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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pr 07. 2019

불안과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태도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 맞벌이니까 신랑이 많이 도와주겠네?"

"가사 일은 똑같이 하는 거지?"


일을 시작하고 친구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제 똑같이 돈 벌기 시작했으니 집안일도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질문은 꼭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한다. 아마 결혼한 친구는 일과 집안일을 절대로 공평하게 분리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걸 거다.


"시부모님 하고 한 달에 몇 번씩 만나? 그렇게 자주 만나? 난 결혼하면 딱 내 할 도리만 할 거야!"


이것도 물론 결혼하지 않은 친구의 다짐이다. 겉으론 "그래, 그래 꼭 그렇게 해."라고 가만히 미소 짓지만 실은 안다. 그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물론 나도 매일 안부 연락을 하거나 한 달에 한 번씩 시간을 정해 전화하는 며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는 당찬 며느리도 아니다. 아침마다 꼭 삶은 계란이라도 챙겨 먹고 가란 어머님의 말씀에 구구절절 "시간이 없어서 챙겨 먹을 수 없어요ㅠ 물 한 컵도 겨우 마시고 나가는걸요."라고 설명하지 않고 "네, 어머님~"하고 답을 끝낸다. 어머님은 나름 건강이 걱정돼 하시는 소리일 테고, 나도 그 맘을 모르는 건 아니니 내 선에서 수용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우리 엄마가 그랬으면 뭐라 뭐라 잔소리한다고 또 싸웠겠지만..) 처음에는 어머님께 어쩔 수 없이 싫은 티도 살짝 내보고, 싸주신 반찬에 기함하며 너무 많아 버리게 된다고도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묵묵히 받아 온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옆에 이렇게 건강하게 계시니 다 해주시는 거니까. 나중에 돌아가시면 어머님표 마늘장아찌는 영원히 맛볼 수 없는 일이니 감사하게 받아먹는다. 어쨌든 이런 일은 한 두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 일을 시작하니 요리고 집안일이고 뭐고 확실히 전업주부였을 때와는 살림의 결이 달라진다. 이틀에 한번 꼴로 돌리던 청소기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던 물걸레질은 이 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퇴근 후 요리는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고, 주말에 주중에 먹을 밥과 반찬을 미리 만들어 평일 저녁에 야금야금 빼먹는다. 외식도 늘고, 귀찮음도 현저히 늘었다.


결혼하자마자 주부로 산 시간이 3년이다. 이 말은 퇴근 후 내가 오롯이 해야 할 일들을 해 본 적이 없단 뜻이다. 예전엔 퇴근 후 돌아오면 내 방에 들어와 겉옷만 벗고 잠시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방대하게 뺏기고 온 에너지를 회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으면 엄마가 밥도 차려 주고, 빨래 갠 것도 옷장에 넣어주고, 머리 감고 난 수건도 치워 주었다. 허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퇴근하고 잠시 누워있다가도 슬쩍 눈을 떠 어지러운 테이블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 꾸역꾸역 일어나 치운다. 화장 지운 휴지, 밤에 먹다 만 과자 봉지, 물 컵을 정돈하고 공기 좋을 때 창문 열어 환기시키며 어제 미루었던 설거지를 한다. 이 패턴은 그나마 밖에서 저녁을 사 먹고 돌아온 날이거나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워 가능한 날이다. 주요 집안일은 주말에 해치우는데도 평일 저녁에 이런 사사로운 것들을 틈틈이 해두지 않으면 가뜩이나 복잡한 머리에 마음까지 심란하다. 어느 정도 깨끗한 공간이 가능한 이유는 누군가의 수고스러움이었음을, 이렇게 또 깨닫는다.


