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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an 17. 2019

전업주부가 재취업의 시간을 견딘 방법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머니의 시대. 아무리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했더라도 한 달 급여는 아쉬울뿐입니다. 가계를 정리하고 살림을 잘 늘리는 것도 돈을 버는 일만큼 중요하지만, 매일 추운 아침 직장에 가는 배우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홀로 따뜻한 집에 남아 있는 제가 괜히 미안하더라고요. 가정 경제의 무거운 책임을 나눠 지고 싶었죠.


결혼을 하고, 잠시 중국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든 컴퓨터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약간의 글을 써서 작은 돈을 벌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낯선 타지에 자리에 잡았을 때도 열심히 재택 아르바이트를 찾아 다녔지요. 핑계김에 쉬어가자고 서울로 출퇴근하기 멀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재택 근무를 자처했습니다. 물론 정말 일주일 반찬 값 정도 버는 게 한 달 노동의 전부였지만 그게 어디냐며 신랑은 고맙게 여겨 주었고, 그래서 한동안은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이고 짧은 시간의 재택 아르바이트는 살림과 균형을 이뤄 주부의 삶이 흐트러지지 않고 매일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어요. 그동안 마감이 있던 조직 생활이 몸에 익었던지, 해야 할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청소와 요리도 미루지 않고 하나의 또다른 일처럼 시간을 분배할 수 있었죠. 그렇게 균형 잡힌 하루의 시간이 저는 매우 좋았습니다.


다만,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것뿐.


언제부턴가 '다시 일을 해야지'라고 혼자 마음 속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하지만 특별한 계기 없이 이 평탄한 삶을 변화시키는게 어찌나 어렵던지요. 정말 배를 쫄쫄 굶는 것도 아니고, 사고 싶은 것이 많아 꼭 가져야겠단 마음도 없어서 그냥 누가 "일 좀 할래?"라고 떠밀듯이 밀면 "그래, 그럼 해볼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이지요. 가뜩이나 얼어붙은 경단녀 고용 시장에선 아주 판타지같은 이야기였죠. 본격적으로 증명 사진을 다시 찍고 이력서를 수정한 뒤 취업 사이트 세 곳에 업로드 하며 종일 마우스를 클릭하는 취업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미 한 번의 이직 경험이 있던 터라 재취업은 어렵지 않을 줄 알았지만 미혼자와 애 없는 기혼자의 출발선은 달랐어요. 뉴스나 인터넷 댓글만 봐도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아이 계획을 물어봤다" "아이 낳으면 그만 둘거냐" "근처에 아이 봐줄 부모님이 계시냐" 등등 생각지도 못한 면접 질문을 들은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저에게 문제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어디에 취업을 할 것이냐였어요. 동네 근처,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그동안 관심있었던 곳에 넣어 볼 것이냐, 아니면 경력을 살려 병원 마케팅으로 갈 것이냐. 33살에 다시 취업을 하려니 20대에 하지도 않은 근본적인 진로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이왕이면 커피도 만들고 카페 운영도 배울 수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볼까도 싶었고, 또 반대로 얼른 취업하려면 경력직이 좋을 것 같기도 했고요. 그렇게 며칠을 취업 사이트에 들락날락 하면서 일단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에 넣자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아직 젊으니까, 지금은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때이니 경력직을 많이 뽑는 강남 지역과 그나마 집에서 가깝게 갈 수 있는 수원을 중점으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지요. 이력서를 넣은 다음 날이면 계속 핸드폰을 들여 보게 되는 것은 여전하더라고요 ^^ 통화 중 부재중이 뜰 수 있도록 콜키퍼도 가입해 놓고, 이제 전화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며칠은 참 우울하고 ‘삼재는 뭘 해도 안 되는 군’이라고 중얼거린 날들이었어요. 전화 오는 곳이 없었거든요.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이끌어야 하는 마케팅 부서가 20대를 많이 뽑기도 했지만 3년의 뻥뚫린 경력이 문제였어요. 그래도 그렇지... 면접 소식도 없다니..


