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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Feb 19. 2019

운세를 보고도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남편과 신년 운세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 여자분은 운세가 좋다. 앞으로 뭘 해도 잘 될 거다.

- 예전으로 따지면 장군감 사주라서 현대 여성에게는 좋게 작용한다.

- 신랑과는 형제 같은 궁합이라 비슷한 점이 많아 좋다.

- 다만, 남성적인 기질이 크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먼저 수그리고 굽힐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남자는 아무리 잘났어도 우쭈쭈 하며 치켜세워 올려줘야 한다.


다 그럴싸하고 좋은 말만 가득해주셨는데도 왠지 찜찜한 건 둘의 사주 비용이 77,000원이어서 그랬을까요? 새해 덕담 치고는 예상 못한 큰 지출이라 놀란 마음 반, 그리고 뭔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마음 반 때문에? 운이 좋단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다니요.


원래는 친구와 사주카페도 곧잘 가고, 한창 실연으로 슬플 때는 혼자 타로 상담을 보러 가기도 했던 저인데 언제부턴가 사주팔자라는 게 좀 뜬구름 같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워낙 인생 전체가 심심한 인간이기도 하고, 능력이 출중하지 못해 다이내믹한 이벤트도 없어 그랬을지 몰라도 여기저기에서 듣는 비슷비슷핰 말이 재미가 없었어요. 어차피 제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게 인생이잖아요? 정말 잘 되고 싶다면 계획은 그만 세우고 행동해야 했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으면 최소 광고 회사 50군데에 이력서도 넣어 보고, 하다못해 광고전에 접수라도 해야 하는데, 저는 딱 5군데 광고 회사 이력서를 내고, 광고전은 접수 일정만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어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답니다.(카피라이터 꿈은 안녕) 그러니 이런 제게 운이 있다 한들 어떻게 인생이 바뀌겠어요.


아마 이번에도 이런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경단녀를 뚫고 취업에 성공했지만 2년짜리 계약직이고, 그 뒷날은 불투명하기만 한데 운이 좋다고 하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 전적으로 그 운을 쥐고 있는 건 내 마음과 실천일텐데 그 말 한마디에 내 운명이 자연스럽게 좌지우지되지 않을 거란 확신.


'운'이라는 건 물론 타고난 것도 있지만 한계가 있으니 이걸 더욱 탄탄하게 엮는 건 인간의 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온통 불투명한 미래에 '운이 참 좋으시네요'라는 한 문장에 꽂힐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싶었죠. 운이 좋으니 가만히 있어도 좋은 일만 생기겠지란 어리석음이 아닌, 더욱 적극적으로 내 운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겁니다.




[운을 읽는 변호사]


- 인간성을 연마하려면 당연한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 후로 저는 하루의 업무나 인사, 청소 등의 일상생활을 할 때 마음을 담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연마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는 것보다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서 운을 트이게 하는 말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말, 격려하는 말, 그리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복을 받는 일'에서 '복을 짓는 일'에 열중하고 싶습니다. 주부로 지내온 나날 동안 살림은 몸으로 하는 기도란 신념을 지켜 왔고, 이런 시간들은 매사 수동적이었던 저를 능동적으로 바꾸며, 오로지 부정적 생각만 즐겨하던 절 균형감 있는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나만 잘 살고 싶었던 시절을 천천히 다독거리면서 모두가 잘 사는 것이 복 짓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죠. 아무도 모르게 좋은 기운을 제 옆에 모아 두었던 것입니다.

 

아, 물론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남편이 무탈하게 회사 일을 잘하고 있고,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주변 친구들도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고 있으니 이만하면 운이 좋은 것이지요. 물론 제가 더욱 운이 좋았던 이유는 가족, 지인을 넘어서 저를 모르는 사람들의 영향력도 클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웬만해선 나쁜 짓 하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단 마음이 들어요.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고 이왕이면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좋은 환경을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나만 부자가 되겠단 욕심을 버리고, 우리 가족만 행복하겠단 마음을 버리고, 손에 쥐고 있는 집착도 버리고.


버리고 버려야 한없이 넉넉해진다는 걸 진정 마음으로 알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버리고, 버리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꽉 채워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즐거움이든, 행복함이든, 또는 아무것도 아니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인생이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래요.


'운이 참 좋으시네요'로 들었던 말을 '운을 많이 만들어 보세요'라고 바꾸니 제 삶의 목적이 한층 뚜렷해 보입니다. 매일 살아가는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슬픈 일도 덤덤하게 내버려 둘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모쪼록 올해는 '복 받는 해'보단 '복 짓는 해'로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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