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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Aug 19. 2020

이제 난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 없겠지

끝인 줄 알았는데 또 아니잖아

“00님, 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둬요.”

“팀장님이 사표 수락하셨어요??”


“네. 이번 일로 회사에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졌다니까 알겠대요.”

“ 이거... 축하해야 하나요??^^”


“그럼요. 평생 여기 발 묶인 줄 알았는데, 이제 떠나요 저 ㅋㅋ"

"ㅋㅋㅋ 좋겠다. 부러워요~~~~~"


이런 대화 중 계속 든 생각은 '  이제 회사를 쉽게 그만둘 수 없겠지’였다. ‘아 나도 그만두고 싶어'가 아니라.

 

왜냐면? 나이, 나이 때문에.


퇴사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거라며 온라인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던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아아 20대다. 여길 그만둬도 어디든 다시 취업할 수 있는 나이. 살짝 애매해도 마음만 맞으면 신입이어도 어색하지 않을 스물 하고도 여덟 살.


반면 나는 서른다섯 살. 이제 여기를 그만둔다고 하면 앞날이 꽤 착잡해진다. 신입 이력서를 내는 염치는 진작에 접었고, 잘 팔린다는 대리 경력을 내밀어도 서른다섯 살은 어딘가의 팀장급과 맞먹는 시기가 됐다. 특출 난 기술이 있는 것도, 독특한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 평범하고도 평범한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녀에게 가장 부러운 건 딱 그거였다. 이십대라는 무기. 내 이십 대에는 몰랐던 젊음의 무기.


나는 지금까지 세 곳의 회사를 다녔다.

첫 회사는 스물다섯, 두 번째 회사는 스물일곱, 세 번째 회사는 서른셋에 입사했는데, 지금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부담 없는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보조 업무여서 서른셋에 기혼자여도 상관없었고, 어차피 2년 후 대체될 인력이었다. 그래서 나도 뭐 쫌 마음을 설렁설렁하게 다녔던 것도 같다. 열심히 해봤자 내 자리는 오래가지 못하니까.


그런데 운 좋게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될 수 있었고, 그렇다 보니 점점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여기가 마지막일 것 같아..



옆 팀 대리님은 아이를 낳고 7년 동안 경력 단절이었다가 작년에 입사했다. 올해 나이 42. 나이 때문에 경력직으로는 절대 못 올 줄 알고 마트 캐셔까지 생각했다가 정말 운 좋게 들어왔다 했다.  


"일하던 감각은 서서히 적응하면 금방 돌아올 것 같았어요. 근데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잖아? 직원으로  안 뽑힐 것 같아서 최후의 대책으로 집 주변 마트 캐셔분들을 꼼꼼하게 관찰했지 뭐예요."



능력과 관계없이 구직 활동의 걸림돌이 '나이'가 되는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예전 이력서를 쓸 때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만 쓰면 됐는데 지금은 나이에서부터 마우스를 갖다 댄다. 회사가 경력직을 원해도 스물다섯의 신입은 그냥 넣어볼 패기가 있었지만 왜인지 구직자 25-29의 나이 앞에서 서른의 나는 그냥이라도 넣어볼 용기가 없었다. 뽑히고 싶은 구직자의 간절함은 20대나 30대나 똑같은데 서른다섯의 간절함이 더 처절하게 느껴지는 건 나의 자격지심인 걸까.


그래서 웬만하면 이곳에 오래 남고 싶다.

퇴사 같은 건 꿈만 꿀뿐 실천하고 싶지 않아.



옛날 속담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이곳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능한 목구멍에 기름칠을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 버티고 싶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한 달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 이러니 다른 사람의 목구멍도 결코 쉽게 볼 수 없다.



" 박 대리님은 그런 대우를 받고도 어떻게 계속 다니지? 나 같으면 진작에 그만뒀다!"


무심코 내뱉은 말을 재빨리 주워 담을 수 있다면 바로 저 말을 회수 할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한 사람의 밥벌이를 저렇게 쉽게 취급했을까. 다 사정이 있고, 참고 애쓰고 있는 걸. 생존이 삶의 전부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닌데 말이다. 아부를 해서라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고, 더는 못 버티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내딛는 사람도 있는 곳이 노동의 현장임을 망각했다. 그 사람의 성격 정도는 왈가왈부할 수 있다 쳐도 그와 가족의 목구멍을 사수하는 부단한 노력은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크고 작은 경험을 겪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의 인생을 넘겨짚는 실수를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자꾸 되뇐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타인에 대한 관심도 거둘 줄 알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도 날보고 "서른다섯이나 되어서 왜 아직도 직원인 거야?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꼬박 대리님, 팀장님이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도 않나?"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곳을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럽고 치사 빤쓰여도, 조직을 이끄는 주 연령대가 90년대생인 게 눈으로 확 느껴져도 여기서 내가 맡은 바가 있고, 그걸 성실하게 해내어 퇴사 말고 저녁에 퇴근하고 싶다.


물론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날 없지 않지만 네 번째 회사를 찾는 일은 역시 두렵다. 허리디스크도 있는 내가 편의점 알바라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커피 매장에서 일한다 한들 갓 스무 살을 넘긴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코로나 19는 점점 심각해지는 중이니 그 어떤 일이라도 일단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일 일하러 갈 회사가 있어 다행이고 선물같이 생긴 임시공휴일에 맘껏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건 솔직히 말하면 기쁘기까지 하다. 기꺼이 내 노동을 쓸 데가 있어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의 밥그릇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며칠 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엄정화가 나이에 대해 말하길, 언제부터 나이를 세고 있지 않더라고. 30대가 되면 댄스 가수 말고 발라드 가수를 해야 했나 고민했지만 어차피 정답은 없었고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다고. 아마 세상의 나이에 맞춰 살았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란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가 30대 때 봤던 (지금의) 내 나이는 되게 막막했거든? 근데 우리가 계속 일하고 있잖아.

끝인 줄 알았는데 또 아니잖아."

(엄정화)


후배 이효리도 선배 엄정화가 있어 너무 든든했단 말이 오버랩되면서 나의 윗 여성 선배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옆 팀의 마흔두 살 선생님이 본인 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마흔 다섯 우리 팀장님도 꿋꿋이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나의 세계.


하루라도 더 버티려는 윗 선배들과 미련 없이 떠나는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내 위치도 점점 분명해지고 덩달아 오랫동안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그것들은 대체로 나의 평생 노동 시간이 현재 평균 65세를 넘어 70세까지는 돼야 하지 않겠냐는 것과 그렇다면 앞으로의 35년 동안의 나의 일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들인데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 사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래.서 (엄)정화 언니의 말에 잠시 기대 보기로 한다.


“끝일 줄 알았는데 또 아니잖아.”



지나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하지 않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할 거라는 계획을 들을 때마다 퇴사한 직원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근데 그럴수록 마음 한편엔 소중한 다짐도 점점 커진다.

“아직은 여기서 충분히 일하고 싶다고.”


그래서 이제는 쉽게 하고 싶지 않은 말도 있다.

“이까짓 회사 확 때려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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