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뜰 Jun 30. 2019

나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며칠 전 모델 한혜진의 누드 사진이 실검에 올랐다. 사진도 보기 전 실검에 뜬 걸 보니 또 얼마나 야하게 찍었길래 사람들이 검색을 하나 싶었는데 모니터에서 그녀를 마주하니 ‘헐 완전 멋있어’라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연예인은 참 힘든 직업이다. 돈과 명예를 한껏 얻는 대신 모든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어야 하고, 사랑과 이별 카테고리는 가십으로 씹히기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한혜진이 공개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은근 둘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고, 이별했을 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정말 오지랖...) 단지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별을 했으니 앞으로 행방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결국은 둘 다 잠정하차였다. 아마 우리들같이 비연예인 사내 커플이 깨졌을 경우 대개 여자가 이직을 고려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왜 들었는지... 여하튼 내심 나 혼자 산다에서 꽤나 재미를 담당하던 전현무가 빠지니 섭섭한 건 사실이었고, 한혜진만 빠지면 안 되나 생각도 한 것 같다.


지금 보면 얼마나 내 생각이 짧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같이 사랑을 했고 같이 이별을 한 건데 왜 남성은 직장을 이어가고, 여성이 그만두는 거에 나도 수긍해 버린 건지.. 속사정은 몰라도 한혜진만 그 프로그램에서 하자 안 한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후 한혜진을 자주 보는 프로그램은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조언자로서 이다. 어찌나 깊게 공감을 하고 적절한 충고와 메시지를 던져 주는지 쿨하지만 속 깊은 언니가 되었다.


그런 언니가 이번엔 누드 사진을 찍었다. 데뷔 20년을 맞아 몇 달 전부터 몸을 만들고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모델로서의 기품과 여성으로서의 우아함이 맨 몸으로 드러나는 건 매우 멋있는 걸 알았다. 

그동안 이별의 아이콘으로 소모되던 그녀가 이제야 본연의 직업인 모델로서 가치가 충분히 드러난 것 같았달까. 스스로에게 감동을 선물한 그녀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 여성에게 환호를 받았고 그저 멋졌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건대 사진 한 컷을 위해 수없이 내뱉고 흘렸어야 할 땀이 이별의 상처를 덜어내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몸만큼은 의지대로 된다던 한혜진의 말처럼 다른 것 관심 없이 오로지 몸에 집중하면서 복잡한 것들을 쏟아 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이별 후 회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술, 게임, 진상 부리기, 수다, 환승 등등 사람마다 또 그때의 타이밍마다 달라질 수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필요한 건 혼자만의 충분한 애도 시간과 몸을 쓰는 것 같다.


첫 이별을 했거나 남편과 싸워 감정이 상했을 때 친구와의 카톡 수다도 그다지 도움되지 않고 멍하니 TV만 보는 것도 괴로웠다. 직장에선 틈틈이 메모장을 열어할 말 못할 말 입에 담지 못해 쌓아 둔 이야기를 토하듯 적었고, 가슴이 너무 답답해 터질 것 같을 땐 무조건 밖으로 나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공원을 걸었다. 당시에는 뭘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 그저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행동들이 결국 이별을 지나는 시기에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은연한 힘이 되었던 것이다.


한혜진의 누드 화보를 자꾸 보게 된다. 올블랙의 탄탄한 살갗, 매끄러운 바디 라인, 허투루 쓰이지 않는 포즈.

계속 보니 머릿속에 '멋있다'그리고 이어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은 운동' 이 각인되었는데, 물론 그녀는 직업적 소명을 걸고 우리에게 아주 좋은 화보를 선물했지만 내가 느낀 바는 쿨한 언니의 이런 선명한 메시지였다.


"그깟 사랑이 뭐라고. 이별은 또 뭔데. 날 봐, 내게 집중해!!"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였던 모델 한혜진으로서의 노력이 얼핏 스치고, 그 안에 담긴 프로의식이 사진 속 애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보면서 내 일을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나를 믿는 것이 이런 것임을 배운다. 아마 몸을 영리하게 쓸 줄 아는 모델이라 쓸데없는 감정 소모와 막연한 불안을 운동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쌓이고 쌓인 것들이 힘을 내는 지점은 우리가 막막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현명하게 잘 극복해 낼 수 있느냐일 것이다. 


사랑과 이별의 프레임을 벗고 멋진 여성이자 모델로 그녀가 나타났다.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몸으로, 또 본인 스스로. 어느 한 인터뷰에서 '사랑은 영원한 숙제일 것 같다.'라고 말한 그녀. 연애뿐 아니라 결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먼저 내 몸을 돌보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면 사랑과 이별, 또다시 사랑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박노해 시인의 시 중에서]


용모는 단정하게

몸짓은 단아하게

생활은 단단하게




한혜진의 누드 화보를 보며 이 시 구절이 떠오른 건 의외였지만 자꾸 되뇔수록 뭔가 딱 맞는다는 느낌도 든다. 블랙 누드 컨셉이 완벽했던 용모와 몸짓은 단정하면서도 단아했고, 그녀가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더욱 단단해져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 신선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그러니 우리도 실컷 사랑하고 싸우고 깨져도 보고, 다시 나를 추슬러 일어나 보자. 그 과정에서 새로운 느낌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면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지점에서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살고 있단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