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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20. 2019

빈티지 촛대를 고르는 마음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취향이라는 건 확실히 변하는 것 같다. 나이와 환경,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각도를 튼다.


촛대에 꽂힌 건 순전히 넷플렉스 드라마 ‘빨간머리앤’ 때문이다. 어릴 적 한 번은 보았던 그 소녀 앤이 지금도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책과 만화로 봤던 앤은 넷플렉스에서 빼어난 영상과 풍부한 감정이 깃든 배우들로 다시 태어났는데 연기는 둘째치고 거기에 나오는 초록지붕 집, 실내 테이블, 그릇, 마구간, 하물며 촛대 하나하나까지 눈을 떼지 못할 소품들로 마음을 뺏는다. 예전 13세 소녀가 동경했던 앤은 나무 숲에서 발휘한 상상으로 파티를 했지만 현재 34세 아줌마가 부러워하는 앤은 빈티지 물건이 가득한 곳에서 다이애나와 차를 마신다.


출처 넷플렉스


사실 이젠 앤보다도 마릴라의 생활과 감정선이 더 잘 붙는다. 평생 독신으로 산 여성의 고독감, 오빠와 앤을 전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그 바람에 깊은 곳에 숨길 수밖에 없던 여성성을 조용히 관조하며 외로움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원작에서 느끼지 못한 세밀한 얼굴 감정이 초 그림자에 일렁인다.


초에 꽂힌 매력은 그것 같다. 어둠에서 은은하게 나는 향기 같은 것.

마릴라가 잠자리에 들기 전 앤을 살피기 위해 한 손에 촛대를 들고 온다. 매튜도 앤의 밤을 위로하러 초를 두고 간다. 어떤 낮을 보냈는지 상관없이 밤의 안부를 묻는 초는 그 자체로 멋있다. 낮보다는 밤에 썩 어울리는 초는 어떤  촛대로 감싸 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출처 넷플렉스


출처 넷플렉스


실로 촛대 모양은 다양하다. 나무, 유리, 쇠 등 재질과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가격도 1만 원대부터 몇십만 원까지 폭이 크다. 이 중에서 내 마음에 딱 드는, 마치 초록지붕 집을 가져온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 촛대를 고르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고, 촛대 지름이 몇 cm냐를 두고 며칠간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분위기를 짐작해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촛대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 촛대는 나의 밤 위로가 필요할 때 마음껏 이용된다.


내가 촛대를 고른 기준은 '빈티지'였다. 너무 새 것 같지 말 것. 손잡이가 있을 것. 뒤 편에 책을 두면 잘 어울릴 것. 이 세 가지가 기준이었다. 그런데  빈티지의 뜻을 알아보자면 '포도가 풍작인 해에 정평 있는 양조원에서 양질의 포도로 만든 고급 포도주. 라벨에 상표와 포도의 생산 연도 따위를 명기한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내 빈티지 기준에 없는 게 있다. 바로 '세월'이다. 시간의 흐름과 켜켜이 쌓여 온 흔적이 없다. 그래서 빈티지스러운 촛대를 샀을 뿐 진짜 빈티지 촛대는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시댁 부엌에 가면 손잡이가 없는 국자 하나가 있다. 어머님이 이걸로 국 푸는 것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참 아끼신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은 빈티지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머리만 달고 있는 그 국자는 아버님 생신 국을 뜨겁게 푸고, 나의 미역국 또한 알뜰히 퍼 주었다. 시간이 국자의 손잡이를 갉아먹었을진 몰라도 정성을 가득 퍼 담는 역할은 그대로인 것이다.

또 어머님 댁에 가면 트럭에서 파는 딸기 바구니가 있다. 예전에는 딸기 한 봉지를 사면 그 딸기 담은 바구니를 그대로 주기도 했었는데, 그때 받은 바가지를 생선 손질용으로 쓰신다. 너무 새 것이라 버리기 아까운 그 작은 딸기 바구니를 용도만 바꿨을 뿐 시간을 그대로 담고 계신 것이다. 뭐든 다 쓸모 있단 어머님의 태도에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을 물건들처럼. 이런 게 바로 빈티지다.




이번 빈티지 촛대 글을 쓰는데 내가 산 촛대와 어머님의 국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빈티지함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누가 더 적합할까? 당연히 촛대라고 생각하지만 국자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을 열심히 퍼 담은 역사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님 손에 딱 맞게 적응된 국자는 아직도 촛대 하나를 조심조심 다루는 내 손길에 코웃음을 칠 거다. 거칠고 고된 노동으로 지켜온 역사의 자리는 아직 새내기 촛대의 것이 아니다.


유독 미래가 걱정되는 밤,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진 밤, 괜히 지치고 힘없는 밤엔 초 하나와 온도가 어두운 조명 하나를 켠다. 그리고는 음악도 없이 고요한 공기의 소리를 듣는다. 머릿속으론 뭐든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지만 그조차도 힘들 땐 어깨를 구부정하게 움츠리고 그렇게 그냥 앉아 있는다. 한쪽 어둠에서 사물의 윤곽을 조용히 드러내는 초가 내 밤의 역사를 품을 수 있도록.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만종>에서는 해 저무는 하늘로 새떼들이 줄지어 날고 있습니다. 그 아래 뾰족하게 솟아오른 성당에서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고 젊은 부부는 일을 멈추고 기도를 올립니다. 가톨릭에서 아침/정오/저녁의 정해진 시간에 그리스도의 강생을 그리고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밤종 기도 중 저녁기도입니다. 모자를 벗어 쥐고 있는 남자와 정갈하게 모은 여자의 손에서는 강건한 신앙심이 배어나고 땅에 발 딛고 일하는 사람의 건강함이 느껴집니다. 수레에는 밭에서 캐낸 감자들이 실려 있고 바구니에도 오늘의 수확물이 담겨 있습니다.




조용하게 힘을 얻고 싶은 날이면 곁에 초 하나 켜고 프린트 해 둔 <만종>을 본다. 먹고사는 고단함이 체력을 덮쳐 웬만한 정신력 가지고는 회복이 안 될 땐 마음을 쉬게 하는 수밖에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감사를 표하는 사진 속 젊은 부부에 시선이 닿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누그러진다. 하루하루 고비 사막을 넘듯 감정에 휘둘려도, 일단 내 공간에 오면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을 전하게 된다. 때론 절실하게 느끼는 삶의 경건함을 고백하기에도 좋은 초 아래.

“오늘도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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