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와 티 타임의 제로썸에 대하여
커피 맛이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반쯤 든 유리잔에 종이 빨대를 너무 오래 담가 둔 탓인 것 같았다. 커피 속으로 빨대의 종이가 한 올 한 올 풀어졌고 희뿌연 먼지 같은 한 모금이 빨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나는 요거트나 밀크티를 시킨 기억이 없는데.'
반납대로 컵을 가져가 남은 커피를 모두 쏟아부었다. 지옥 밑바닥까지 닿을 듯 뻥 뚫린 깊고 컴컴한 구멍이 내 커피를 모두 집어삼켰다.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매고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한 점원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종이 빨대. 종이를 돌돌 말아 만든 빨대의 등장은 범세계적 물결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 퇴출 운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못된 플라스틱과 혐오스러운 비닐에 맞서는 환경 보호 전선의 마스코트. 푸른 별 지구를 이제라도 자연에 돌려주자는 숭고한 정신이 하얀 몸뚱이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비록 인류를 반쯤 절멸시키는 바이러스 폭탄보다는 효용이 덜할 테지만.
그러나 종이 빨대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종이는 물에 닿으면 쉽게 녹았다. 조금씩 올이 풀린 종이가 커피를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딸려 들어왔다. 심각한 문제였다.
플라스틱 빨대의 퇴출이 북극곰의 살 곳은 지켜주었는지는 몰라도 퇴근 후 저녁의 소중한 티 타임은 송두리째 망가뜨려버렸다. 도시 인간의 이기적인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환경 보호라는 부가적 목적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음료의 음용이라는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였다.
아직 동네에는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카페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전향은 시간문제였다. 그들도 곧 대세를 따를 것이다. 북극곰의 집을 지켜줄 수 있도록,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커피를 버블티로 바꿔주는 종이 빨대를 사서 들여놓을 것이다.
종이 빨대 진영의 논리는 단단하고 옳다. 그러니 나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러나 입은 꾹 다물고 있기로 했다. 음료 반납대 위에는 종이 빨대들이 백골처럼 하얀 몸통을 흉물스럽게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