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혼란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요한 실천

몽테뉴, 사유의 힘

by 에뜰

최근 브런치의 행보를 보면 대상에 소설도 포함될 만큼 영역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에디터가 선정한 글이나 브런치 스토리 인기글을 봤을 때 아직까진 브런치 작가들의 영향력은 에세이가 훨씬 큰 것 같다.


글 쓰기의 한 장르인 에세이는 현대 독자들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이 장르가 작가 몽테뉴에서 나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한데, 에세는 프랑스어로 '시험하다', '처음 해보다' 뜻을 가진 단어인 ‘에세이예’에서 나온 것으로 몽테뉴가 만들어낸 명사인 에세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출처 서울신문)


그럼 몽테뉴란 누구인가?

(뭔가 맛있는 빵이름 같지만..)


나는 이번 <몽테뉴, 사유의 힘> 책을 접하며 처음 그에 대해 알았다. 몽테뉴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엘리트의 교육을 받고 법관직을 지내다가 돌연 서른여덟 살 나이에 직업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서재를 몽테뉴 성 안에 만들어 책을 쓴 인물이다. 그 책이 바로 '에세(Essais)'다.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자유롭게 펼치며 의식의 흐름대로 써가며 인간이 지닌 모순, 불합리 등을 가감 없이 저술하고 정리한 사유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로 글쓰기 장르적 에세이가 가진 특성이 나타난다.

확고하고 정리된 실험실 데이터 형식의 글이 아니라 불안과 흔들림, 인간과 세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더불어 자신이 느끼고 확실히 정의했던 장면을 다시 보고 고칠 줄 아는 모든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에세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생각과 사건의 장면들을 다시 뒤엎어야 한다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몽테뉴는 그런 모든 행위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변하고 흔들리기 마련이므로 당연히 모든 것을 포용하며 성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몽테뉴는 누구나 존경하고 선망하는 직업을 그만두고 자신이 마련한 성 안에 숨어드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홀로 조용히 사색할 수 있어야만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쓴 <에세>에는 매일 자신을 살피고 그 속의 불안정과 결점을 정직하게 기록함으로써 삶의 중심을 지켜낸 글이 있었다.(출처 몽테뉴, 사유의 힘)



하루하루를 살면서 시대가 내 몸을 순식간에 관통하는 느낌이 든다. 이제 AI는 특정 영역을 넘어 생활 전반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무언가로 느껴지며, 그것을 잘 활용해서 사회에 도움 되게끔 만들어내는 게 밥벌이인 것 같아 불확실한 현재를 따라가며 사는 게 참 무섭고 버겁다.


몽테뉴는 삶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글로 쓰고 기록해 나갔으며, 치열하고 고독하게 자기 자리에서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삶이 흔들릴 때

글은 나를 붙잡는다


몽테뉴에게 글쓰기는 삶의 중심을 붙드는 방식이었고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요한 실천이었다.(몽테뉴 사유의 힘 중에서)


얼핏 보면 <에세>는 그저 개인이 쓴 일기장에 불과한 듯싶지만 몽테뉴는 삶에서 끌어올린 날것의 사유를 마음껏 적었다. 그의 글에는 혼란한 감정과 어지러운 상황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동시에 그것에서 느낀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입장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읽으며 사유하고 철학하면서 자신의 이해 폭을 넓혔다. 그는 이런 과정이야말로 불확실한 현재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글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존경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했고 삶의 파편들을 하나씩 비추며 기록해 나갔다. 이 책은 곧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하찮고 산만해 보일지라도 그에게는 삶을 붙드는 가장 진실한 형식이었다.

(몽테뉴, 사유의 힘)


브런치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컴퓨터를 켜고 이 창을 여는지. 과연 누구에게 감동을 주고자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가며 에세이를 쓰고 있는지. 그렇다면 나 역시. 지금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지. 적어도 하나만큼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오늘과 내일의 나는 또 다를 것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견디는 사람은

조용히 단단해진다.


정말이지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 이 인생을 견디는 일은 녹록지 않다. 나를 갈아 넣으면서 일하고 돈 버는 일도 힘들고 자식을 키우고 부모님을 모시고, 또 다른 관계에 신경 써가며 사람 구실을 해내는 일도 힘들다.


