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주 엄마 Jul 25. 2021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끝나지 않는 출산의 고통 터널

포유류 중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갈수록 머리는 커지고 골반은 좁아지는 진화를 거쳤고, 그 결과 가장 고통스럽고 위험하게 출산을 하는 포유류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도 동양인은 머리가 크고 골반은 작은 편이라서 더욱 고통스러운 출산을 한다고 한다.


10개월 된 태아의 머리는 엄마의 골반을 간신히 빠져나올 정도의 크기까지 크고 그래서 조금만 아기의 머리가 삐뚤어져도 엄마 골반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위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포유류가 혼자서 조용한 곳에서 새끼를 낳는 반면, 인간은 혼자 새끼를 낳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포유류 중에서 혼자 새끼를 낳지 못하는 것은 인류밖에 없다고 한다.  


출산 직후 회복실로 간판을 바꾼 분만실에서 조용히 쉬고 있을 때, 잠깐 남편이 나가면서 문을 열어뒀었는데 다른 방의 소리들이 잘 들려왔다. 진통을 겪는 다른 여자들의 신음소리였다.


여태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고통으로 비명이나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많이 들어봤지만 연기가 아닌 진짜 고통의 신음 소리는 그날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으으으으윽...", "아악...", "으아, 엄마아아아...."하는 비명 소리들이 여러 방에서 연이어 들렸는데, 방금 전 그 고통을 겪고 난 사람으로서 그 비명 속에 담긴 진하고 깊숙한 고통의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산모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곳은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비명을 지르는 산모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저 고통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회복실에 두어 시간 누워 있은 후 휠체어를 타고 위층인 병동으로 이동했다. 1인실과 2인실이 모두 꽉 차서 할 수 없이 3인실로 가게 되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엔 이미 자리 잡은 임산부가 있었고 나는 가운데 칸에 누웠다.



미역국이 한 대접 가득 나왔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고 미역국만 있었다.


출산을 하면서 17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미역국을 남김없이 국물까지 훌훌 다 먹었다.


그리고 이빨을 닦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출산 후 처음으로 거울을 본 순간, 나는 내 얼굴에 충격을 받았다.


실핏줄이 다 터져서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빨갛게 터진 핏줄이 붉은 얼룩처럼 온 얼굴과 목을 뒤덮고 있어서 붉은 도마뱀 같았다. (이렇게 터진 실핏줄은 랩틸리언처럼 그렇게 2주를 살고 나서야 원래 피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ㅠㅠ)


실핏줄이 다 터져 도마뱀처럼 변한 피부ㅠㅠ


다 터진 실핏줄을 보니 새삼스럽게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하고, 실핏줄이 다 터질 만큼 이런 커다란 고통을 겪은 게 서럽기도 했다..


다인실에서의 1박은 괴로웠다.  



나는 예민하지 않아서 다인실도 싸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ㅜ


진통을 오랜 시간 겪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힘들어서 이제 좀 자려고 하는데, 옆에서 계속 시끄럽게 통화를 하거나 보호자와 대화를 나눠서 자기 힘들었다.


통증 때문에 잠들기 힘들어 끙끙 대다가 겨우 잠이 들고나면 얼마 안 있어 새로운 사람이 입실하거나, 누군가 화장실을 가면서 불을 켜고 시끄러워 겨우 들었던 잠이 다시 깨기도 했고, 그렇게 깨고 나면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다시 잠들기도 힘들었다.


흔히들 출산의 고통에 대해 자연분만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는 '할부'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자연분만이 일시불이라면 출산 직후에 고통이 사라져야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ㅠㅠ


출산 후 회음부와 항문의 통증들과 3일째부터 왔던 젖몸살을 겪고, 그리고 병원에서 매일 항생제 주사와 진통제 주사를 맞으며 도대체 이 고통의 터널은 어디가 끝인가 매일 생각했다.


통증은 찢어진 회음부와 심해진 치질, 훗배앓이, 퉁퉁 부은 발과 다리의 저림 등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그 통증들 중에 TOP of TOP은 치질 통증이었다.


임신하면서 생긴 치핵으로 인신 중에도 고생했는데, 그래도 꾸준한 좌욕과 쾌변에 좋은 음식들(유산균, 양배추즙, 바나나, 고구마, 사과 등)을 매일 먹으면서 어느 정도 가라 앉혀서 출산 전에는 치핵이 블루베리 정도 크기였다.  하지만 출산을 하면서 힘을 주고 또 줬더니 치핵은 거대한 거봉만 해졌다.  


거봉 내지 샤인 머스캣만 해진 치핵은 살짝 무엇인가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였다. 서 있어도 아프고, 옆으로 누워도 아프고, 바로 누워도 아프고, 앉을 때는 죽을 것 같고, 어떻게 해도 이 치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병실의 침대가 딱딱하다 보니 치질과 회음부의 고통이 더 심했다.


딱딱한 침대가 너무 아파서 이불을 겹쳐서 밑에 깔고, 입고 온 겉옷으로 이불 삼아 덮고 하룻밤을 보냈다.


이날 밤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산후 고통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하루가 다르게 고통의 정도가 감소하는데, 출산 직후 첫날밤은 아주 아팠다. 하지만 다들 잠든 밤에 고통으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와도 신음소리 내기도 어려웠고, 거북한 배가 나도 모르게 방귀를 뀌게 할 때에도 조용한 병실 전체에 방귀 소리가 들려 민망하고 창피했다. ㅜㅜ


다음날 남편이 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자 집에서 푹신한 매트리스를 가져왔다. 푹신한 매트리스를 까니 그나마 좀 나았다.


