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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pr 21. 2018

SNS 속 나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오전.

하루아침에 거실엔 작은 파도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저희 집 거실은 강화 마루인데 마루 안에 물이 넘쳐 장판 모양이 마치 작은 파도처럼 뒤틀린 것입니다.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뭔가 턱 걸려 보니 봉긋하게 마루 끝이 올라와 약간의 물이 새 나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랐지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싱크대 아래 서랍을 열고 물이 새는 곳을 확인하였습니다. 마침 세탁기가 돌아가는 중이라 혹시나 싶어 얼른 껐음에도 쪼르륵 거리는 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관리실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점심시간이라 1시간 뒤에나 통화가 가능했습니다.


저는 그때 무얼 했을까요? 발을 동동거리며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그때 저는 당장 물이 새는 구멍을 휴지로라도 막고, 밑에 작은 바가지라도 놔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별일 아니겠지, 일단 침착하게 관리실에 연락해보자는 안일한 마음만 철저히 따랐습니다. 결과는 약 2~3평의 작은 파도가 몇 개 솟은 거실 모양을 갖게 됐지요.


사실 누수의 원인은 작은 밸브 때문이었습니다. 늘 싱크대의 수전을 꺼내 넓은 싱크볼 안을 구석구석 닦느라 싱크대 아래 수전 줄이 왔다 갔다 했었는데 그 때문에 보일러 가스 밸브가 열려 물이 샌 것입니다. 하. 열심히 설거지한 죄밖에 없는데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다니요. 그동안 살림의 기본인 설거지에 충실한 제가 다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의 무지가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그저 겉모습의 집을 꾸밀 줄만 알았지, 속사정은 들여다보지도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싱크대 아래 보일러 밸브는 어떻게 작동시키는 것인지, 두꺼비집은 어디 있는지, 베란다 구석 작은 틈 사이로 비가 새지 않는지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였으니까요. 집은 난리가 나고 있는데 겨우 제가 했던 일은 부모님께 전화로 물어보고, 관리실에 한 번 연락하고 무시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한동안 이런 저를 자책만 하다가 언뜻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뭐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마루를 걷어내 공사를 해야 하나, 비용과 시간은 어떻게 하지, 집도 정리해야 할 텐데..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딱히 좋은 수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난방 보일러를 켜고 바닥이 마르길 기다려 보았습니다. 혹시나 틀어진 마루의 모양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어요. 그 시간을 기다리며 저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해주셨던 사장님께 전화해 사정이 이러이러한데 혹시 곰팡이가 피거나 벌레가 생기진 않을까 여쭤 보았더니 그런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제 손으로 늘 가꾸고 신경 쓰는 집이 결국 제 선으로 망친 건 아닌가 하는 속상한 마음이 계속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요하게 퍼지는 아침 햇살은 침착한 하루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하루 동안 난방을 켜고 기다린 결과, 마루의 모양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기로 하고 이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부분 공사를 강행하느냐, 아니면 그냥 살아보느냐. 선택은 두 가지였지만 왜 누수 당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그날 아침 분명 물이 새는 소리를 듣고도 왜 아무 생각 없이 방치했을까 하는 저 자신의 한심함만 계속 들추고 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의 저를 꾸짖고 있는 것이지요.




"

[혼자일 것, 행복할 것]


그래, 어쩌면 집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일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덩치가 큰 반려동물일지 모른다. 이놈은 몸집에 비해 잔병치레가 잦기도 하다. 잘 다독이며 살지 않으면 어디가 아프고, 방치하면 골병까지 든다. 혼자 사는 사람은 스스로의 건강은 물론, 집의 건강까지 챙겨야 한다.

"




한동안 층간 소음으로 무척 고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층 주인분들은 좋으셔서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더라도 늘 죄송하다고 먼저 말씀해주셨지요. 저희도 아이 있는 집은 다 그러려니 이해하려 했지만 밤 9시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쾅쾅거림은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늘 집에 있는 사람인데 낮에는 피아노 소리, 고함 소리, 세 아이가 우르르 뛰어가는 소리에 속으로 울부짖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낮에는 연락하기가 뭣해 정말 참을 수 없는 정도이면 제가 나가곤 했습니다. 그 시기는 늘 집에 어떤 소리가 있어야 하고, 위층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도 제 마음이 떨리고 신경이 곤두서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 싫고 무서웠던 때였습니다.


그때 만난 위의 책은 저에게 어떤 위로던 것 같습니다. 아, 나만 집으로 고생하는 게 아니구나. 누구나 어떤 일로서 집이라는 공간을 낯설어하지만 또 고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요. 저의 태도를 달리 하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집은 없음을 또 한 번 인정하기로 했죠. 내가 아무리 쓸고, 닦고, 애정을 쏟아부어도 내가 사는 곳은 모두가 함께 사는 아파트고 위, 아래로 이어진 만큼 어쩔 수 없는 환경들은 받아들이자고요. 내 뜻대로 집을 전시장처럼 박제시킬 수는 없으니 그 어떤 골치 아픔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애정이 식어가던 저의 집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거미와 벌레가 튀어나와 저를 기겁하게 만들지만 이해해주기로. 얼마나 우리 집이 자연친화적이면 네가 나오겠니 하는 마음으로. 가끔 쿵쿵거리는 위층과의 관계는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지만, 아이는 매일 커가니 이 아이들이 크면 위층 소음은 점점 줄어들 것을 기다리기로.


결국 나의 잘못으로 파도 모양의 마루가 생겼지만, 이제는 집이 내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살림을 잘 하고 있다는 저의 오만함을 제대로 충고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예쁜 그릇으로 밥을 짓고, 보기 좋게 테이블만 꾸밀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을 잘 다듬으며 살아가기로 말입니다. 더이상 SNS 속의 이쁜 집으로 저 자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보일러 배관에 먼지는 쌓이지 않았는지, 베란다 구석에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며 집의 겉에 치중할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봅니다.

진정한 집의 주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지요. 봄의 아침, 8시 30분은 안방부터 서서히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해 20분 정도가 지나면 거실에서 주방 안쪽까지 따뜻함이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주방 베란다 큰 창문은 비록 겨울엔 황소바람을 끌고 올지라도 눈이 오고 꽃이 피는 계절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약간의 언덕배기 나무 덕분이지요. 3년째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집의 가장 예쁜 모습이 언제인지 확실히 모릅니다.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이제야 서서히 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청소는 집을 사랑하는 가장 첫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정하고 평범했던 어제의 역사가 집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이 집에 사는 남편과 저의 별것 없고 속상했던 모든 날들을 품어 줍니다. 그동안 저희를 힘든 바깥세상으로부터 지켜주었던 집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불어 이제는 집이 불평하는 작은 소리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면서 이곳을 가장 잘 아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어디가 아프면 뚝딱뚝딱 제 손으로 집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 집의 불편함, 낯섦, 불안정함을 오롯이 다룰 줄 아는 사람. 집의 작은 틈을 낭비하지 않고 더하거나 빼가며 자연스러운 흐름을만드는 집의 주인으로서 집의 건강을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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