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뜰 Jun 12. 2019

열심히 살고 있단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봄이 되고 결심한 것이 있다. 운동을 시작해 볼 것!

회사에 얽매이는 시간이 길어지니 단조롭고 평화롭던 루틴이 더욱 싱거워졌다. 회사-집을 반복하지만 철저히 회사에서의 시간이 많은 지금.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잠에 드는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마침 공기는 따뜻해지고 꽃과 나무 내음이 한창 짙어지니 내 삶에 가끔은 무리한 일을 껴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리상 서울에서 자주 열리는 저자 강연이나 글쓰기 수강은 들으러 가지 못하고, 집 근처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곤 운동밖에 없다.

저번에 필라테스를 했던 성취감이 너무 좋아 다시 한번 시작해 보리라 마음도 들고, 이번에는 남편도 꼬드겼다. 주말에도 하는 헬스장을 찾아 남편은 헬스를, 나는 px를 끊어 요일별로 필라테스와 개인 pt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퇴근 후 잘 다닐 수 있을지 엄청 고민됐다.  스물다섯 살 작은 회사에 에디터로 있을 때 동네 헬스장에 나간 지 이틀 만에 코피를 쏟고 3개월간 내 운동화는 락커룸에 쓸쓸히 있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괜히 무리했다가 돈반 날리는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을 했더랬다.


근 1년 만에 시작한 필라테스는 여전히 좋았다. 등에 땀 한 줄기 흐르는 쾌감, 양 볼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움직이는 고관절, 다 끝내고 하는 샤워는 이 세상 내가 최고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상쾌함을 넘어선 어떤 충만함이라고나 할까. 특히 금요일 저녁 운동을 끝내고 선선한 바람을 가르며 집에 가 먹는 요거트는 꿀맛이다. (술알못 ㅠ) 지극히 건전한 불금이 주는 통쾌한 맛은 모두들 타락해도 나는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이상한 근자감을 만든다.


가끔은 무리하는 이 삶이 팍팍하고 지루한 일상에 이벤트가 돼주고 있다. 운동을 가지 못하는 날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나만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데, 올 1월부터 하정우의 걷는 사람 책에 꽂혀 매일 퇴근길을 걸어오는 것으로 스스로 루틴을 짰다. 미세 먼지 많고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곧잘 걸어 다니며 필라테스를 시작한 뒤로는 운동을 쉬는 날에만 걷는 습관을 만드는 중이다.


부족한 인간이라 이런 강제성 없이는 혼자 운동할 줄도 모르고, 게으르기만 해서 등 떠밀듯 현관을 나서곤 하지만 그래도 내 몸이 막상 좋아하고 있음을 느낀다. 잘 생각해 보니 퇴근 후 운동이 좋은 이유는 정직해서인 것 같다. 실제 내 몸도 건강해지고 있는 것 플러스 정신적 만족감이 훨씬 앞선다. 못 해낼 줄 알았던 나를 이긴 나, 움직인 만큼 흘리는 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어떻게든 버티려는 힘이 점점 생기는 건 삶의 어떤 무기를 얻는 것 같다.


몸이 정신을 강하게 한다고 믿는 나는 플랭크 동작 1분을 채우는 만큼 정신력도 길러진다고 믿는다. 1초, 2초 더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제되지 않는 수많은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발달할 거라 생각한다. 걷는 것과 움직이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꽤 짜증을 잘 내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내가 봐도 덜 부정적이 된 것만 봐도 어떤 효과가 분명히 있다.


지금은 함께 걷는 걸 좋아한다. '걷는 거 싫어, 더우면 짜증 나' 말하는 습관도 줄었고 이제는 정말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날에 걷는 일이 좋다. 내 보폭과 호흡이 건네는 숨 쉴 틈이 걷기의 매력인 걸 이제 알았다.


지금 다니는 필라테스는 예전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시간대가 저녁인 것. 전에는 오전이어서 함께 운동하는 연령대가 다소 높았는데 지금은 20대도 조금씩 보이고 오전의 과한 활기 대신 피곤에 침잠한 고요한 분위기가 본다. 두 번째는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첫 필라테스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동작을 따라 했다면 지금은 거울 앞 나에게 집중한다. 어깨 위치가 바른 지 살피고, 스쿼트할 때 무릎이 나오는지 보면서 오로지 동작과 호흡만 신경 쓰며 정직하게 땀을 내는 시간이 만족스럽다.




[아무튼, 요가]


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요가복은커녕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괜찮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앞뒤, 양옆 사람과 계속 부딪히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 보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타협해가며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운동이 아니면 언제 나를 이렇게 관찰해 보겠는가. 척추 관절의 움직임을 느끼고 내 호흡을 들어보는 일. 이 안에서도 월요일이면 사람이 많아 매트 사이가 좁아지는데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 지그재그로 자세를 취하며 타인에 방해되지 않는 공간을 건넨다. 그러면 본인의 세계로 빠져 땀 흘리는 각자의 우주가 공존하고 각자 열심히 살고 있는 흔적을 쌓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겹고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할  때 그래도 성실하게 살고 있단 감각을 물성으로 느끼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그 순간의 의지와 들숨과 날숨을 더한다. 엉덩이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간 고통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열심’을 몸에 담아 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우리가 진짜 사는 세상을 견뎌내며 봄이 등떠민 필라테스 계절을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을 벌고 사치하는 몇 개의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