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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10. 2017

전업주부씨, 명함 좀 주세요.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첫 직장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운 예절은 명함을 받고 선배들에게 공손히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조그만 네모 종이 안에 직장과 제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가 써 있는 것이었죠. 별 것 아닌 듯 손에 들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로 인사를 드리며 진정한 사회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막 일을 시작했기도 했고 일하는 곳이 작은 출판사여서 명함을 건네는 일이 별로 없었기에 친구들끼리 주고 받거나 음식점 이벤트 공모함에 넣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만 제 지갑 속에 명함이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누구인지 쉽게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회사에서는 좀 더 컬러풀한 명함을 받았습니다. 전 직장보다 직급이 좀 올라갔고 뒷면은 영문으로 제작되어 과연 어느 외국인에게 이걸 전달할 수는 있을까 궁금했지만 여전히 명함은 제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눌 때 명함 한 장만 내밀면 저를 알릴 수 있다니, 얼마나 심플한지요. 하지만 외근이 잦았던 전 직장보다는 명함을 돌릴 일이 별로 없어 책상 서랍 한 구석에 조용히 숨어 지냈던 날들이 많아 아쉽게도 이 명함의 심플함을 몸으로 느낄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렇게 당연히 명함의 존재 자체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집에 있게 되니 이 명함의 존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 소속되어 있는 곳이 없다는 허전함,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에서 오는 자존감 상실이 작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던 명함의 부재였던 것입니다.




"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엄마가 되고 나서는 또다시 '엄마로부터 벗어난 나'를 찾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고민이 시작되고 한동안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면서 신문지 사이에 섞여 있는 예전 내 명함들을 발견하면 그것을 주워 화장대 서랍 속에 다시 넣곤 했다. (중략) 그 종이에 적혀 있던 회사와 일이 곧 나였고 나의 정체성이었다. (중략) 사람들 앞에 내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내게 정체성이란 스스로 견뎌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는 컴컴한 우물 밑바닥에 가라 앉은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사회를 떠난 개인에게는 스스로 납득시키는 것부터가 어려운 문제가 된다.

"



아이러니하게도 있을 땐 잘 쓰지도 않던 명함이 막상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고,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분명 어딘가에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작은 종이가 주던 사회적 안정감이 그토록 컸나봅니다. 아마 저라는 사람이 쓸모 없어져 버렸다는 생각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돈을 벌진 못해도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성실한 직장인으로 대우받았고 그로 인해 당연히 조직의 테두리 안에 자존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하던 직장이 없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안일을 업으로 삼으려니, 그것도 무일푼으로 하려니 경제적 인간으로 속하지 않는다는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요.

주부들 사이에 큰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일주일에 몇 개씩 같은 질문이 올라 옵니다.

"전업주부님들, 용돈 얼마정도 쓰세요?"

"돈을 안 버니 남편 눈치가 보여요"


요즘은 결혼 전 많은 여성들이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 후에도 적극적으로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그만큼 돈을 벌고 소비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당연시 하던 생활이었지요. 그런데 전업주부를 하면서 화장실 변기 청소에 빨래 널고 개기에,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까지 하는데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쓰는 적은 용돈에 눈치가 보인다니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당연시해온 어머니의 전통적 역할, 즉 집안 살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맡게 되었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현대 여성들은 우리 어머니 세대보다 진취적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제도의 그물에 걸리면 상사 앞에선 올바른 소리도 잘하던 직원도 시어머니 앞에선 말없는 며느리가 됩니다.이중적 태도의 간극이 더 멀어지게 되죠. 그나마 돈이라도 벌어야 목구멍이 커지는데 그렇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되면 그동안 견고하게 다져왔던 양쪽의 정체성이 한쪽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무가치, 비생산성, 내가 아닌 주변인의 역할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잠시 정체성의 혼란이 왔을 뿐 얼마든지 집안의 일에서 나의 올바른 역할을 찾고 가치를 만들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처음부터 다시 쌓으면 그만입니다. 내 몫은 내가 찾는다는 심정으로 정직한 나를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문장으로 집안 '일'의 가치를 발견하며 한 계단씩 내 안의 단단함을 쌓아 올려 그깟 명함 한 장 없어도 거뜬히 나를 소개할 수 있겠지요.

꼭 돈을 벌어야 사회 구성원인가요?

명함을 돌려야만 경제적 인간인가요?

그런 사람을 만들고 가꾸고 성장시키는 사람이 바로 가정에서 일하는 저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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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살림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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