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재형 May 23. 2019

변덕스러운 남자의 하루

운전, 날씨 그리고 쳇바퀴에 대해

  이번 주는 내내 차로 출근하고 있다. 금요일에도 운전을 한다면 수고스러운 출근길을 닷새나 손수 헤치고 온 셈이 된다. 이럴 때도 있는 것이다. 왠지 운전을 계속하고 싶을 때가. 괜히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 보기도 하고 규정 속도를 살짝 넘기는 속도를 내고는 가슴 두근거려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운전이라면 질색일 때가 오기도 한다. 길 위를 가득 메운 자차 출근자들이 개미 떼 같아 보이고 언제 등 뒤를 노릴지 모르는 난폭 운전에 마음을 졸이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변덕스럽다. 나는 좀 그 정도가 더할 뿐이다.

  



  카페에 들어오며 떠올린 심상은 한 가지였다. 각얼음이 하얗게 찰랑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갑자기 올라간 기온은 아무리 생각해도 봄의 기운이 아니었다. 달력을 보니 여름의 경계가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양력은 해의 움직임을 따라 만들어졌고 해의 움직임이 계절을 바꾸는 것이니 오늘은 여름이 아니어야 했다. 얇은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재킷을 입었어도 결코 덥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카페 자동문을 지나 들어가니 서늘한 바람이 반겼다. 깜짝 더위에 카페 주인은 더 깜짝 놀랐는지 에어컨을 있는 대로 세게 틀어 놓았다. 천장에 달린 매립형 에어컨이 천정을 부수고 떨어질 듯 맹렬하게 돌아갔다. 송풍구에는 이미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땀까지 들어찼던 재킷 안으로 냉기가 스며들었고 봄에 대한 배신감도 재킷에 대한 후회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출근 후 주차를 마치고 일부러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얼마나 열정 넘치는 생각을 했는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굳이 계단을 선택한 것만 봐도 감이 오지 않는가. 거의 세상을 바꿀 만큼의 열정으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타 올랐으리라.

  

  그런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에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어디 가까운 곳에 편하게 죽을 곳이 없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적어도 내일은 오지 않을 테니까. 출퇴근이라는 쳇바퀴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었다고? 죽은 생선의 눈이 보고 싶다면 노량진이나 내 앞으로 와라. 회 떠진 생선 마냥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에 난도질당한 눈이 여기에 있으니.

  

  말하자면 나는 아주 변덕스러운 남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러브레터, 우리 500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