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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Dec 30. 2023

출산율이 문제가 아니라,

1. 얼마 전 SNS에서 한 선생님과 토론(?)을 했다. 출산율 0.6%대? 물론 심각한 사항이다. 그 토론의 장이었던 본문 역시 그 심각성을 지적하는 글이었고, 나도 그에 대해 동의했다.


2. 다만 인용하는 통계자료가 조금 모호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우선 합계 출산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어린 나이, 10대 중반부터 50 정도까지의 여성을 대상으로 집계한다. 이 자체도 모호하긴 하나, 예전에도 같은 지표를 사용했으니 넘어간다 쳐도.


3. 기혼 부부의 출산율은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합계 출산율이 꾸준히 하락하던 와중에도 기혼 부부의 출산율은 증가(!)한 적도 있고, 조금 감소한 지금도 그 감소폭이 크지도 않을뿐더러 1.0%를 웃돌고 있다. 요즘 딩크족이 그리 많은데도 1을 넘는다는 건, 둘째 셋째 낳는 부부도 적지 않다는 것의 방증이다.


4. 이로써 도출되는 지표상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1) 결혼을 하고도 자녀를 낳지 않는 인구의 증가, 2) 결혼 인구의 감소. 1)의 문제는 중앙정부나 각종 자치단체에서 많은 정책과 노력을 기울이는 듯하다. 오히려 도외시된 것은 2)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5. 같은 맥락에서, 얼마 전 재미있는 글을 봤다. 불과 몇 년 전 크리스마스의 강남역 모텔들은 몇 배 가격을 불러도 전부 만실이었단다. 반면에 올해는 정가에 준하는 가격대로 받았음에도 공실이 꽤 있었다는 것. 이 말은 즉, 결혼은커녕 연애 인구도 줄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다.


6. 요컨대, 낳을 사람들은 여전히 애들 둘셋씩 키우고 있다. 길거리만 지나다녀도 아들 둘 손잡고 다니는 아빠, 세 남매가 쪼르르 부모님을 쫓아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근데 애초에 '낳을 가능성이 있는 인구층'인 '결혼 인구의 감소', 나아가 결혼으로 이어져야 할 '연애 인구의 감소' 문제는 시급한 것이다. 아니, 사람을 만나야 자녀도 가지지.


7.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자-불신의 태도가 만연하면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을까. 심지어 일각에서는 "결혼 안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이득"이라는 지적도 보았다. 결혼한 가정이 누리는 각종 대출 혜택이, 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대출 혜택의 합(즉, 2인분)보다 안 좋다는 것이다. 아직 이 어젠다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부 정책들의 존재가 있나 보다.


8. 결혼이며 사랑이며, 결국 '공유'와 '내어줌'의 윤리가 실현되는 것인데, 일차적으로 우리는 타자와 관계를 단절하는 데에 정신을 몰두하는 듯하고,


9. 이차적으로 핵심을 꿰뚫지 못하는 정책들이 이 문제를 방치해서 점점 썩는 상처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공답보하는 셈. 우리 사회에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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