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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17. 2021

혼자’였던’ 계절

십일월에 대하여

갑자기 훅- 코를 스치는 공기가 달라졌다.

가을과 미처 인사도  나눴는데 겨울이 성급하게 반가움을 재촉하는 모양이다. 한차례 온몸으로 오한을 겪고 서둘러 장롱  깊숙쑤셔 넣었던 터틀넥을 꺼내 입었다.


워낙 추위를 잘 타는 탓에 겨울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리 돌려도 따뜻해지지 않는 보일러가 공기는 차갑게 놔둔 채 가스비만 20만 원 가까이 뱉다 보니 수면 양말과 기모 내복을 5개월가량 입고 있는 날들로 마뜩잖은 계절이 되어버렸다.


이런 겨울이 아주 조금씩 내 기억을 선명하게 바꾸고 있어 신기한 요즘이다. 가뜩이나 몸도 마음도 추운데 기억마저 ‘혼자’였던 나를 자꾸만 꺼내는 일이다. 유독 외롭고 불안했던 내 모습이 겹쳐 오르는 때는 여름 말고 겨울, 봄이 아닌 늦가을이었고, 거실에 떠오르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쉬며 따뜻한 생강차를 입에 대고 있으면 유독 추웠던 대학교 빈 강의실에서 혼자 김밥을 먹으며 공강을 때우고 있는 내가 보인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였을까. 친했던 친구 둘은 모두 휴학을 했고 나만 어정쩡하게 남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예전부터 꼭 둘, 셋 정도만 짝이 이뤄 다녔기 때문에 그들이 없는 학교생활은 나 혼자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수업 듣고, 나 혼자 길을 걷고…

그 큰 학교에서 공강 시간을 같이 보낼 친구가 없어 빈 강의실을 찾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차가운 매점 김밥을 욱여넣었다. 다른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하하호호 잘 웃고 있는데 나만 왕따 같았다. 아무도 나의 고독을 봐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추었던 강의실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우주 속에 홀로 유영하는 듯 한 참혹한 기분을 종종 그곳에서 만났다. 나는 졸업 후의 아무 진로도 정하지 못한 채 그냥 학교 주변만 어슬렁거리는 좀비 같은 시간을 보내며 취준생의 불안하고도 고독한 마음을 겨울에 내다 버렸다.


‘띵똥’ 세탁이 다 되었다는 소리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던 4학년의 내가 현실로 돌아왔다. 수면양말 아래 두툼한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로 나가 빨랫감을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그새 식어버린 생강차를 한번 더 뜨겁게 우려 주고,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치며 빠져들어 보려는데...


9호선 샛강역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있기 눈치 보였던 취준생은 9호선 샛강역에 있는 교육원에서 취업 프로그램을 들었다. 다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 틈에 나는 어떻게든 끼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맞는 사람 없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를 떤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또 혼자가 되기 싫어 부단히 자리를 지켰고 함께 졸업작품도 만들었다. 그리고 취업박람회에서 면접도 봤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원하는 데가 없었다. 나보다 대충 다니고 과제도 설렁설렁했던 사람들은 어디라도 취업 제안을 받았다는데... 나는...


교육원 원장님에게 도대체 어떻게 면접을 본 거냐고 비난 아닌 비난의 소리를 듣고 샛강역 지하철로 내려왔다. 다들 어디에 취업됐냐고 묻는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차갑게 굳은 내 얼굴에서 미소는 볼 수 없었지만 애써 그들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곤 급히 자리를 피해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내가 너무 한심해서 눈물만 나왔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회사조차에게도  나 같은 건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 같아서, 엄마,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너무 바보 같고 멍청해서 스스로 자책하는 울음이었다. 손은 차가웠고 두 뺨은 뜨거웠고 그렇게 나는 추운 샛강역 화장실에서 ‘혼자’였던 계절을 톡톡히 견디고 있었다.


‘꼬륵’ 배에서 소리가 나자 또다시 기억에서 빠져나온다. 오후 1시가 되어도 이놈의 집은 도대체 따뜻해질 생각을 안 한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는 저리 우렁찬데 코끝을 치는 공기는 왜 이리 서늘한지.