모든 게 버겁고 감정이 터질 것만 같은 때, ‘다들 이렇게 사나' 의문이 든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견디고 참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견디는 수밖에 없어서, 그게 전부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면 일단 버텨 보는 것이다. 몽테뉴도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말조차 아껴야 할 순간 우리는 조용히 견디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견딘다는 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흔들리는 삶 앞에서도 나를 지키려는 가장 깊은 힘이라고 말하면서.


그저 부잣집 자제에 그 당시 훌륭한 직업을 가진 몽테뉴에게 인생이 뭐가 힘들었을까 싶지만 몽테뉴의 삶에서도 견뎌내야 할 시간들이 있었다. 바로 친한 친구의 죽음과 자녀의 죽음이었다.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 앞에 그는 무너졌고 긴 시간 상실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 시간을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견디며 자기 삶의 성찰의 시간으로 다져나갔다.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감정에 함몰되지 않았으며 결국 이 슬픔을 견디기 위해 글을 썼고 그 책이 <에세>가 된 것이다.


"의연함이란, 주로 피할 길 없는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힘이다." 그가 말한 의연함은 어떤 말도 설명이 되지 않는 시간 앞에서 조용히 중심을 지키는 태도였다. 그것은 갑작스레 얻어지는 능력은 아니었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단단해진 마음의 근육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몽테뉴, 사유의 힘)


고통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쓰는 건 어쩌면 참 쉬운 방법인 것 같다. '피하지 마. 정면으로 마주쳐'라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 되뇌어도 정작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는 몸과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실컷 욕하고 울고 화를 낸다 한들 달라질 건 없다.


그러나 먼 시간 후, 고통의 터미널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몸도, 마음도, 생각의 지평 또한 넓어져 있는 걸 깨닫는다.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고, 사라져야 할 일들은 곧 없어진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강해지고 용감해지는 방법은 그저 우리의 마음을 잘 가꾸는 일이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변한다. 아니,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이 달라져 주변 기운이 덩달아 바뀐다.


그러니 몽테뉴가 말한 의연함이란, 결국 내가 선택하는 감정에서 비롯된다. 사는 일이 어렵고 무섭고 좌절스럽더라도 우리는 참고 견딜 수 있다. 소란스럽게 말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조금 더 조용하고 매너 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건

내가 매일 반복한 것들이다.


몽테뉴는 쉬지 않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지금 불안해? 걱정하지 마. 마음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을 수 있어."


그 방법 중 하나로 습관을 들었다. 몽테뉴는 습관이 제2의 천성이며 원래의 기질 못지않게 강하다고 주장했다. 타고난 성질, 환경, 유전의 영향 못지않게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하는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나를 규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동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무서운 놈이다. 매일 우리가 뭘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야 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몽테뉴의 철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의 반복을 돌아보라고.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감정에 반응하며, 어떤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바로 그 일상의 반복이 나를 만들고, 그 습관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몽테뉴, 사유의 힘)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굉장히 찔렸다. 특히 '어떤 감정에 반응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곱씹어 봤을 때 나는 유독 업무상에 발견되는 사소한 실수나 일침, 조언에 예민하고 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어떤 말을 들으면 사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여 업무상의 발전으로 성장하면 좋은데 개인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대화 속에 반드시 드러내는 편이어서 스스로 실망하는 순간이 많다.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나쁜 감정 패턴이 습관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해도 업무상의 지시를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너무 예민하게 군다. 이건 내 자존심이 깎이는 일도 아니고, 일에 굉장한 지장을 주는 실수도 아님에도 스스로 감정을 지나치게 오버하는 경우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이 불안하고 매번 감정이 흔들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내가 어떻게 달리 해볼 수 없는 당연한 패턴의 과정이 내 몸과 머리에 붙어버려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 책을 읽고 반성하고 글을 쓰며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 나를 무너뜨리는 못된 이 관성을 고치기 위해서.


글쓰기는 내 마음속에서 이뤄지는 큰 전쟁 같다. 무한한 욕심과 욕망을 잠재우고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 가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을 계속 꺼내보는 전쟁. 전략도 전술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써 내려가는 나의 글이지만 글로서 삶을 고정시키지 않고 진짜 삶을 살아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는 행위이자,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는 고백이며, 그 고백을 듣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갖춘 용사를 길러내는 전쟁터.


오늘도 나는 나의 전쟁터에서 이 글을 쓰고 내일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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