맞벌이를 하고 나서 ‘남편이 살림을 돕는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남편 자랑 같지만 어쨌든 여기 바깥양반은 살림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거의 90%, 화장실 청소 80%, 분리수거 100%, 청소기와 밀대 걸레 70% 이상을 담당한다. 즉, 주말에 몰아서 하는 남편과 주중에 자잘하게 치우는 나의 역할이 분리된 것이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았을 때 한 언니는 남편이 분리수거는 해주냐고 물었다. 그때 나의 대답은 거의 내가 한 단 것이었고 그 답을 들은 언니는 "남편 길을 그렇게 들이면 어떡해요."였다. 그 말을 듣고 좀 의아했지만 내가 정말 너무 순진했나 싶어 가~끔 신랑에게 분리수거를 요청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 나의 생각은 엄연히 내가 살림을 맡겠다 한 거였으니 굳이 신랑에겐 집안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대신 그때부터 꼭 해주었던 청소기 필터 갈기는 충실히 맡아 주었다. 하지만 이젠 나의 근로 환경이 바뀌었고 우리의 팀플레이 전략은 재정립이 필요했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중에서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집은 방과 달라서 내 손길과 발길이 수없이 닿아야 하고, 눈길이 가야 해요. 그런 시간 끝에 집과 나 사이에 어떤 길이 생겨서 '내 집'이라는 감각이 생기는 거죠.... 저는 집안일이라는 반복적 행위가 삶의 비트를 이룬다고 믿어요. 내 삶에 음악성을 부여하는 근간인 거죠. 지겨울 때도 있죠. 하지만 손끝으로 느끼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생의 감각은 살림으로부터 와요.


거대한 대의와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실천의 세계인 집, 밥, 일상을 몸으로 그려낸 그들의 작품이 좋으면서, 동시에 이런 일상성에 대한 찬양이 또 다른 억압의 빌미가 될까 두렵기도 하다. 일상 속 작은 행복에 기뻐하는 자세에 열광하면서, 그 작은 행복을 가꾸는 손이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건 온당치 않다. 나에게 안락함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의 노동을 외면한 채, 본인은 한 번도 당사자로 뛰어든 적 없으면서, 밥 짓는 뒷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매일 거니는 집안도 우아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뻔뻔하다.




책에 실린 문장에서 살림의 모순을 발견한다. 일상을 매우 가깝게 만들고, 집이라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집안일을,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따뜻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론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우리 곁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라는 이름이겠지만.


살림은 독립이자 자립이다. 흔히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다고 하면 경제적 비용을 먼저 따져보는데 그 뒤에 숨어 있는 노동의 가치는 훗날 발견된다. 설거지하려면 퐁퐁도 채워야 하고, 장마철 옷장을 관리하기 위해 제습제도 필요하고, 사용한 뒤엔 뚜껑을 따서 물은 변기에 흘려보내 나중엔 분리수거까지 해내야 하는 까다로운 구채적 노동 현장이 반복된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 위한 돈 벌기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잘 모으기 위한 살림도 무시할 순 없다. 포근한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이 가능한 이유는 거대한 이불보를 빼서 세탁기에 넣고 말리고 다시 기워 넣는 집안일 담당자의 수고스러움 때문임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신랑과 매주 노동요를 틀어 놓고 쓸고 닦고 개는 일을 하노라면 저절로 엄마와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예전의 아빠는 잔소리만 했지 집안일도 잘 안 도와줬는데. 나는 요리도 거의 안 해서 이 정도지만 엄마는 매끼마다 나도 챙겨야 했으니.. 위로가 얼마나 필요했을까.


분명한 건 나도 살림을 하면서 철이 들었단 거다.   아마 처음부터 오롯이 내가 전적으로 맡지 않고 신랑과 분담했으면 이까짓 껏, 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공간을 드나들면서 직업적 일처리와는 다른 노동력을 쏟으니 단단한 생활인이 되어갔다. 잘 해내고 싶어 어깨 힘만 잔뜩 들었던 직장인 일 때와는 아주 다르게 차분하고 고요한 수양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우주였던 집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생기와 활력을 덧붙여 온 시간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중에서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니 불안과 애매모호한 감각이 또다시 나를 작게 만든다. 팀원들과의 조심스러운 관계, 일의 기획과 진행 그리고 결과까지 많은 책임들이 짓누르면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할 일을 한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운다든가 주방 싱크볼에 거품을 잔뜩 내고 낡은 수세미로 박박 닦다 보면 슬그머니 힘을 얻는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뭐 있어?” 어지르면 치우고, 또 어지르면 치우는 것의 반복.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눈 앞에 있는 일을 하나씩 쳐내가다 보면 가끔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오고, 큰 슬픔이 와도 곧 지나가겠단 감이 온다. 아마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그렇게 사는 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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