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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Mar 04. 2019

미세먼지 랩소디, 봄을 노래하라

Medium Welldone Writings

  봄이 왔는데, 봄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겨울을 벗어난 해방감 대신 쓰고 있는 건 하얀 부직포 마스크였다. 그래, 미세먼지. 3월 길 위를 채운 것은 봄기운이 아니라 미세먼지였다. 벚꽃의 예감으로 가득해야 할 길 위는 자욱한 먼지로 윤곽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스크를 쓴 입 위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올 겨울은 짧았다. 동장군은 겨우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달이 바뀌자 자리를 훌훌 털고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겨울에도 추위는 영 기세를 펴지 못했는데, 대신 때 아닌 미세먼지가 자주 찾아왔다. 저기압이니 고기압이니 기단은 잘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바람길이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바람길은 대륙의 기상과 정취 대신 중금속 머금은 먼지를 잔뜩 실어다 나르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를 사람들은 피부로 코로 민감하게 느꼈다. 알알이 모인 중금속 가루들은 한반도 상공에서 둥지를 틀었고 짙은 먼지 구름을 만들었다. 봄이 왔으니 하늘은 아주 파래야 했는데 먼지로 탁했고 시야는 뿌얬다. 섬뜩한 핑크색 노을은 미세먼지가 빚어낸 봄의 새로운 정경이었다. 노을을 보고 노래해야 할 시인도 연신 마른기침만 내뱉는다.

  

  정부는 바람길을 탓할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잘해보자고 말했다. 차량 2부제와 고등어를 굽지 말자가 그들의 기치였다. 그들이 탓하기엔 대륙은 너무 크고 만만한 것은 국민이었다. 사이렌 소리를 울려대며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 여기는지 그들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우리 입 위에 걸린 욕지기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봄이 왔지만 사람들은 바깥 대신 실내로 숨어들었다. 덥거나 추울 때 붐비던 카페들은 이제 안전 안내 문자 사이렌이 울릴 때도 붐볐다. 따뜻해진 공기에 강아지들은 신이 나 코를 벌름거렸지만 줄을 잡은 주인들은 하얀 부직포 마스크를 쓴 채 마지못해 길을 나섰다. 이제 필 날이 멀지 않은 벚나무들은 올해도 여전히 개화의 꿈을 꾸겠지만 아마 미세먼지 속에서 창백하게 흐드러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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