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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Apr 12. 2019

3면의 카페

창을 열기엔 아직 이른 날씨에 대해

  가로 폭이 30미터는 될 법한 통유리창이 활짝 열렸다. 그 큰 창문이 어떻게 열려서 어디로 숨어버린 건가? 바깥으로 휑하니 뚫린 벽면을 보면서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위로도 아래로도 창이 수납될 자리는 없어 보였다. 옆으로 스르륵 미닫이처럼 밀려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추리였지만 사실 그럴 리도 없었다. 말 그대로 벽 한 면이 통째로 열린 격이었으므로. 옆으로 밀려나갔다면 지금쯤 바깥에선 난리가 났을 것이다. 30미터나 되는 유리창이 건물 밖으로 갑자기 밀려 나와 도로까지 가로막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바깥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늘한 봄볕 아래 버스 지나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려올 뿐.

  

  어떻게 열린 것인지는 몰라도 언제 열린 것인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오한에 고개를 드니 창은 어느새 개폐를 마치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다. 손가락이 조금씩 얼어 뻑뻑해지기 시작했고 팔뚝의 털들이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문제는 이것이었다. 빌어먹을 창이 어떻게 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추워 죽겠거든. 주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하나 둘 불만 섞인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에어컨이라도 튼 거야, 뭐야.

  

  화창한 날씨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봄이 되고서 가장 좋은, 봄 치고도 너무 좋은 날씨였다. 맑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햇빛이 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좀 차갑기는 하지만 산뜻하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살랑이며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이 모습을 본 카페 점원은 길 위에 활짝 핀 웃음들과 창을 거쳐 쏟아지는 햇빛에 그만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카페를 '3면'으로 만들어서 봄기운을 실내로 들여놓아야겠다는 결정을.

  

  눈이 작고 앞머리를 정갈하게 자른, 좀 소심한 이목구비의 점원은 그러나 행동에 전혀 머뭇거림이 없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젠장 아직도 모르겠는)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봄기운이 물씬할 것 같은, 그러나 손이 곱을 만큼 냉기가 가득한 바깥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졸지에 카페에서 길바닥으로 나앉게 된 손님들은 어리둥절해졌다.

  

  카페 안에 넘실대고 있는 불만 어린 눈빛들을 점원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뒷짐을 지고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느라 그는 아직 우리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탱글탱글한 얼음은 이제 녹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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