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주 엄마 Jul 28. 2021

산후조리원과 도우미 이모님

산후조리원 비용이 비싸다 보니 처음에는 조리원비를 쓰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산후조리를 해주면 어떨까?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를 쓰면서 남편이 휴가를 며칠 내서 산후조리를 해주면 어떠려나?  그러면 조리원 비용으로 도우미를 더 길게 쓸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다.

(조리원 비용 1주일 최소 백만 원 이상, 산후도우미 비용 1주일 60만 원 정도. 첫 3주간 산후도우미 비용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50% 정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조리원 안 가고 바로 집에 와서 산후도우미를 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펄펄 뛰면서 반대했다. 자기는 산후조리 도와줄 자신 없으니 조리원에서 편하게 있으라고, 남들은 조리원이 천국이라는데 왜 안 가느냐고, 조리원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잘 몸조리하고 육아지식 배우고 오라고 하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남편 회사 사람들이 아내가 조리원 가 있는 동안이 진짜 꿀이고 인생 마지막 휴가이고, 아내가 아기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순간 육아 지옥 시작이라고 겁을 준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남편의 강력한 반대도 있고 주변 친구들도 내 몸의 회복을 위해 조리원은 꼭 가는 게 좋다고 많이 조언을 해서 결국 조리원에 2주 동안 있게 됐다.


조리원에 있으면서 느꼈던 조리원의 장단점은 이렇다.


<장점>


1. 아이를 24시간 케어해주기 때문에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모유수유를 강요하는 곳도 있다고 하지만 내가 있었던 곳은 모유수유를 원치 않으면 수유 콜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2. 신생아를 24시간 케어해주면서도 내가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데려가서 볼 수 있다.


3. 내가 딱히 메뉴를 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산모에게 좋은 음식을 매끼 마련해 준다.


4. 병원 연계 조리원일 경우 매일 아침 소아과 의사가 회진을 돌며 아이의 건강을 체크해 준다.


5. 마사지숍이 딸려 있어서 매일 마음 편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집에 오면 아무래도 아이를 집에 두고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 힘들다. 그리고 마사지는 비싸긴 하지만 자주 받으면 정말 좋은 것 같다. 퉁퉁 부어서 샤워하며 서 있을 때마다 너무 아팠던 다리가 마사지하면서 부기도 많이 빠지고 통증도 가라앉았다. 아기 낳으면서 쪘던 살과 몸무게도 마사지를 하면 쭉쭉 더 잘 빠진다..ㅎㅎ )


6. 가슴 전문 마사지사가 조리원이든 연계 병원이든 근처에 있어서 젖몸살 등 가슴 트러블이 생겼을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7. 모유수유 방법, 신생아 목욕 방법, 기저귀 가는 방법, 이유식 만드는 방법, 베이비 마사지 등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있어서 육아와 관련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단점 >


1. 코시국이라 남편이나 가족을 만날 수 없고 조리원의 작은 방에서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해서 외롭다.


2. 내가 그날 땡기는 음식,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수 없고, 원하는 시간에 식사할 수 없다. 조리원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괴롭다. (내가 있던 곳은 음식 메뉴가 매일 너무 비슷해서 같은 메뉴에 질려서 정말 지겨웠다. 2백만 원 대의 저렴한 조리원이라서 그랬을지도..ㅜㅜ)


3. 신생아실과 나의 배정된 방이 가깝지 않고 층도 다르고 멀리 있을 경우, 수유하러 가기 참으로 귀찮고 계단 이용 시 무릎도 아프다.


4. 우리 집이 아니다 보니 집에 있는 여러 편리한 기기들과 취미생활 용품들(마사지기, 올레티비, 넷플릭스, 왓챠, 컴퓨터, 피아노, 책 등등)을 누릴 수 없고 공중파 TV만 볼 수 있어서 쉴 때 정말 할 게 없고 수유하면서 볼만한 TV프로가 없어서 너무 지루하다.


5. 단순히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아이 돌봐주는 것 외에도 아직 걷기 힘들 때 걸음 부축해 주기, 유두 보호기 세척해 주기, 수유하다 목마를 때 물 갖다 주기, 손목 아플 때 아기를 수유쿠션 위에 올려주고 다른 가슴 쪽으로 돌리는 것 도와주기 등 가족의 세심한 보살핌도 필요할 때가 많은데 그런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


6. 직원 한 명당 돌보는 아기 수가 여러 명이다 보니(비싼 곳일수록 아기 수가 줄어든다) 아무래도 엄마가 돌보는 것처럼 섬세한 케어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아 발진이 생기거나 아기를 거칠게 다룰 수도 있는 등 산후조리원 관련 불미스러운 이슈가 터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7. 단체생활이다 보니 코로나 등 감염 우려가 있다. 아기들 사이에서 감염병이라도 돌면 단체감염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리원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넘어가면서부터 단점이 너무 크게 다가왔고 집이 정말 그리웠다. 맨날 TV로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내 취향에 맞는 재밌는 영상을 찾아서 보다가 공중파 TV만 보려고 하니 공중파 TV에 이렇게나 볼 게 없던가 싶었다.


