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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deep seated person May 13. 2024

아토목신과 나 – 01

마흔 살에 처음으로 정신과의 문을 두드립니다.

3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건너편이 흐릿하게 보이는 유리문에 D정신과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병원의 문은 다른 곳의 그것과 같이 버튼을 누르면 쉬이 열리는 자동문이 아니다. 나의 첫 정신과 방문이라는 상황과 내 기분의 무게감이 더해진 문을 힘주어 밀어야 했다. 살며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고 방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정신과였기에 내 편견은 깊었고 그 편견은 힘주어 열린 그 공간에서 깨져버렸다.


내 상상 속의 정신과는 혹독했다. 여러 다양한 증세의 환자들 사이에 눈동자를 돌리며 떨고 있는 내 뒤로 엄격한 색상이 칠해진 완벽한 사각의 좁은 공간. 누군가 온전치 못한 목소리로 답변을 기대하지 못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소리 사이로 단호한 의료진의 명령 또는 부탁이 먹혀들지 않는 부산함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아마도 내 무의식에 영향을 준 영화와 시리즈, 70년 대 이전의 서양 소설들을 미워해야 할 것만 같다.


D정신과는, 우리 정신과는 그렇지 않았다.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따듯하고 널찍한 로비에 환한 조명으로 날 맞아주었다. 조용하게 이름이 불린 환자들은 치료실로 들어갔다.



지난 12월,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꼭 보러 오라는 아들의 당부가 있었던 초등학교 학부모 초청 행사에서 화려한 응원복 사이의 상기된 아이 얼굴이 이제 곧 그의 순서임을 알려주는 시간에, 그 소란함을 뚫고 D정신과에 초진을 예약했었다.


초진은 미리 문자로 알려주지 않으니 시간에 맞춰 꼭 도착하셔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 화려한 군무가 시작되었다. 나는 성급히 캘린더에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고 두세 번 확인했다. 언젠가 내 직장 상사의 결혼식 날짜를 잘못 입력해(절대 잘못입력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아이폰의 캘린더가 멋대로 시간대를 바꿔 예정된 날짜보다 하루 뒤에 알려줬을 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로 인연이 끊어진 뒤에 생긴 버릇이다.


힘든 시간이었다. 약 세 달의 어려운 기다림 뒤에 오게 된 병원이었다. 예약을 했지만 예정된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를 넘긴 시각에 진료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영화와 시리즈와 서양 소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찌릿하고 찌르는 철제 책상에 무표정하게 앉아 번쩍이는 무테안경 너머로 나를 꿰뚫어 보는 의사는 없었다. 어디가 어떻게 힘들었는지 듣고자 하는, 날 도와주려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선생님은 한동안 내 얘기를 듣고 내가 작성한 시험지의 결과를 훑은 뒤, 우울증인지, ADHD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무엇인가 온전히 생각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 소리 때문에 화를 제어할 수 없어지는 것이 두렵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가족이 날 보는 눈이 무섭다고 얘기했다. 난 이것이 우울증이든 ADHD이든 제발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아 그렇다면 ADHD가 맞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강한 약을 쓰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해봅시다."


선생님은 이런저런 약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런 내 상태를 약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저 신경 안정제라도 처방받아서 화가 났을 때 약을 먹어버려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진료실 문을 나서며 조금은 허탈했고, 내 목적을 이루지 못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마흔 살이 되어 처음으로 방문한 정신과에서 아토목신과 아빌리파이를 처방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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