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하이킹
시작부터 고백하자면, 내게는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고색창연한 구전이 아니더라도 여행 속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얻어낼 것이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통장은 잃을 것이 많을 테지만.' 동시에 내게는 또 하나 거울의 양면 같은 소망이 있었다. 그래, 그것이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아마 클 테지만), 나는 여행기가 여행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 집중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그랬다. 겉모습은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돌며 유랑했던 3년의 이야기이지만 실상은 그 3년간 벌어졌던 작가의 생각과 변화를 다루고 있는 글인 것이다. 여행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 속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생각과 변화에는 흥미가 생겼다. 뭐라든 간에 나는 아주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므로.
그렇게 '여행'보다는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의 성곽에 올랐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성벽은 이제 백성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처음으로 고른 곳은 낙산을 오르내리는 '낙산 구간'이었다. 이것은 내가 처음 써보는 '여행기'다.
'낙산'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과 함께 한양의 사내산(四內山) 중 하나로 동쪽에 있는 산이다. 낙산이라는 이름에 '낙타산'이라는 이름인가 하며 히죽였는데, 맞았다. 낙타의 등 모양을 닮아서 낙산. 멀리서 보면 굽이굽이 치는 봉우리가 낙타의 등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참 직관적인 작명은 둘째치고 우리나라에도 낙타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있었단다, 낙타.
낙타가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기록은 고려 때다. 고려 건국 초기, 거란이 선물로 50마리를 보냈던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때 고려의 태조, 왕건은 거란이 형제국인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며 낙타를 받아들이기 거부하였다. 심지어 개경의 만부교 밑에 묶어두고 모두 굶겨 죽였다. 너무 슬프다. 해도 너무하다. 어디선가 배고파 우는 낙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아주 무거워진 기분으로 낙산 구간에 첫 발을 들였다.
낙산 하이킹은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부터 시작이었다. 혜화문을 지나 낙산으로 곧장 올라가려던 것도 잠시 '낙산 구간'과 '백악 구간' 사이에서 매우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초입부터 헤맸다는 이야기다. 알고 보니 낙산 하이킹을 혜화문부터 시작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글러먹은 것이었다. 혜화문 관리사무소에 있던 아저씨 두 분이 아주 상세히 코스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가시는 건 아니고요, 저 건너편으로 가셔야 합니다. 아주 반대편이죠. 저쪽으로 가세요."
사진에 보이는 계단. 이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낙산 하이킹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도 낙타니 뭐니 떨쳐내고 비로소 두근두근해 할 수 있었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고 땅이 메말랐지만 오늘은 참 다행이었다. 낙산 구간의 흙길은 잘 다져졌지만 비가 조금이라도 내렸다간 진창으로 금세 바뀔 수 있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시종 완만했다. 산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높이의 언덕배기가 동요 같은 리듬감으로 오르내렸다. 오르는 길이 살짝 힘들만하면 곧 완만한 내리막이 나타났다. 낙타의 등은 매우 온순하고 순한 길이었다. 솜털을 찢어 띄운 듯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었다. 돌로 된 성벽이 햇볕을 받아 노랗게 반짝였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도심이 전부 내려다보였는데 그곳에 맴돌고 있을 소음들은 여기까지 와서 닿지 못했다. 들리는 거라곤 흙 위를 자박거리는 발소리와 미약한 숨소리뿐. 머리 위로 드리워진 나무 어딘가에서 새들이 지저귀었다.
낙산 성벽 길을 걷는다는 행동양식 외에는 정해놓은 것이 없었던 하이킹. 그래도 목적지는 정해두었는데 '낙산공원'이었다. 낙산공원을 정점으로 하여 오르는 길에 팔각정을 들리고 내려오는 길에 이화 벽화마을에 들려 커피를 한잔하겠다는 심플하기 짝이 없는 계획. 팔각정은 낙산공원의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팔각정에서는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건물과 건물이 맞닿고 길과 길이 교차하고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얽혀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도심은 그러나, 이곳에서 매우 정적이고 규칙적으로 보였다. 사람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도심도 마찬가지였다. 어지럽게 복작이는 소란 통인 그곳도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적막한 정물화였다. 이때가 낙산을 오르기로 한 것을 진심으로 만족한 순간이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도심의 전경에 빠져있을 때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단체 여행객들이 들어섰다. 영어를 쓰는 배낭 여행족, 러시아어를 쓰는 가족들, 어설픈 영어를 쓰는 일본인 커플과 이들을 가이드하는 한국인 남녀 둘까지 모두 여덟 명의 일행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정자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름의 감상을 토해내던 그들은 이윽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전경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가지고 돌아간 단체 사진에는 아마 내 뒷모습도 배경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목표하였던 낙산 공원은 '낙산 공원'이라고 새긴 표지석을 제외하면 공원으로 생각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단체로 견학을 온 고등학생 뻘의 아이들이 매우 무료한 표정으로 벤치마다 앉아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은 심심함을 넘어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거의 필사적이랄 만큼 놀 것들을 찾다가 결국 포기한 채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하나 둘 고개를 떨구었다. 똘똘하게 생긴 여학생 몇몇이 인솔 교사 주위에 모여 있었지만 교사도 딱히 전해줄 교육 같은 건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들 중 몇몇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로서도 딱히 그들에게 재미가 되어 줄 것이 없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후 인솔 교사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도 낙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여행이라면 낙산 하이킹은 일상에 한없이 가까운 비일상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엄연히 여행이었다. 혜화문에서 입구를 못 찾아 갈팡질팡했던 것과 낙산공원에 비둘기처럼 모여 앉아있던 아이들의 무료한 표정도 분명 여정이었다. 노랗게 반짝이던 성벽길과 정적이 깃든 도심 전경은 낙산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비일상의 장면이었다.
나는 왜 여행기를 쓰고 싶을까? 비일상에 나를 떨어트려서 관찰하고 포착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답은 아마도 여행기를 계속 쓰는 중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