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쓴 편지
오월이 바로 코 앞에, 그녀와 내가 손을 잡고 있는 오늘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2019년의 일월을 맞았던 기억도 없는데 오월이라니. 아마 시간을 건너뛰었거나 누군가 질 나쁜 농담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봐, 오월이야. 올해도 삼 분의 이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말이야. 생각해봐, 친구. 이런 날이 딱 두 번만 더 반복되면 2020년이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멍청한 표정을 한 네게 얘기해 줄 수 있을 거야. '이봐, 오월이 됐어.'"
생각해보니 난 분명히 일월을 맞이한 기억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같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제야의 종이 울리는 것에 맞춰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고 그녀는 귀여운 표정으로 내 옆에 얌전히 앉아 기도를 따라 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내 옆의 이 귀여운 사람이 언제고 내 곁에 있기를 바랬고 그래서 그 기원을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아무튼 2019년 일월 일일을 맞이했던 순간은 초록의 덤불에 핀 장미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니까 벌써 오월이라는 놀라움은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 너무 재밌고 행복해서 그만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을 알려줄까?
오늘은 우리의 오백일 째 되는 날이다.
백이면 백,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물어보고 같은 대답을 듣고 난 뒤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암. 예상과 한치도 다르지 않구먼, 그래.
"500일 동안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누구의 덕입니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 덕분입니다."
그녀는 예쁜이다운 미모와 한결같은 잔망과 소소한 질투, 땡깡, 투정, 말 안들음으로 강철 같은 매력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단단하게 구축한 그녀의 매력은 500일 동안 조금도 퇴색되거나 변색되는 것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익숙해지면 질수록 좀 더 날카롭게 날을 세우듯 내 마음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5,000일과 50,000일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녀에게 홀린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500일 동안 버림받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간당간당해 보이던데요?"
사람들이 묻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답을 기다렸다.
일순간 감도는 정적을 바라보며 뜸을 들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민하는 듯했지만 답은 이미 입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건 그녀의 자비나 나의 운 때문이 아니라 그럴 운명이었기 때문이라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헐벗었던 나무가 여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짙푸른 색으로 무성해지듯이. 그녀를 만난 나는 그렇게 결정되었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는 시절 인연 이니까요."
알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들이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람들은 좀 더 질문을 할 기세였다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나 행복해하는 남자에게 대답을 기대할 필요가 있겠냐는 깨달음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