치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병원에 있던 2박 3일 동안 좌욕을 한 번에 15분간 하루 세 번씩 45분을 했다. 병원에 있던 좌욕실이 집에도 두고 싶을 만큼 탐나는 좋은 시설이었는데, 좌욕실에 가서 좌욕기에 앉은 후 시작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퐁퐁 물방울이 솟구치면서 따뜻한 물이 나왔고 중간에 배수하고 다시 더 따뜻한 물로 채워주고 마지막에는 적외선 건조까지 알아서 해주었다.


좌욕을 하는 동안만큼은 따뜻한 물속에 잠긴 그곳의 통증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고 시원한 느낌이라 좌욕하라는 콜을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서 했다.



첫 소변과 첫 대변은 정말 무섭고 두려웠고 또 두려웠던 만큼 아팠다.


출산하는 내내, 그리고 출산 직후 몇 시간 동안은 소변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소변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소변 주머니가 다 차면 남편이 내 소변을 페트병에 담아 버려 주었는데, 내 소변주머니를 비우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무리 부부라지만 못볼꼴 다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변주머니를 빼고 난 후 첫 소변을 조심스럽게 보았는데, 아주 졸졸졸 소변이 나오는데 회음부를 마치 칼에 베이는 듯했다.


첫 대변은 더 아팠다. 거대한 치핵을 뚫고 안간힘을 주어 간신히 똥 하나하나를 나오게 할 때마다 마치 작은 애기들을 낳는 듯한 느낌과 고통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치렀던 첫 대변은 40분 넘게 걸렸다.


다행히 다인실에서 1인실로 옮기고 난 후 첫 대변을 보게 되어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여러 명 앞에서 소리로 생중계하지 않아도 되었고, 화장실 쓰고 싶은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스러웠다.  


치질의 고통은 너무나 심했지만 병원에 있는 내내 열심히

 1) 하루 15분씩 세 번 좌욕하고

 2) 양배추즙을 먹으며 쾌변을 위해 노력하고

 3) 치질 연고를 바르고(남편에게 이런 도움까지 받아야 하다니...ㅜㅜ 뭔가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은 이성으로서의 신비감을 완전히 바닥내는 느낌이었다.)

 4) 회음부 방석을 이용해 아무것도 닿지 않게 하고

 5) 병실에 아무도 없을 때는 하의를 속옷까지 다 벗고 통풍을 원활하게 해 주기


이렇게 노력을 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특히나 매일 아래쪽을 향해 무겁게 짓누르던 태아가 사라지고 나니 항문이 압박을 받지 않아 회복 속도가 빨랐다.


3일째 되던 날부터 걷지도 못했던 내가 남편의 부축을 받지 않고도 거의 일반인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소변과 대변도 큰 아픔 없이 볼 수 있었다. 왜 자연분만이 2박 3일 입원하게 정해져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출산한 지 딱 3일이 되니 갑자기 살 것 같은 느낌..!


그에 비해 제왕절개는 확실히 자연분만보다 회복이 더딘 것 같았다. 자연분만이 2박 3일 입원인데 비해 제왕절개는 4박 5일이었고, 병원에서 샴푸를 해 주는 서비스도 제왕절개 산모만 쓸 수 있었다.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은 복대를 두르고 소변 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수술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는데 걸음걸이가 자연분만 산모들에 비해 더 어렵고 불편해 보였고, 남편이 미는 휠체어에 탄 분들도 많았다. 고통을 참는 듯한 얼굴 표정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선택제왕이 아닌 자연분만을 했던 이유 중 하나에는 블로그에서 어떤 분이 첫째는 자연분만, 둘째는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제왕절개가 더 아프고 힘들었다면서 셋째는 브이백을 하겠다고 쓴 글을 봤던 것도 있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이든 출산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같다. 저번에 썼던 4편의 댓글을 보니 출산이 무섭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아기는 이 모든 출산의 고통을 잊게 하고 상쇄시킬 만큼 정말정말정말 예쁘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아가를 만나는 기쁨을 가져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병동에서 잠을 자고 쉬다가 저녁에는 아기에게  첫 모유 수유를 하러 가게 되었다.


출산할 때에는 아픔으로 정신이 없어서 아기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계속 궁금했는데, 드디어 제대로 아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간호사가 건넨 자그마한 아기를 받아서 수유쿠션 위에 올려놓고 보는데,


세상에..!! 그때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본 아기의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이렇게 작을까 싶은 너무너무 작고 소중한 아가..


막 태어났을 때의 복주

가늘게 뜬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데 그것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커다란 까만 눈동자, 조그맣고 납작한 코, 쪼그만 입술, 보들보들하게 송송 나 있는 머리카락, 내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얼굴.. 그 모든 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뱃속에 있을 때에는 초음파로만 보다 보니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게 실감이 잘 안 나고 작은 생명체 같았는데, 이렇게 꺼내고 나서 보니까 온전한 인간이었다.


'네가 뱃속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태교도 게을리했었는데, 이렇게 온전한 인간인 네가 들어 있었다는 걸 좀 더 실감했다면 더 좋은 음악 듣고 더 좋은 풍경 보고 더 좋은 생각만 하면서 널 행복하게 해 줬을 텐데..' 싶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자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반사적으로 아기가 젖을 빨았다. 참 신기하면서도 벅찬 감정이 들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나에게 온전히 기대어 사는 존재,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 내가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이전 06화 고통의 절정을 찍다! 막판 힘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