또 나는 너무 많은 젖양 때문에 젖몸살 방지를 위해 아기에게 수시로 직수를 하다 보니, 내 방과 층도 다르고 멀리 있는 신생아실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불편했다.


게다가 아기가 기저귀 발진에 걸렸다고 다른 엄마들에게 얘기하는 것을 몇 번 목격하고나니 제대로 아기를 돌봐주는 건지 불안하기도 해서 아기를 방에 거의 하루 종일 데리고 있게 됐다. 사실 아기가 너무 귀엽고 보고 싶어서 데리고 있었던 것도 있다..ㅎㅎ 아기 맡겨 놓았을 때에도 찍어 놓은 영상 계속 보고 아들 바보가 다 되어 버렸기 때문에..


마사지 시간, 밥 먹는 시간, 샤워 시간 빼고는 계속 데리고 있었고 그렇게 아이와 하루종이 같이 있다 보니 직접 기저귀도 갈고 트림도 시키고 수유도 하고 아기 케어의 대부분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신생아를 케어해주는 조리원의 최대 이점을 누리기가 어려웠다.


사실 밥 해주고 빨래해주는 것 정도는 산후도우미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고 가격도 훨씬 싼 데다가, 집으로 가면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리원 생활을 일주일 정도 하자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렸지만 남편은 위약금 아까움+산후도우미 이모님 오시기로 예약한 날짜 안 맞음+미리 결제한 마사지숍 환불 문제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해서 계속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리원 퇴소를 이틀 앞두고 '어떤 일'이 생겨서 집으로 오는 날짜를 조금 앞당기게 되었다...



조리원 퇴소를 이틀 앞둔 그날 밤..


잠을 자다 의식이 깨어났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였다.


조리원 방안이 훤히 보이고 의식도 멀쩡한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위눌림답게 귀신도 보였다.


아기 귀신들이 내게 달려들어 젖을 빨아먹었다. 그 아기들은 잠수함을 타고 있다가 잠수함이 침몰해서 죽은 아가들이라고 했다.(쓸데없이 디테일하게 눌린 가위 ㅠㅠ)


필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정말 일어나 지지가 않았고 간신히 힘을 줘서 일어났지만 깨어나서도 계속 꿈에 있었다. 꿈에서 깨면 또 꿈, 꿈에서 깨면 또 꿈.. 그렇게 인셉션의 림보를 헤매듯이 있다가 아기 귀신들이 신생아 침대에서 자고 있던 아들을 떨어뜨리려고 끌어당기는 걸 보고 정말 필사의 힘을 다해서 이빨로 내 혀를 깨물었다.


혀에 통증이 느껴지자 잠이 깼고 아주 간신히 일어났다. (모성애는 가위눌림도 이겨내게 하나보다...)


그날 밤 너무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남편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새벽이라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해서 제발 데리러 오라고 사정했고, 그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 훨씬 안정되고 좋았다.


하루에 수유시간이 260분 이상 되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유튜브, 왓챠, 넷플릭스 돌아가면서 보니 수유시간도 훨씬 덜 지루했고


그동안 물을 안 줘서 걱정되었던 식물들도 돌볼 수 있어 좋았고
비록 짜증쟁이지만 보고 싶던 남편을 매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배달시키거나 도우미 이모님께 해달라고 해서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넓고 쾌적한 마이 홈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남편과 공동육아를 한다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 오니 너무 좋아서 진작 나올 수 있게 일주일만 조리원 등록할걸 후회도 많이 됐다.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아주 좋은 분으로 잘 만나서, 해주는 요리마다 조리원 메뉴보다 훨씬 맛있고 입에 잘 맞았다.  


하지만 밤에 수유를 완전히 혼자 해야 한다는 점은 힘들기는 했다. 비록 젖이 불어 아파서 깨는 바람에 조리원에서도 5시간 이상 길게는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리원에 있을 때에는 한 텀 정도는 유축한 모유를 먹여 달라고 하고 피곤할 때 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에는 밤 수유를 혼자 해야 하다 보니 3시간 이상 통잠을 결코 잘 수 없었다.  


