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30대 후반의 여성들은 절대다수가 육아 중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전통적으로는 그럴 텐데, 지금도 내 주위만 유난히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육아 중이거나 아예 싱글, 이 두 카테고리 중 하나로 분류가 된다.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유산을 경험하여 부부만 살고 있는 커플은 우리 집뿐이다.
이런 세상 애매한 포지션이라니.
나는 결혼을 했기에 기혼인 친구들과 결혼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짧은 임신과 유산을 해보았기에 임신까지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것들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너무 멀게 느껴지는 무언가였다.
나의 유산 경험 또한 출산이 순조로웠던 육아 중인 이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였고, 나는 육아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가족끼리 같이 만나서 애들끼리 같이 잘 놀고 있으면 부모들은 편안하게 잠시나마 휴식도 갖고 어른의 수다도 나눌 수 있는데, 우리 커플처럼 애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놀릴 상대도 없는 커플은 결국 육아에 집중하고 있는 커플들과 멀어졌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자연히 육아든 연애든 주관심사가 다른 지인들과는 공감대를 깊게 나눌 수 없는 중간지대에 위치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육아 중이거나 싱글에 속하는 지인들을 만날 때 내 공감력을 열심히 극대화하고자 노력한 것 같다. 연애하고 결혼할 때의 옛 기억을 끄집어 올려가며, 혹은 짧은 임신 기간을 떠올리고, 아이가 있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겠지 상상도 해가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지인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 모든 나의 대화는 먼 과거에서 길어 올려지고, 경험하지 못한 미래나 상상으로 채워간다. 이런 노력으로 간신히 대화를 이어가는 형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화에는 조금씩 빈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현재 같은 경험을 하고 있어서 더 공감을 잘해주고 깨알 정보공유 및 육아 품앗이나 공동육아가 가능한 관계에 더 쉽게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나는 노력을 해도 어쩐지 아주 자연히 조금씩 밀려난다.
이 얼마나 외롭고 애매한가!
(적고 보니 더욱 덮쳐오는 외로움... 허허허)
분명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한 사람이 어느새 되어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 상황은 내가 의도한 것일까? 아니다. 나도 아기와 신랑, 나, 이렇게 세 식구의 가정을 꿈꾸던 시간이 있었지만, 누구도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경험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자인’ 이 포지션에 머물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계속 그럴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현재는 이러하고, 이에 대해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내 잘못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때로는 다수자의 입장에서 편리하게 소수로 추정되는 이들을 탓하거나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나는 ‘일반인’이고 너는 아니라는 권력구조의 맛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일까?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대다수와 좀 다르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대체 왜 그랬대?’ 이유를 궁금해하며 무례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째서 그때 그렇게 했느냐고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있지 말고 훌훌 털어버려!’ 이런... 혹은 ‘이그 그러게 몸 관리 좀 잘하지...’이런.....&@₩”!???
그런데 그들이 처한 상황이 정말 반드시 그들이 뭔가 노력하지 않아서, 아니면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인 걸까? 한 번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도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려면 또 다른 ‘노오력’이라는 것을 했어야 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소수에 속하게 되어버린 상황과 입장에 처한 사람들을 왜 우리는 그저 보듬어 주지 못하는지, 아니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도 어려운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흔하지 않으니까, 익숙하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실 이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더 맞는 현실 같다.
요즘은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예전만 해도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너만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을까봐, 그렇게 이해받지 못할 상황을 꺼리거나, 애초에 터부에 해당하므로 어떤 상황인지 상세하게 당사자들도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다 보니 서로 이해의 거리를 좁혀나가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아직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영역이다.
생각해보면 그들도 본인들의 상황이 가장 기가 막히고 받아들이기 싫지만 힘들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좀 더 안아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일에 탈탈 털려가며 겪고서야 뒤늦게 이런 마음들을 깨달은 나에게도 그러지 못한 순간들이 참 많았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유산은 고통스러웠지만, 내게 생각지 못한 것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또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우리의 이 애매함을 잘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즐기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는 어느 날, 한 지인은 이야기를 듣더니 참으로 해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었다. (^^)
“와! 그럼 너는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해볼 수 있네! 강점인거 같은데!”
(와우... 이런 관점이 가능하군요?
허허허허...네 조금씩은요...^^;;)
그렇습니다. 모든 면에는 이면이 있네요.
이렇게 긍정적인 면을 보며 하루를 또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