며칠을 미친 듯 이력서를 넣고, 실망하고, 좀 쉬었다를 반복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을 때, 뽑아든 책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하게 취업 때문에 앞일이 막막해지면 꼭 저는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나 아래 책을 펴 들곤 해요.





[딸에게 주는 레시피]


"엄마도 알아. 그런 날이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져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을 듯한 날이 있다는 걸 말이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도 좋지. 너무 청승스럽지 않았으면 해. 말이 없는 클래식이 이럴 때는 좋더라고. 아니면 명상을 돕는 음악이면 더욱 좋지. 그리고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어라. 숨을 커다랗게 열 번쯤 쉬어봐. 네 몸 혹은 네 발가락 마디마디를 느껴봐. 그곳으로 감겨오는 따스한 물의 온도를 느껴. 생각을 멈추고 느끼라고. 





‘서른을 훌쩍 넘은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매일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저 말이 저의 자존감 도둑이었어요. 저 한 문장으로 시작된 복잡한 마음은 한없이 이어지고 집 안에서 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은 많은데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있는 날이 수두룩 했답니다.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잡아야 했어요. 생활의 감각을 놓칠 수 없었거든요. 모든 것을 놓고 넋 놓고 있기엔 날 것의 살림을 해치워야 했지요. 그래서 책을 펼쳐 들어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위의 문장을 계속 읽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무심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거 밖에 없었거든요. 정말 곁에 살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매일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이건 몸을 움직여 일상을 반듯하게 유지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점차 밝게 만드는 우울 특효약이었거든요. 아마 살림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제 특기인 우울한 채로 이불 속에 콕 박혀 부정적이고 복잡한 생각들로 꽁꽁 매여 있었을거예요. 조급한 마음만으로 일이 성사되기를 바라는게 얼마나 비생산적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3년 여의 살림 시간이 제게 알려준 것들 중 하나가 '될 일이면 되고, 안 될 일이면 안 된다'인데 지금 딱 필요한 마음 상태였습니다. 넣을 수 있는 데까지 이력서를 넣고 탈락하고, 또 넣다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태도. 변화무쌍한 마음을 달랠 길은 그저 옆에 있는 행주를 삶고, 양파를 다듬어 냉장고에 넣고, 카레 감자를 깎으며 요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바깥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배우자의 한 쪽 어깨에 집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로 살짝 균형을 맞춰 주는 것이 이 시기를 견디는 제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필라테스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운동 전 들숨과 날숨 명상을 약 2분 정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드는 불온한 생각들을 애써 떨쳐 내고, 다시 들러 붙으면 또 떨쳐 내는 반복입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취업 문제를 팔 하나 들고, 다리 하나 꼬아 몸을 달달 떨면서 생각하니 조금씩 잊게 되더라고요. 물론 운동이 끝나면 어김없이 또 머릿 속을 채울 불안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그 고통을 조용히 응시하며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적다 보니 재취업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건 몸에 익숙해진 하루의 루틴이 아니었나 생각 들어요. 그동안의 조용하고 소소한 날들에 느닷없이 찾아 온 이벤트는 저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걱정시켰지만 해야 할 일을 담담히 하는 행위가 제 마음을 건강하게 컨트롤 해주었거든요. 담담히 지내는 일상을 잠깐의 불안함으로 역전시키지 않겠다는 의지. 별 일이 별 것 아닌 일로, 될 일은 될 터이니 그렇게 걱정할 시간에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을 지속하라고 등을 떠민 겁니다. 어쨌든 취업준비는 시작됐고, 어떤 상황이든 변화가 올거라는 믿음이 서서히 쌓일 수 있게 루틴이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지요.


그런 의미로 세면대에 핑크 곰팡이가 필 것 같으니 고민은 잠시 넣어 두고 이만 청소하러 가야겠어요

^^ 싹 닦인 세면대의 개운한 마음이 좋은 소식을 전해 줄거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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