본격적인 신생아 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신생아 육아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아기가 잘 때마다 함께 틈틈이 잠을 자면서 총 수면시간은 8~9시간을 채운다고 해도 쪽잠으로 채운 수면의 질은 아주 떨어져서 피곤함이 잘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와 계속 함께 있다 보니 힘들고 피곤한 마음 이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아기를 볼 때마다 그 애의 모든 움직임과 표정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신기하고 특별해 보였다.


눈을 감으면 길게 내려오는 속눈썹, 하품하며 찡그리는 모습, 얼굴이 빨개지도록 안간힘을 쓰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 아기새처럼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좌우로 입을 흔들며 젖을 찾는 모습,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필사적으로 젖을 빠는 모습, 살짝 눈을 흘겨보는 모습, 배냇짓을 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 미간에 작은 주름을 만들고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는 모습, 젖을 먹고 소화가 안 되어 '에헴에헴' 거리며 영감님 소리를 내는 모습...


이 작은 아기에게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는지, 그 표정 하나하나는 얼마나 다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까만 머리숱과 보드러운 애기 피부, 모유를 먹고 나는 애기 냄새,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 옅은 눈썹, 너무 작은 손과 발,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꽉 쥘 때의 전율..  


나는 아기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폴링 인 베이비!



사실 낳기 전에는 아기들을 볼 때 그렇게 귀엽다는 생각을 잘 못하고는 했다. 가끔 슈돌을 봐도 어쩌다 한 두 명 내 취향으로 생긴(?) 아기가 나올 때에만 귀엽다는 느낌을 가졌고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내 새끼라지만 애를 낳고 내가 모성애를 가질 수 있을까 낳기 전에 살짝 걱정도 됐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낳은 걸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도 했다.


막상 낳고 나서 보니 아기를 보면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끼는 옥시토신이 마구 분출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기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젖을 물려서 먹이는 것도 뭐랄까.. 옛날 다마고치를 키우는 느낌처럼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아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매일매일 얼굴도 변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키가 크고 무거워지고 신생아 같은 애기애기함이 옅어지면서 조금 더 의젓해진 아기 얼굴로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아기의 모습 하나하나가 아깝고 아쉬워서 매일 영상과 사진을 엄청 찍어댔다.



아기를 기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졌다.


나에게 이 아기가 너무나 소중하듯이, 이 세상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다 배 아파 낳고 예뻐해 주고 사랑으로 길러주고 키워준 부모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 누구든지 항상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 한 명 한 명이 가치 있고 빛나는 존재처럼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우리 부모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을지 새삼 깨닫게 되니, 나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소중히 대할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스쿠터 타다가 미끄러져 몇 바늘 꿰매는 위험한 행동 같은 건 하지 말걸, 나에게 상처 주는 아무 남자나 만나지 말고 좀 더 날 소중히 대해주는 남자와만 사귈걸, 나 자신을 미워하거나 자책하는 행동 같은 건 하지 말걸, 건강에 신경 안 쓰고 아무거나 먹고 과음하고 속 버리는 일 같은 건 하지 말걸 등등) 그래서 앞으로는 나 자신을 '내 딸'처럼 여기면서 좀 더 내 인생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부모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살면서 엄마가 했던 막말들 중 가슴에 담아 둔 말들이 몇 가지 있었고, 엄마에게 받았던 그런 상처들을 얘기하며 위로를 구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엄마는 위로해 주시기보다는 "너는 여태까지 엄마가 잘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건 기억 못 하고 꼭 몇 개 안 되는 나쁜 것만 기억하고 그러니?"라고 하셔서 엄청 서운하고 서러웠었는데, 아기를 기르다 보니 그런 엄마도 이해가 좀 되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었고, 아이 한 명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시간과 몸을 갈아서 많은 것을 해줘야만 했다.


그야말로 아기는 나를 갉아먹으면서 자라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의 허리와 손목과 무릎을 희생시키면서, 그리고 내 안의 영양분을 젖으로 쥐어짜 내면서 자라나는 존재니까..ㅜ)


그래서 "잘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고, 엄마가 나한테 표면적으로 표현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사실 나를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유별난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구의 미래도 새삼 걱정이 되었다.


환경오염으로 망가져가고 이상기후와 녹는 빙하, 미세먼지로 가득한 대기,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 이렇게 망가져가는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아기가 무사히 크고 성인이 되고 노년을 맞고 죽을 때까지 이 지구가 버텨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렇듯이 아기는 조금씩 내 인생에서, 내 마음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으며 그 비중을 점차 확대해갔다.


'엄마'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면서 조금씩 '되어가는 것'이었다.

이전 08화 젖몸살의 악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