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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un 13. 2023

집 벽마다 창을 내고 있어요



최근에 그림 액자 두 점을 집에 들였다. 내 기준에서는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이어서 며칠간 고민하다 구입한 것인데 생각해 보니 벽마다 모든 그림을 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그림에 욕심을 내나 싶었다. 심지어 벽에 못을 박는 것도 싫어 벽지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 꼭꼬핀을 겨우 쑤셔 넣어 대롱대롱 매단 액자도 있고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땅바닥에 툭 세워 놓을걸 알면서도 우연히 보게 된 그림을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


최근 초대받은 지인의 신혼집은 새하얀 벽지로 꾸며진 깔끔한 빌라였다. 하지만 아직 집정리가 덜 끝난 탓인지 흔한 결혼사진 하나 없었고 작은 커플 사진이 TV 앞 바닥에 곱게 놓여 있었는데 "아직 집이 덜 채워지기도 했는데 나는 벽에 뭘 주렁주렁 매다는 게 싫더라고."라며 집주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벽에 그림을 거는 행위를 누군가는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느낌일 수 있구나. 그때 깨달았다. 역시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 다양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휑하다고 느껴지는 벽이 누군가에게는 깔끔하고 더 보기 좋은 벽이 되는 거였다.


나는 신혼 때 벽에 그림을 건다는 생각을 일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워낙 다른 큰 가전제품들을 채워 넣기도 바빴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보기 좋게 가지런히 정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툭 튀어나온 두꺼비집을 가릴 용도로 어머님께서 직접 자수로 만드신 귀여운 물고기 그림 액자를 거는 것이 전부였다.


근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데 검은색 소파 뒤 하얀 벽이 너무 허전하고,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쯤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어서 그랬는지 집안 공기도 차가웠고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외풍이 심한 집에서 느끼는 바람은 마치 벽에서 솔솔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늘했는데 그날부터 나의 관심은 그 바람을 막을 그림으로 옮겨졌고 우리 집에 잘 어울릴만한 그림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물건이 내구성이 좋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일보다 일단 가격이 얼마인지부터 따져보던 때,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림과 액자는 무려 50만 원을 웃도는 거금이었다. 사이즈를 작게 하거나 다른 그림을 골랐더라면 더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매일 볼 그림이었고, 30평대의 아파트 벽에 걸 그림이 너무 작으면 오히려 안 거느니 못했다. 예전에 A3 사이즈의 그림 두 점을 나란히 걸어 보았는데 그림이 벽에 묻혀 더 작게 보였던 적이 있어 이번에는 큰 마음을 먹고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그림을 들이기로 했다.


몇 번씩 벽에 줄자를 대보며 사이즈를 가늠하고, 홈페이지에 있는 그림을 누끼 따서 우리 거실 벽에 합성해 보는 노력을 거쳐 마침내 우리 거실벽에 나무들로 우거진 멋진 풍경의 창을 낼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비가 오면 비 맞는 나뭇잎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해가 좋은 날엔 집의 한편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착각이 든다. 내 마음에 쏙 든 탓도 있겠지만 실제 그림 액자 하나가 주는 집에 대한 장악력은 꽤 컸고 그걸 매일 바라보는 나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구 주었다.


그 뒤로 그림을 선택하고 집 공간마다 액자를 두는 일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거실처럼 큰 그림을 걸 수는 없었지만 A3, A4 사이즈 정도는 서재 협탁이나 부엌 그릇장 위, 화장대 위 깨끗한 벽에 작은 창을 내어 아파트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실현시킬 수 있었는데 숲 한가운데 놓인 벤치를 찍은 사진, 이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 마음에 들었던 전시회에서 산 그림이 집 곳곳에 놓여 있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쇼핑백을 잘라 만든 액자도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나올법한 패션 잡지 사무실처럼 우리의 공간을 변화시켰다.


