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가 7시 반~8시에 잠들어서 10~11시간 정도를 통잠 자는 생활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생겼다.
복주를 더 자세히 관찰하면서 복주와 상호작용을 하며 놀 수 있었고, 수면교육과 관련 없는 다른 육아책들을 새로 구입해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하아, 그러나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던가..!
육아책들을 많이 읽고 복주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다보니, 이번에는 복주의 발달 상태가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복주는 뒤집기나 기어가기, 걷기 등은 또래에 비해 빠른 편이었고 작은 과자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고 버튼을 손으로 조작하는 것도 잘해서 대근육이나 소근육 발달에서는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11개월이 넘어서야 짝짜꿍, 바이바이, 곤지곤지 등을 겨우 따라하기 시작했고(그나마도 자주 따라하지도 않았다.) 말할 줄 아는 단어도 없어서('엄마'나 '아빠' 발음을 입으로 내기 시작한 것은 5~7개월 무렵부터였으나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의미를 알고 발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인지 발달과 언어 발달에서는 내가 좀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발달이 느리거나 문제가 있다고 속단할 수도 없었지만, 인지 발달이나 언어 발달이 또래에 비해 결코 빠른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복주의 발달을 위해 좀더 노력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월령별 표준적인 아기의 언어 발달 상태(출처 : 동아일보)
그래서 아이의 두뇌 발달을 위한 책들은 물론이고, 자폐 어린이들까지도 호전시킬 수 있는 언어치료, 놀이치료와 관련된 책들을 잔뜩 읽어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니 여태까지의 육아 방식에 대해 많은 반성이 들었다.
복주가 낮잠이 줄어들고 밤수가 잦았던 시기에 나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현란한 소리와 번쩍번쩍하는 불빛으로 복주를 현혹시키는 장난감을 대거 집에 들여와서 '장난감 의존적 육아'를 하고 있었다.
아이와 눈 마주치고 상호작용하고 교감하는 육아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초심을 잃어가며 체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복주도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로 복주가 장난감을 탐색하며 혼자 노는 것을 장시간 방치하고 있었다. (사실 복주가 칭얼대지만 않으면, 복주가 장난감을 혼자 갖고 놀 때 '아이고, 이게 웬 떡이냐!'하면서 거의 그대로 두었던 것 같다..ㅜㅜ)
공부를 하다보니 소리와 불빛이 현란한 장난감은 아기가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아기에게 빠르고 강한 자극을 주어 미디어 노출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발달이 느리거나 자폐가 있는 아동의 경우 의사가 그런 장난감을 집에서 치우라고 얘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V 노출만 조심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학계에서는 36개월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영상 기기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한다고 한다. 이 시기의 일방적인 시청각 자극은 독이 될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미디어의 불빛이 아기의 수면을 방해한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켜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국민' 붙은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다 들여와서 육아를 하고 있었는데, 국민 장난감들에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복주를 위해 들인 국민문짝 러닝홈, 스텝앤플레이, 어라운드위고, 각종 사운드북, 에듀테이블, 에듀볼, 브이텍 걸음마 보조기, 유키두 달팽이, 개구리 연못, 스윙구스, 파파구스, 꼬꼬맘....
이 모든 것들이 복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주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난감일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온갖 장난감이 난무하는 우리집 거실...
복주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난감, 복주와 놀아주는 장난감은 엄마를 좀더 편하게는 해주는 '꿀템' 같이 느껴졌지만, 사실 이것이 독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복주와 '놀아주는 장난감'이 아닌 복주가 주체가 되어 부모와 상호작용하며 놀 수 있는 '놀이 방법'이 필요했다.
복주가 5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장난감 대신 거의 몸으로만 놀아주었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0~5세 뇌가 쑥쑥 자라는 놀이 육아', '아이가 좋아하는 성장발달놀이 140', '아기를 웃게 하는 100가지 방법' 등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아기와 놀아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책에 나온 여러 가지 놀이 방법들을 보면, 결국 핵심은 '아기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걸어주는 것'이다.
어떤 놀이를 하든 아기에게 말을 걸면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 하나를 굴려도 "우와 동글동글 공이네~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네! 복주도 공을 굴려볼까? 이렇게 손으로 툭! 치면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지?" 하는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한다.
복주의 발달이 느린 것도 사실 '국민 장난감'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 장난감을 활용하는 '나'의 잘못이었다.
소리나 불빛은 끄고 하나하나 버튼을 누를 때 내가 옆에서 말을 걸어주면서, "어~ 이건 뭘까? 고양이인가? 고양이는 야옹야옹하고 울지?", "이건 초인종이지? 복주가 방금 초인종을 눌렀지? 초인종 누르면 띵동~ 소리가 나요"하는 식으로 말을 해줬다면 장난감은 효과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말을 걸어주는 여러 예시들을 보니, 그동안 말을 걸어 줄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을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는 반성이 참 많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는 책에 나온 괜찮은 놀이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복주와 상호작용하는 육아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다고, 매일밤 잠들기 전마다 "내일은 더 잘 놀아줘야지, 내일은 더 예뻐해 줘야지."라고 다짐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