 못난 나를 조금씩 좋게 만들고 있음은 확신한다.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붙일 정도로 극한 감정의 절정의 순간, 내가 선택하는  글쓰기-나의 루틴이다. 읽고 씀으로써 감정을 샅샅이 탐색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가지런히 둔다.  의식이 누구에겐 청소일  있고  누군가는 빵을 굽겠지만 어쨌든 아침 이불 정리는 나와 맞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문장을 고르고 힘겹게 글을 쓰는 세계에서 나의 얼을 쌓고 있다.


내가 선택한 습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같다 문장을 채집한 오늘.

나의 루틴이 내일의 나를 잘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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