내 마음을 이야기하는 방식


하도 미디어에서 미니멀라이프가 최고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수시로 다니는 집의 길목을 걸을 때마다 나의 삶은 미니멀라이프와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맥시멈까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같은 건 내게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뭔가를 보면서 자극받고 그 감정으로 글감이나 삶의 태도에 가까운 인사이트를 얻는 쪽이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이었다. 물건을 비움으로서 영혼이 채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채우면서 영혼이 살찌는 사람도 있음을.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보는 부엌 그릇장 위 여인을 그린 그림(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에서 산 그의 아내를 그린 그림)은 내가 앞으로 실천해야 할 '우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종종 일깨워주고, 책상에 앉아 글 쓰는 고루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담긴 그림은 위대하지 못한 글을 쓰는 나를 격려한다. 이 뒤편에 있는 런던에 있는 한 가정집 현관문을 찍은 사진 또한 볼 때마다 그리운 감성을 일으키고 그 앞에 놓인 밀랍초를 태우며 내가 만든 집의 장면을 운치 있게 바라보는 일이 순간적으로 너무 좋았다.



이제는 웬만한 곳에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의 창을 다 내었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화장실과 서재 옆 작은 벽에 다른 창문을 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프라하 거리에 벚꽃나무가 흩날리는 사진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보지 않았던 과감한 원색감의 그림을 놓고 싶었던 것이다. 늘 파스텔 계열의 우아하고 살랑거리는 감성을 끌어올리는 작품을 선택해 왔다면 지금은 진한 파랑 배경에 노란 해바라기와 꽃이 잔뜩 담긴 자개 모양의 화병이 있고 그 옆에 작게 의자와 하얀 새가 그려진,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한 작가의 작품에 욕심이 생겼다.




차분한 집 무드에 너무 튀지는 않을까 고심하다가 구매한 그림. 다행스럽게도 파랑과 노랑의 조화는 지금 이 계절에 딱 맞아떨어졌고 집의 분위기를 한쪽에서 고요히 눌러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화장실을 가고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슥 눈길이 가는 그림을 보면 괜스레 마음에 활기가 돌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덤으로 해바라기가 있으니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하면서 그렇게 되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까지 이어졌다.



일상에서 감동의 공간은 필요한 법



매일 새로운 곳을 갈 수 없고, 회사와 집이라는 공간을 반복적으로 오가야 하는 사람에게 감동의 공간은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괜히 교회나 성당, 절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신성한 분위기의 장소를 만들고 음악회와 연주회를 여는 게 아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해서 자신의 ‘신’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을 수행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며 회복하는 신성한 기도의 장소처럼 감동의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으로 그림이나 사진을 추천한다. 가라앉은 마음을 치켜세우고 대단한 결심이 필요할 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응원을 받으면 아주 나이스하겠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고 손 내밀 사람들이 적다면 벽에 걸린 액자들을 보면서 '버틸 수 있어' '할 수 있어' '견딜 수 있어'라고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매일 보는 그림이 주는 힘이고, 나의 경우엔 벽에 창을 내어 수시로 자극을 받는 이유기도 하다.


내게 필요한 사적인 용기를 집 안 곳곳에 놓아 좋아하는 장면들에서 찾는다.





이전까지 집 안에 그림을 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17세기부터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림은 처음에 침실 벽을 차지했다. 특히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그림을 많이 걸었는데, 초자연적 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밤 동안, 성모의 그림이 잠자는 사람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거래할 때는, 장르에 따라 그림을 걸어야 할 장소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충고가 뒤따랐다. 예를 들어 풍경화나 지도는 손님을 처음 맞아들이는 현관이나 복도에 걸어야 했다. 식당에는 전투나 사냥 장면을 그린 그림을 거는 것이 좋았고, 침실에는 영혼의 평화를 위해 경건한 성화를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벽지 위에 그림을 걸었지만, 나중에는 벽면 바로 위에 그림들을 보기 좋게 정렬하거나 복잡한 퍼즐처럼 배치하게 되었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벽에 거는 그림들’>



중세시대 유럽 배경 영화를 보면 커다란 성벽 한쪽에 무수히 많은 액자들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초상화, 정물화 할 것 없이 그 가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용도이자 집의 인테리어 역할로 톡톡히 해내는 그림액자들을 보며 감탄해마지 않는다.


물론 현실의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까지 못하지만 내게 큰 의미를 주는 작은 창들이 벽마다 차분히 걸린 채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늘도 잘 살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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