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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17. 2017

살림하는 시간의 틈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가끔 도서관을 갑니다. 책을 빌리는 열람실만 가도 몇몇의 청년들이 책상에 코를 박고 앉아 열심히 책을 넘기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볼펜으로 뭔가를 쓰는 소리도 좋고, 어떤 것에 열중하고 있는 자세가 참 보기 좋아 제 손은 빌릴 책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눈길은 늘 그들에게 닿습니다. 아마도 자기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일 겁니다. 혹은 아주 정적인 공간에 가장 역동적인 꿈을 이루는 순간을 볼 수 있어서일 것 같기도 합니다. 


살림은 혼자 하는 것이어서 가끔 외롭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음악을 틀거나 라디오를 켜 잠깐의 외로움을 충족시켜 보지만 성에 차지는 않습니다.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재밌는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데 가정주부라는 직업은 철저히 혼자인 업무가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저는 고독함을 느낄 때마다 책을 집어 듭니다. 유일한 나의 친구이자 선생님, 때론 배우자가 되어 함께 놀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가정 주부로서의 일을 찾아가면서 제일 많이 접한 책은 살림하는 방법, 수납정리, 집 꾸미기 등의 실용서였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저의 책임이 다 하는 곳이 바로 집의 공간이었으니까요. 특히 어떻게 하면 이쁘게 꾸밀 수 있을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인테리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셀프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여러 정보를 얻고 또 몇몇은 그대로 실천하면서 집 안의 곳곳을 채워 나갔습니다.

더불어 SNS로도 다른 예쁜 집들을 훔쳐보며 감각을 따라 하기 바빠 적지 않은 돈이 술술 새어 나갔지만 지금은 그런 모든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우지 않고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두 책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가구나 조명이 우리 부부가 머무는 공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바라보며, 각자 꿈의 조각을 찾는 대화를 통해 집안의 온도가 따뜻해진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점점 실용서보다는 삶의 태도, 가치관, 의미를 좇는 소설, 에세이, 시의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된 일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제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집안 생활에 적용할 수 있었던 덕분에 지금은 집의 살림살이는 비우되, 마음은 가득 채우는 독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살림하는 도중, 틈틈이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와도 이들을 잘 반겨 이번엔 또 어떤 생각을 품을 수 있을지 기대하곤 합니다. 저만의 소박한 충만함인 책 속 문장이 늘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

[타샤의 행복]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



어떤 분들은 집에서 노니 책도 읽는 거라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부는 시간이 남아 도니 카페도 가고, 책도 읽고 쇼핑을 하며 돈을 쓰는 사람이라고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분명 남아도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일도 하지 않고 무작정 배우자의 등골을 빼먹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다들 각자의 시간 속 틈을 파고들어 잃어가고 있는 정체성을 되찾으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은 마음과 달라 눈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기록되어 있고, 무슨 말이든 쓰여 있다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흔들리는 마음과 태도를 견고히 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은 살림을 하는 저에게 꼭 필요합니다. 무식을 숨기려는 것도 아니고 유식을 티 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심지어 국가도 몰라주는) 집안일의 직업적 의미를 스스로 확립하며 성실한 집의 직장인임을 늘 되새겨 집안일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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