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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ul 07. 2020

“돈독에 오른 게 죄는 아니잖아”

돈 벌기 역시 쉽지 않다.

제목 그대로 나는 지금 돈독에 올랐다. 그렇다고 돈을 아주 잘 벌고 있는 건 아니고 정말 그냥 독만 올랐을 뿐,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관한 여러 책과 글을 탐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왜 돈독이라 표현했냐면 이런 행동이 나의 성향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인데.


사실 난 돈 욕심이 크~게 없는, 아니 욕심만 많을 뿐 제대로 벌지 못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샤넬백을 사고는 싶지만 그걸 뚝딱 살 수 있는 직업도 없거니와 몇 달간 적금을 부어 기다리는 성격도 못 된다. 인터넷으로 주구장창 사진만 비교하다 서서히 욕망이 줄어 결국 ‘에잇 언젠가 살 수 있겠지 뭐’하고 마는 나. 그러니까 돈에 관해서라면 ‘언젠가’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  현실을 눈 감는 인간일지도.


이런 내가 주식을 시작하고 금리 높은 상품을 일일이 검색해가며 적금을 부은 건 돈독에 오르지 못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실비 보험 하나 드는 것도 귀찮아 대충 인터넷에서 비교한 옛날에 비해 이번에 든 암보험은 어떤 보장을 꼭 넣어야 하는지 수십 개의 블로그와 카페, 지식인까지 찾아가며 메모하고 설계사분에게 당차게 여러 보험사 견적을 비교해 보장금액을 올려달라고까지 했으니 보험 세계의 생리를 대강 알게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부동산, 주식, 환율 등 내가 모르는 세계는 얼마나 더 크고 신기할까?



주식은 대략 2년 전, 지금처럼 너도 나도 주식을 시작하기 전으로서 정말 단순히 커피값이나 책값 정도를 벌어 보잔 마음으로 친구에게 카더라 종목을 하나 받고 개설했다. 두근두근.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나의 돈 개념은 조선시대 선비 못지않은 순수형이었다. 땀 흘려 벌지 않은 돈은 다 부정탄 돈이라 생각했고 주식으로 흥한 자 주식으로 망한다고 아빠가 늘 말씀하시는 둘째 큰아빠 예를 들으면서 주식은 더더욱 아예 생각이 없었다. 그저 우리 부모님이 걸어오신 대로 열심히 일해서 벌고, 그 돈을 고스란히 저금하는 게 돈 버는 것이라 믿었을 뿐, 재테크는 감히 내가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은행 이자만으론 늙어서 문화센터 수업 하나 듣지 못하겠다 싶어 재테크 겸 살짝 시작해 본 것이 이 주식이다. 내가 뭐 대박을 노린 것도 아니고 겨우 커피값이나 벌자는 마음인데 크게 망하기야 할까 넣은 투자금이 야금야금 근 천만 원이 되었을 땐 눈에 뵈는 게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아니 스무 번 주식 어플을 켜고 화살표의 오르락 내리락을 확인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심장 뛰고 열이 나는 경험인지는 말로 다 설명을 못한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뭔지, 온통 눈 앞에서 주식판이 뱅글뱅글. 떨어지는 가격의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확 팔아 치웠을 땐 속이 시원했지만 그 후 쭉쭉 빨강 화살표를  쏘는 그 종목을 바라보는 내 눈은 촉촉했음을 고백한다.


팔지 말걸, 말걸 ㅠ


급하게 다시 들어가 줍줍 하면서 연명했던 찌질함도 고백해야겠다. 단 몇만 원 벌어 보겠다고 이렇게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은행에 몇 백만 원을 넣어놔도 몇만 원 버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걸 알면 내게 주식은 조금씩 돈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물론 내가 투자한 기업 모두 이익을 본 것은 아니고 실제 주식값이 반의 반으로 하락해 결국 날려 먹은 종목도 있다. 다행히 내 성격상 그리 큰돈을 움직이지 않아 실제 손해액은 개미 투자자도 코웃음 칠 정도이지만 어쨌든 이 주식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돈에 대한 개념이 바뀐 건 확실했다.


1. 사고팔기는 타이밍이다.

2. 결국 저렴한 가격에 사서 -> 높은 가격에 팔아야 내 돈이다.

3. 사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니고, 팔지 않아도 내 돈이 아니다.

4. 그러니 매수/매도하지 않은 주식이 오르거나 내려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

5. 내 계좌에 찍힌 금액만이 진짜 리얼 내 돈이다!


이 행동이 가능하기까지는 무수히 단련될 자기 마음 수행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로.

내가 주식을 하면서까지 마음공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에만 타이밍이 있다고?

아니다. 주식에도 분명 타이밍이 있다.

아주 꽤, 중요하게.


현재 10,000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언제 살 것인가, 혹은 언제 팔 것인가 타이밍을 노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가 5,000원에 이미 샀다면 얼마까지 올랐을 때 과감하게 팔 것인지 반드시 정해 놔야 내 돈이 된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그저 오를 때까지 기다리다가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심산으로 매도의 타이밍을 놓친다는 건데, 그 어떤 주식과 기업의 가치가 늘 오를 순 없다. 꾸준히 오를 때가 있고 크게 내려갈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팔지 않으면 오르든 말든 내 돈이 아니다.


