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와 저녁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영 싫어하지만 지금 안 하면 앞으로도 하기 싫으므로 꾹 참고 의젓한 어른의 자세로 그릇을 하나하나 닦던 중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 툭,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다. 그러다 곧 내 머리 위로 떨어질 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리도 없고. 음? 그렇다면..?'
"으아아아아아악!!!!"
들을 사람도 없는 집안에 비명이 울려 퍼진 건 벌레가 내 머리를 치고 떨어진 지 3초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 머리를 톡 치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귀뚜라미 한 마리였다. 처음엔 꼽등이인 줄 알았으나, 최근 자연친화적인 동네에서 우연히 귀뚜라미를 발견하고 꼽등이는 그보다 훨씬 못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 순간 나한테는 이게 귀뚜라미인 지 꼽등이인 지는 벌레 손톱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덜 징그러웠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지금 이 공간에 벌레와 내가 같이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도저히 벌레를 잡을 도리가 없었던 나는 살충제라는 치트키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은 방생을 바랐으나 벌레의 사체도 잡을 수 없어 청소기 찬스를 써야 하는 나약한 나를 용서하렴. 무서운 마음에 사태를 빨리 해결하고자 살충제를 있는 힘껏 뿌려댔더니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아플 정도였고, 바닥은 살충제로 축축해져서 걸레로 박박 닦아내야 했다.
나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큰 벌레 작은 벌레 가릴 것 없이 다 싫다. 벌레보다 몇만 배는 큰 덩치로 그게 무섭기도 하냐, 하겠지만 이건 무서움의 문제라기 보단 그냥 호불호의 문제인 것 같다. 징그럽기도 하고 대부분은 더러운 아이들이니 비위가 상하기도 하고. 애초에 여긴 우리 집이고, 걔들 집은 따로 있으니 주거 침입이지 않은가? 두 팔 벌려 환영할 이유가 도저히 없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 집에서는 어떤 창에서 밖을 봐도 초록색 풍경이 보인다. 소담한 마당도 있다. 건물 크기에 비하면 놀랍도록 하찮은 크기이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아늑하고 좋았다. 예전에는 이웃끼리 모여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던 공간이라고. 감나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구옥의 상징인 감나무도 있었다.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무게를 얻어 가면서 가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몇 개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그런 모든 모습이 따스하고 정감 있어서 매일 봐도 질리질 않아 좋아한다. 이 '프라이빗 가든'에서, 날 좋은 날 앉아 쉬고 싶어서 저렴한 캠핑의자도 샀다(이번 봄에는 얄궂게도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앉아보진 못했다. 캠핑의자를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쪽문을 열고 들어오면 계단을 덜 오르고 집에 들어갈 수 있기도 하고 역까지 좀 더 빨리 갈 수 있어 애용하고 있다. 쪽문으로 오가려면 이 작은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내가 참 좋아하던 이 길이 여름이 되니 지뢰밭이 되었다.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잡초들과 습한 날씨 덕분에 이 마당은 모기들의 터전이 된 듯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감나무는 날파리들의 맛집이 됐고, 나무란 나무에는 매미가 열매를 맺은 것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 길은 마치 작은 것들을 위한 사파리 같다.
얼마 전엔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화장실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작은 택배 상자 하나를 들고 들어와 내려두고 거실을 가로질러 손을 씻으러 욕실에 닿기까지 5분은 걸렸을까?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위잉'하는 소리. 내 눈앞에 모기가 한 마리, 또 한 마리. 두 마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 마리는 내 팔에 앉으려던 참이었다. 짜증스럽게 얼른 잡아서 물에 쓸려 보냈다(징그러워서 눌러 죽이지는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몸 여기저기가 살살 간지러운 거다. 아까 팔에 앉으려던 녀석이 떠올라 간지러운 곳을 살펴봤다. 하. 장난하나? 그 사이에 모기에 물린 자국이 하나, 둘, 셋... 여덟 방이나 되는 거다. 두 녀석이 사이좋게 여기저기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는지 발목부터 팔뚝까지 조금씩 위로 올라오며 비슷한 자리에 각각 4군데를 물어 놨다. 어딜 가나 벌레 물리기 1등인, 피 맛집 인간으로서는 너무 괴로운 환경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갑자기 또 물렸던 곳이 근질거리는 것 같다. 아, 너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대가인 것인가?
나는 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모기 차단을 위해 현관에 시나몬 가루를 담은 종지도 두고 구문초 화분도 구매해 현관에 두기도 했다(현관에 햇살이 안 들어 금방 돌아가셨지만.) 봄기운이 느끼기 시작할 때쯤엔 집의 온갖 틈이란 틈에는 벌레 차단을 위한 살충제를 살포했다. 얼마 전에 리필도 했고. 그걸 뿌리면 6개월은 벌레가 얼씬도 안 한다나 뭐라나. 바람이 통하는 벽난로 안에 방충망도 설치해 보고 당연히 창문 방충망 보수 작업도 했다. 실리콘을 사다가 벽에 갈라진 틈 같은 것이 보이는 곳에 쐈다. 실리콘을 2통은 썼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 같은 아랫집 어르신께서 친히 찾아와 양해를 구하신 뒤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건물 방역도 해주셨다.
효과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기가 매일 들어오진 않는다. 다행히 창문 같은 데서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올 때 한 번씩 내 옷이나 내 살(ㅠㅠ)에 착 붙어서 들어오는 것 같다. 덕분에 현관 앞에서 옷도 좀 털고 발도 한번 구르고 집안에 들어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도 바퀴벌레가 없는 게 어디야. 그것만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다.
요즘 모기는 소리도 안 난다. 어쩌다 한 번씩 모기가 들어오면 난 세상모르고 자다가, 아니 알고 자다가도 쉽게 잡히지 않는 모기에게 자비 없이 물어 뜯긴다. 어느덧 머리맡에는 벌레 물린 데에 바르는 약을 구비해 두게 됐다. 옛날에 누군가 여행 다녀와서 사다 줬는데 쓸 데는 없고 버리긴 뭣해서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호랑이 연고. 냄새가 좀 독하긴 한데 효과가 이만한 게 없더라. 동파 걱정도, 가스비 걱정도 안 해도 되는 소중한 여름날이건만 내 피를 지키기 위한 혈투를 벌이게 될 줄이야. 하여간 바람 잘 날이 없다. 몸이 성한 날도 없고.
#뚝딱대는구옥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