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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Mar 14. 2019

꽃샘추위, 눈과 함께 봄이 오다

Medium Welldone Writings

  날이 다시 추워졌다. 출근길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을 떨었다. 코트 옷깃 속으로 한기가 스몄지만 버스는 봄이 된 관성으로 히터를 틀지 않았다. 얘기라도 해야 할까 싶어 고개를 들었다. 버스 기사는 운전에 열중했는지 미간을 찌푸려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비 예보에 차를 들고 나오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비는 당연하게도 내리지 않았다.

  



  비 대신 내린 것은 눈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눈이었다. 흰 싸라기 같은 눈이 흩뿌려지듯 내렸다. 추위는 잠시 잊고 버스 창가에 코를 박은 채 내리는 눈을 구경했다. 흩날리는 눈 알갱이를 쫓아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애처로운 알갱이는 미처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 없어졌다. 3월이었고 봄, 꽃은 아직 필 기미가 없었지만 대신 눈이 내렸다.

  

  눈과 함께 온 꽃샘추위는 대신 미세먼지를 몰아냈다. 누런 안개 같은 먼지 대신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처럼 깨끗하고 서늘한 공기가 길 위를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맑은 햇살이 스미듯 내려와 길 위를 내리쬐었다. 정류장마다 늦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조급한 마음을 햇살로 달랬다. 부유하는 눈 알갱이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버스는 봄 햇살과 연약한 눈송이를 맞으며 달렸다.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잘 요량이었지만 눈 구경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저 가냘픈 눈송이는 기어이 떠나는 겨울의 마지막 고별사였다. 내리는 눈과 시리도록 맑은 공기 사이사이를 메우는 눈부신 햇살은 겨울과 자리바꿈 하는 봄이 전하는 송별사였다. 봄꽃은 기별 없고 꽃샘추위에 들여놓았던 목도리를 다시 찾아 둘러맸지만 오늘은 확실한 봄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지켜보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버스는 묵묵히 달려 어느새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내렸을 때 눈은 이미 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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