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 수업이 이어지면서 커피 콩, 원두에 대해 배웁니다. 갈색의 작고 고운 열매는 보기와는 다르게 맛이 꽤 씁니다. 향은 짙으나 산미가 풍부하여 뒷맛이 매우 깔끔하죠. 사람의 인간 관계도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기와 달라도 직접 향기를 맡아보고 마실 수 있다면 우리의 오해는 옅어지고 이해가 깊어지는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시간에는 커피 내리는 연습을 주로 합니다.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손과 몸의 리듬을 가지고 열심히 익혀 나갑니다. 따뜻한 물을 서버에 데워 준비 시킨 뒤 원두 가루 위에 물을 조심스럽게 부어 뜸을 들입니다. 생각보다 뜸 들이는 일이 쉽지 않아요. 커피를 충분히 불리며 드리퍼 세 개 구멍에 물이 톡톡 떨어져야 하는데 한 쪽에서만 내리거나 물처럼 쭉 쏟아지기만 하거든요. 그럴 땐 나의 방법에 무엇이 문제가 있다는 것. 물줄기가 굵거나 약했든지, 물이 너무 많거나 적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것이든 제대로 알고 고치기만 하면 뜸 들이는데에 실패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고 다시 도전하고 연습함으로써 내 손과 머리가 기억 해야 하죠. 그렇게 온전히 내 몸이 익혀야 커피의 향이 서서히 살아 나기 시작하며 맛을 내기 위한 준비 과정이 이뤄집니다.
1차 추출에는 12바퀴의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원두 크기가 잘게 갈릴수록 물줄기는 최대한 얇게 그리고 천천히 떨어져야 합니다. 첫바퀴부터 네 바퀴는 마치 제자리에 있는 듯한 작은 원을 돌립니다. 그자리에서 머무는 것 같이 보여도 끊임없이 원을 돌고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해요. 앞으로 나가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매일 한 발자국 내딛고 있으며, 같은 지점을 걷더라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네바퀴서부터 열두바퀴까지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큰 원을 그리며 커피빵이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제일 무심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손과 어깨의 리듬에 맞춰 보폭을 일정하게 하지 못하면 마음은 조급해지고 저절로 물줄기도 빨라져요. 내가 어떤 마음의 속도로 커피를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초반에는 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지도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도 한 명씩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떨림. 여기서 멘탈이 무너지며 자기의 속도를 잃어 버린다면 커피는 과다추출 혹은 과소추출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커피와 나만 이 곳에 존재해야 커피 향을 따라 맛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두번째 수업, 첫 드립은 완전 실패입니다. 똑같은 원두 크기로 갈아도 공기, 물, 온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고, 누가 내리냐에 따라서도 같은 원두 다른 맛이 창조됩니다. 이런 게 커피의 매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저같은 초보 핸드드립 바리스타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일정한 커피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선 몇 백번잔의 커피를 마셔 봐야겠죠? 이젠 집에서 계속 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비로소 나와 커피만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인 것입니다. 간절한 향을 바랄수록 무심해질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커피를 내릴수록 삶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잘하려 할수록 어깨 힘이 들어가 내 몸의 리듬을 잃어 버리게 되거든요. 휘어청.
그렇게 비틀비틀거려도 어찌됐든 걸어 가보지만 영 마뜩치 않습니다. 조금은 바른 걸음으로 똑바른 길을 걸어 가보고 싶어요. 그럴려면 내 발자국 앞을 집중하며 어딘지 모르는 목적으로 가보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살림을 하면서 목적지향주의적 성격이 옅어집니다. 뚜렷한 성취 목적없는 삶이 저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 같아요. 언제까지 전업주부의 직업이 이어질진 모르겠지만 쓸모있고, 쓸모 없는 날들을 보내며 커피를 무심히 내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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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작]
그러나 출발점이 언제나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입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옆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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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에게 커피를 내리는 일이 옆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주부의 삶에서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거든요. 커피 맛도 잘 모르는 촌스러운 제가 나중에는 바리스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