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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Jun 04. 2019

사냥, 어느 이른 아침에 벌어진

고양이 사냥꾼

  새가 울었다. 부드럽게 아침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닫힌 창을 억지로 잡아 뜯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포근한 꿈에 (어떤 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취해있다가 우악스러운 손에 잡혀 현실로 내동댕이 쳐졌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눈꺼풀 안쪽으로 아직 물러가지 않은 잠의 장막이 희미하게 보였다. 새는 계속 울었다.

  

  새는 지저귀지 않았다. 찢어지게 울었다. 아침을 노래하는 건 아니겠다고 듣자마자 직감했다. 슬픔과 상실이 울음 속에 있었는데 아직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울음이었다. 울음은 곧 울분이었는데 상실을 용인하지 못하는 울분이었다. 새는 아침을 노래하지 않고 아침을 저주하고 있었다.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울음의 주인공은 까치 부부였다. 베란다 뒤 화단에서 까치 두 마리가 활공을 거듭하며 울고 있었다. 부부는 어느 한 곳을 교점으로 서로 교차하며 날았다. 그 교점에는 그들의 새끼가 있었다. 흙에 반쯤 파묻혀 조용히 누워있었다. 새끼는 이미 어미와 아비의 울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 있었다.

  


  새끼의 시체는 참혹했다. 목은 비틀려있었고 이제 막 깃으로 바꿔달기 시작한 날개의 하얀 솜털이 파헤쳐져 있었다. 새끼의 시체를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눈에 그려졌다. 새끼의 죽음은 사냥의 결과였다. 사냥은 성공했고 새끼는 죽었고 부부는 아침을 저주했다.

  

  아파트 뒷 화단에는 길고양이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우리도 그들 중 몇몇에게 밥을 준다. 우리에게 오는 고양이는 임신하여 배가 불룩한 회색 암고양이와 앞발만 하얗게 양말을 신은 것 같은 까만 수고양이다. 그들이 새끼의 죽음에 관여했을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임신한 녀석은 이미 배가 많이 불러서 사냥은 무리였다. 녀석에게는 밥도 코 앞까지 갖다 받쳐야 겨우 먹을 판이었다. 앞발이 하얀 녀석도 아닐 것이다. 녀석은 타고난 겁쟁이여서 밥을 주는 우리의 등장에도 일일이 깜짝 놀라며 혼비백산했다. 그러니 사냥은 턱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까치 새끼는 사냥을 당했고 사냥꾼은 고양이가 확실해 보였다. 까치 부부도 그 사실을 알았다. 알기 때문에 새끼의 시체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근처에 분명 놈이 있었다. 부부의 출현으로 사냥에 성공하고도 사냥감에서 잠시 물러나 있어야 했던 놈이 분명 근처 어딘가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사냥꾼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새끼의 시체로부터 30여 미터 떨어진 화단 덤불 밑에 빛을 밝히고 있는 눈 한 쌍이 있었다. 아침 햇살처럼 노랗게 빛을 발하는 두 눈이 탐욕스럽게 까치 부부를 지켜보았다. 지저분한 노란색 털 위에 갈색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줄무늬가 덮인 수고양이. 아는 놈이었다.

  

  난 놈과 여러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흰 양말에게 밥을 주러 내려갔을 때 놈은 녀석을 위협하여 몇 번이나 내빼게 하곤 했다. 흰 양말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놈은 털을 부풀린 채 사료를 들고 서 있는 나를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자기의 영역이라도 주장하는 양 수염을 가늘게 떨며 목구멍 깊숙이부터 위협적으로 울어 보였다. 자기보다 덩치가 수십 배는 큰 인간의 등장에도 전혀 동요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선 위치보다 높은 곳에 기를 쓰고 올라가서는 위협하듯 털을 세웠다. 놈은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이 날 아침 어쩌다 새끼를 노리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까치 부부가 새끼로부터 눈을 뗀 것은 아주 잠깐이었겠지만 놈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찰나의 일격. 새끼의 연약하고 가느다란 목을 돌아가게 하는 데엔 단 한 번의 일격이면 족했을 것이다. 사냥은 성공했고 이제 놈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까치 부부가 울다가 지쳐 떠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놈은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그르릉거렸다. 까치 부부의 구슬픈 울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용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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