이럴 때는 따끈한 국물이 제격이다. 라면과 수제비, 칼국수를 후보에 놓고 고심하다 호박 잘게 썰어 고추장을 푼 칼국수를 먹기로 한다.

남편이 없는  집의 겨울의 시간은 대체로 차분하다. 나는 채도가 많이 빠진  안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 보거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84번가의 연인> 본다. 한참 남은 여름을 추억하는 맛도, 미리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보는 일도  이맘때쯤 11월이 좋기 때문이다.


벌써 4년이 되었나. 결혼을 하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 2017년의 11월은 유독 마음이 허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누구에게 재촉받듯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고 강남까지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날도 그런 날의 하루였다.  회사의 면접을 봤고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를 합격시킬 최선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멀기도 너무 멀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분위기를 가감 없이 말하는 그곳에 가기 싫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가 아니면 더 이상 받아줄 회사가 없을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복잡했던 것 같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불러낼 친구도 없어서 근처 교보문고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우울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의 심정은 뭐랄까사방이 뚫려 있는 곳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온갖 종류의 바람을  맞고 있는 느낌이었다. 합격이 돼도 걱정,  돼도 걱정. 어떤 선택을 해도 불행뽑히는 게임 같았다. 오직  머릿속에는 “지난하고 불안한  시간을  어떻게 견디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해봐야 하는 거지.  어떡하지..”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혼자’


가족도 있고 친구도 지만 우주에 혼자인 기분은 이따금씩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기분은 나를 종종 어떤 블랙홀로 빠져들게 했는데 희한한 것은 결코  느낌이 싫지 않다는 거였다. 당시에는 너무도 외롭고 슬퍼서 어쩔  모르겠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그날을 회상하는 지금은 그때의 내가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같은 감정을 느낀다. 외롭고 불안했던 시간 반복되는 것 같고 예전의 고독은 지금의 감정으로 는다.


아무래도 ‘혼자 계절은 늦가을과 겨울이 제일  어울리고, 달로 치면 11월이  어울리는  같다. 숫자 자체도 ‘1’ 두 번 그어졌고 ‘십일월 말하며 내는 발음도 어쩐지 어렵지만 쓸쓸해 보인다. 단풍놀이와 크리스마스의 ‘우리’의 감정 사이에서 고독하게 끼어 있는 . 화려한 에서 물러나 잠시 을 고르는 것처럼, 혹은 굽은 등을 아스라이 쓸어내리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은  같기도 하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이맘때만 되면 과거의 나를 들추며 그때의 감정에 정신  차리는 달이 11월인 듯도 싶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제일 싫어했던 겨울을 점점 좋아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툼한 옷을  입고, 귀여운 양말을 신은  발가락을 꼭꼭 집안누비 따뜻한 차를 내리는  계절에 이런 고립감은   어울리니까.


어쩌면 나는 외로운  지독하게 싫어하지만 모순적으로 그것을 열렬사랑하고 있는 거일 지도 모르겠다. 고요히 가라앉은 공기보내는  시간을 1  가장 기다리고 다. 확실한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혼자였던 그때의 모든 좋다는 거다. 울고 있거나, 무표정으로 앉아 막막한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던 나를 버려두지 않았던 덕분에 무사히 이 계절에 당도했다. 11월이 왔고, 예측하기 어려운 온갖 종류의 외로움이 또다시 몰려오더라도 나는  장면을 여전히 기록할 것이다.


올해의 십일월엔 언제 올지 모를 외로움을 위해 그에 어울리는 책과 영화를 준비해 놓았다. 언제든 퇴근  울고 싶을  틀어 놓을 <화양연화> 영화와 양귀자 작가의 <슬픔도 힘이 된다> 책은 ‘혼자 계절을 보낼 땔감이다. 한껏 쓸쓸한 계절을 더욱 증폭시켜  요량으로 신중하게 고른 것들이므로 퇴근  꼬박꼬박   쪽을 읽고 금요일  홀로 TV 앞에 누워 영화를  생각에 기쁘기까지 하다.


여하튼 쓸쓸한 11월을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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