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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13. 2017

살림을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저만의 살림살이를 구할 때, 인터넷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예쁜 물건을 놓을 서랍, 옷을 말릴 건조대, 드레스룸에 장착할 거울 등. 집의 분위기와 컨셉을 나름대로 세워 색상과 재질을 고려하며 구입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참 싱그러웠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마냥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기구와 가구들을 사면 모든 행복이 이뤄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몇몇 개의 살림용품이 들어오고 제자리를 찾아간 뒤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살림살이가 물건을 채운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구나. 이것들을 잘 활용하고 쓸고 닦으며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것이 진정한 내 몫이구나를" 요. 튼튼하고 심플한 빨래 건조대는 옷과 속옷, 양말을 따로 세탁망에 넣고 세탁기에 돌려 1시간 40분이 지나면 꺼내 탁탁 털어 뒷 베란다에서 앞 베란다까지 가져와 건조대에 딱딱 널어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더군요. 어떤 건조대를 살지 이것저것 재면서 부풀었던 물품 욕심의 끝은 허망하게도 저의 수고스러운 노동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청소는 지금 나의 몫


청소기와 밀대 걸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흰색 밀대 판에 나무 결의 손잡이가 예뻐 구입했지만 걸레를 빨고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밀어야 제 빛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저절로 걸레가 돌아다니면서 먼지를 훔치지 않더라고요.


딸로만 살던 시절, 한 달에 한 번 걸레를 볼까 말까 했던 제가 저의 집을 쓸고 닦는 일에 매일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놈의 먼지는 뭘 매일 청소기로 빨아들여도 생기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어디선가 먼지가 스멀스멀 나온다고 생각하니 '청소란 무엇인가'의 근본적인 고찰도 잠깐식 하게 되더군요.

이렇게 의외인 곳에서 살림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때, 운명 같은 문장을 만났습니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서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 다다를 수 있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나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나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교훈을 배워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



산다는 것은 결국 살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만의 손길과 발걸음으로 집안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그 어딘가에 존재할 나의 구원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럽게도 직장에서 일할 땐 확고한 철칙이나 해야만 하는 당위성 같은 건 품지 않고 오로지 월급만 보고 일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월급 루팡을 노리며 인터넷 쇼핑과 연예 가십거리를 찾아 시간을 빈둥대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직장에 대한 애정이 전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직장이 나의 집이고, 주방이고, 거실이고, 화장실이다 보니 내 손을 거치지 않고 그 마음에 애정이 깃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배워가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무엇하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죠. 장을 봐서 야채를 다듬고 반찬을 만드는 것도 내 에너지, 락스를 뿌려 솔로 변기 틈새를 닦는 것도 나의 동력으로 이뤄지는 일입니다. 비록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지고, 반찬통은 비워져 가겠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여 해내는 것이 살림의 기본 규칙인 것 같습니다.


나의 완벽한 공간이 될 때까지


아직도 제가 왜, 살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렴풋이나마 나를 단단하게 지켜나가는 일이고 보이지 않는 어떤 소망을 위해 '몸으로 하는 기도'라 여기고 있습니다. 분명 매일 성실하게 움직이는 일은 꽤 고단한 일이지만 직장을 다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나를 통제하고 다독이며 차근차근해야 할 일을 찾아낼 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소홀할 수 없는 살림이니까요.


살림을 이야기할 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믿는 신에게 직접적으로 기도하는 행위라고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늘 첫번째로 생각하는 우리들.

오늘도 많은 여성과 남성 주부님들은 열심히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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