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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Aug 09. 2019

태풍 프란시스코를 기리며

태풍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재난 경보

  아침에 잠깐 비가 온 오늘은 오후에 37℃를 찍을 예정이다. '예정'은 휴대폰을 호들갑스럽게 리는 재난 경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 털이 바짝 곤두서는 재난 경보음이 사람들의 휴대폰 사이사이, 기지국 굽이굽이마다 울려 퍼졌다. 기온이 37℃까지 올라가는 것을 두고 재난이라니, 새삼 평화로운 나라에 사는구나 실감했다.   

  

  그러고 보니 북녘 땅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을 때는 아무것도 울리지 않았다. 하긴 그쪽 과체중의 지도자가 토라질 때마다 일일이 경보를 울렸다가는 신경과민에 걸리고 말 것이다. 그만큼 재난 경보음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비가 속 시원히 내리면 좋겠는데 소나기 외엔 별로 비 소식이 없다. 남쪽에서부터 접근하던 태풍은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소멸해버렸다. 40분 만이었다. 태풍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40분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었다.  

  

  태풍은 한반도의 먼 남쪽에서 불현듯 태어나 태평양을 부지런히 건너 북상했다. 바다를 건너면서 태풍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턱이 없지만 땅에 발을 디딘 지 겨우 40분 만에 죽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태풍의 이름은 '프란시스코'였다. 아, 왜 하필 태풍에 사람 이름을 붙여가지고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가.  

  

  한반도 남쪽 먼 이국의 바다에서 태어났던 프란시스코는 우리 땅에 발에 딛자마자 할 일이라도 생각난 듯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덕분에 습기 가득한 축축한 날씨는 37℃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던 '프란시스코'는 지금 교황의 이름이기도 하다. 방한했던 교황의 인자한 얼굴이 기억이 난다. 교파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13만 명 신도를 거느리는 어느 교회의 아무개 목사는 신도 성폭행 혐의로 오늘 징역 16년을 확정받았다. 여신도 9명을 40여 차례 성폭행한 혐의다. 신을 모시는 성직자가 이런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신이 두렵지 않았거나 애초에 신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뉴스에 나온 얼굴을 보니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신을 믿지 않는 성직자가 수장으로 있는 교회에 발을 디딜 때, 그녀들에게도 재난 경보가 울렸다면 좋았을 텐데. 죽어야 할 놈들은 안 죽고 애꿎은 태풍만 죽었다.

  


  9호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름이 '레끼마'다. 레끼마는 베트남의 과일나무 이름이라고 한다. 태풍에 감정 이입하며 애도하긴 했지만 태풍으로 피해 입는 곳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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