나는 조금만 더의 함정에 빠져 5,000원에 산 주식을 20,000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6,000에 판 경험이 많다. 뭐 어쨌건 1,000원을 벌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마치 15.000을 잃은 느낌이 더 크니 괜히 손해 본 것 같은 속상한 감정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나쁜 마음인지.


그러니 타이밍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 타이밍을 정하는 건 철저히 나의 기준에 달렸다. 주식을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은 '혹시나, 조금만 더'로, 팔았는데 혹시 더 오르면 어떡하지?(할 수 없다. 내 돈이 아니었을 뿐), 조금만 더 오를 때까지 있어보자(떨어져도 할 수 없다. 그 돈도 내 돈이 아니었나 보지 뭐)


이 두 생각을 버리고 장기적인 투자를 할 것인지, 단타로 내가 정한 금액까지 오르면 뒤도 안 돌아보고 팔 것인지(팔고 난 뒤에 당분간은 차트를 확인하지 말자 그냥..) 그러면 어쨌든 감사하게도 단 몇 천 원이라도 이익을 내고 돈을 조금씩 벌 수 있다.


그동안 초등학생도 못 되는 경제관념을 가지고 서른 넘게 살아온 나는 이제야 보험 약관도 제대로 찾아보고 경제 관련 책도 조금씩 찾아 읽고 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빅 스텝>이란 책에서 부자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리얼 부자는 자존심을 지키며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실행할 여유가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무조건 짠돌이에 악착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옛날 부자의 개념이 아니라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과감한 투자와 올바른 소비로 여유로운 생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나도 원하는 바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전부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기 위해 죽어라 일해야 하니 시간적 여유가 없고, 그럼 건강도 잃고, 친구도 가족도 멀어진다. 게다가 돈이 없으면 사람 마음이 참 쪼그라들어 작은 말에 크게 분노하고 별 일 아닌 일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중요한 건 모든 것들을 나의 취향보단 가격에 맞는 것들로 선택함으로써 생활에서의 미학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돈은 사람이 응당 겪어야 할 다양한 경험을 아주 아주 납작하게 만든다.


돈 중에서 꾸준한 돈이 제일 힘이 쎄다


돈 없던 나의 20대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고 친구 생일 선물의 금액도 쩨쩨하게 계산했었다. 우유 하나, 버스 금액 하나하나 수첩에 적어가며 하루 1만 원이 넘으면 혼자 자책하곤 했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때 참 감정이 가난하고 메마른 게 싫었다. 돈이 적어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걸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나의 건조한 정신 상태. 그래서 나는 이젠 돈이 가져다주는 안정된 마음을 무시하지 않을 줄 알고 출근하고 퇴근해서 받는 고정적인 수입의 힘이 가장 세다는 걸 안다. 이 월급이 없었으면 커피값을 아꼈을 것이고, 소고기도 안 먹고, 반찬 개수도 줄이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도 아까워했을 것이다. 다른 건 괜찮지만 가족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을 감춰야 하는 게 매우 속상했을 걸 생각하면 돈 100만 원이라도 일정하게 내 손에 쥐어지는 일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렇듯 사람을 가장 치사하게 또는 한 없이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돈을 이왕이면 충분하고 넉넉하게 만들어 두고 싶다. 70세가 되어서도 친구들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싶고 가까운 여행을 가는데 주저하지 않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한껏 잘 모으고 부풀리고 써야 한다. 로또로 벼락부자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본다. 그것의 첫 번째가 주식이었고, 간이 좀 더 커지면 경매나 부동산의 세계도 알아보고 싶다. 일단은 지금은 '돈'에 대한 '독'을 잘 이용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때다.


지금 나는 있는 것을 잘 굴리고, 또 잃기도 해 보면서 돈과 친해지는 과정에 있다. 아직도 조급함과 후회를 반복하며 돈이 생겼다 없어지고 있긴 해도 점점 견고 해지는 내 기준을 지키면 벌든 손해를 보든 후회는 남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돈을 가장한 욕심에 스스로 먹히지 않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명한 가치 투자의 길을 걷고 싶다.


이제는 하루에 몇십 번씩 주식 어플을 켜지 않는다. 오전에 한번, 점심에 한번, 마감 전에 한번 정도 추이를 확인할 뿐. 어떠한 액션 없이 오르내리는 돈은 내 돈이 아닌 걸 아니까. 당장 이번 주에 입금될 나의 월급이 제일 큰돈이고, 한껏 오른 내 돈독의 크기를 키워줄 찐돈이다. 지금은 노동만이 나의 큰 투자처이자 바다로 가는 물줄기의 큰 흐름이므로 소홀하지 않기로 한다.



ps.

아, 마음 수련은 삶의 모든 현장에서 필요한 거구나.

직장이든, 주식시장이든.

돈 벌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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